쇼핑백에 오렌지를 한 아름 넣고 식당으로 향한다. 아직 손 끝에는 상큼한 오렌지 향기가 남아있다. 상큼한 오렌지 향기와 함께 우리는 마지막 만찬을 함께하기 위해 다시 차를 타고 식당을 찾았다. 손끝에는 아직 상큼한 오렌지 향이 남아있었다. 따뜻한 햇살아래 바닷가와 불과 1분 거리에 위치한 레스토랑이었다. 하얀색과 하늘색이 조화를 이루는 인테리어는 마치 그리스의 해안가를 연상케 했고, 중앙에는 커다란 수영장이 자리하고 있었다. 우리가 도착했을 때 이미 야외 테이블에서는 삼삼오오 모여 일요일 점심을 즐기는 사람들로 가득했다.
안으로 들어가 상큼한 레몬빛깔 벽이 기분마저 싱그럽게 만들었다. 한쪽에는 이미 특별한 단체손님이 있는 듯 테이블이 세팅되어 있었고 이리저리 둘러봐도 우리가 앉아서 식사할만한 빈 테이블은 보이지 않았다. 크리스티앙은 직원을 불렀다.
"Somos Tres(우리는 세명입니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스페인 문장이 그의 입에서 자연스럽게 흘러나왔다. 두 사람이 저 문장을 말할 때면 우리는 보이지 않는 끈으로 연결되어 있는 묘한 특별함을 느끼곤 했다. 내가 살짝 감동하고 있는 사이 직원과 크리스티앙 사이에 약간의 고성과 웃음소리가 직원과 크리스티앙사이에서 오가더니 크리스티앙이 돌아서며 말했다.
"아란, 오늘 단체 예약 손님이 있어서 원래 자리가 없는데 네가 한국에서 왔다고 하니 바닷가랑 가까운 테이블 하나를 마련해 주겠대. 괜찮지?"
"당연하지. 고마워."
그 순간, 나에게 물었다. 내가 과연 이런 대접을 받을 자격이 있을까? 아무것도 아닌 지구 반대편에서 건너온 촌스럽고 서툰 한국 여자가 두 사람의 호의를 받을 자격이. 그리고 이 레스토랑의 분위기와 어울리는 사람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스쳤다. 내 생각에 확신을 주기라도 하듯 주변에서 식사를 하는 사람들은 나를 신기하거나 이상한 눈으로 쳐다봤다. 그 시선이 따뜻한 것인지 아니면 이방인을 향한 호기심인지 알 수 없었지만 그 시선이 부담스러워 빠에야와 함께 애피타이저를 주문하고 우리는 바닷가로 갔다.
부드러운 모래가 두 사람의 따뜻한 마음처럼 포근하게 발 끝을 감쌌다. 파도는 부드러운 곡선을 그리며 밀려왔다가 이내 조용히 사라졌다. 두 사람과 함께하는 이 행복한 순간도 마치 썰물처럼 빠져나가 버릴 것만 같아 갑자기 울컥하는 감정이 밀려왔다.
"크리스티앙, 키캐, 나 배고파. 우리 식당 가서 맥주 마시자."
두 사람은 내 말을 듣고 함께 레스토랑으로 들어갔다. 발렌시아 햇살 때문인지 아니면 함께하는 순간이 주는 취기 때문인지 맥주 한잔을 마시며 나는 조용히 입을 열었다.
"두 사람은 나를 더 나은 사람으로, 좋은 사람으로 만들어줬어. 우리가 처음 만났을 때 기억나? 우리는 너무 달라서 우리는 친구가 될 수 없을 줄 알았어. 그런데 이렇게 가까워지고 함께할 수 있어서 너무 고맙고 행복해.. 그리고..."
나는 목이 메었다.
"그리고...?" 크리스티앙이 말했다.
"슬퍼.. 정말 잊지 못할 거야. 나와 너무 다른 사람들을 만나 내가 분수에 맞지 않는 큰 축복을 받는 기분이야. 꿈만 같아."
나는 발렌시아의 햇살이라는 듯 눈을 깜빡이며 눈물을 감추며 두 사람에게 말했다. 그러는 사이 직원이 커다란 팬에 담긴 빠에야를 우리 테이블에 놓았다. 빠에야는 안중에도 없다는 듯 크리스티앙이 말했다.
"아란, 우리가 더 고맙지. 네가 만난 수천 명의 순례자 중에서 우리를 선택했잖아. 시간을 내서 여기까지 와주고."
"아란, 우리가 고마워. 네가 만난 수천 명의 순례자 중에서 우리를 선택했잖아. 시간을 내서 여기까지 와주고. "
부끄러워 어깨를 으쓱하며 웃었다. 발렌시아 햇살에 눈물을 감추며 두 사람과 10월의 빠에야 만찬을 즐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