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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래와 다림질도 즐거울 수 있다
나는 가끔 세탁소를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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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드형
Oct 31. 2021
거실 한구석에 빨래가 널려 있다.
베란다 안쪽 천정에 붙어있는 건조대가 있지만
보일러를 틀고 난 후 건조해진 실내의 천연 가습기 역할이다.
요즘에야 세탁부터 헹굼, 탈수, 건조까지 일사천리로
삼성과 엘지가 다해주는 세상이지만,
내 어릴 땐 어머니가 겨울에도 찬 물로 손수 빨래를 하셨다.
마당 빨랫줄에 널어놓은 빨래는 동태처럼 꽝꽝 얼어 걷을 때 땅땅 쳐서 간신히 폈던 기억이 난다.
그때 비하면 엄청 편해졌지만
육아와 가사를 병행하며 직장생활을 해야 하는 여자나
일부 남자들에겐 빨래는
여전히 힘든 노동 중 하나다.
그래도 해 좋은 날
새하얀 이불보가 바람에 날리는 광경은
여전히 마치 한 폭에 동양화처럼 참으로 멋지다.
빨래의 최종 마무리는 역시 다림질이다.
아내가 불멍을 좋아하듯
나는 멍해서 하는 다림질을 좋아한다.
보통 셔츠는 내가 다리는 편인데
총각 때 세탁소에서 배운 나만의 익숙한 순서가 있다.
먼저, 등 쪽 어깨 부분을 접어서 다린 후
왼쪽 앞에서 시작해. 등판, 오른쪽 앞으로 돌려가며 다린다.
그리고 가장 난이도가 높은 양쪽 소매를 다리고
마지막으로, 소매 깃과 목깃을 다린다.
좋아하는 옛 노래를 흥얼거리며
한 장 한 장 다리다 보면 잡념들은 싹 사라지고
칼처럼 날이 선 셔츠를 보면 마음이 왠지 뿌듯하다.
그래서 그런가
세탁소는 내 미래 희망직업 리스트에 늘 올라있다.
(셔츠만 전문으로 배달은 안 하고 싶은데 먹고는 살지...)
더러운 것을 빨고
구겨진 것을 다리는 일은
귀찮지만 꾸준히 해야 하는 노동이기도 하지만
도구의 도움을 받고
요령이 생기다 보면
편해지고 나름 보람 있고 즐거운 의식이 되기도 한다.
세상 사는 이치가 다 그런 거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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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은 작가 연습생입니다. * 문화잡지 <쿨투라> 병오년 1월호에 제 글 '나의 로시난테에게'가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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