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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본드형 Dec 23. 2021

동지와 주마등

기억이 추억으로 바뀌는 날

크리스마스 분위기가 가득한 명동으로

'칵테일' 멤버들을 만나러 왔다.


이 시기의 이 장소는

내게 슬픈 기억과 행복한 추억이 공존한다.


아주 어렸던 시절,

아버지가 교통사고를 당해

당시 명동성당 옆 성모병원에 입원해 계셨는데

지방에 살았던 나는 병문안을 마치고 나와

난생처음 보는 화려한 성탄절 분위기에 압도당하고

말았다.


어린 촌놈의 머릿속에 박힌

'천국'같은 그때 명동 거리의 첫인상은

재수생이 되어 다시 서울로 올 때까지 오래 지속됐다.




칵테일은

30여 년 전 재수학원에서

함께 공부하며 처음 만난 사이로,

대학 합격증을 받고 떠난 부산 해운대 여행에서

'다양한 우리가 모여 하나가 되자'는 거창한 의미로

결성된 4인의 동무들 모임이다.


그냥 가까운 친구, 베프, 절친 등의 호칭보단

힘든 시기를 서로 의지하며 잘 버텨낸 

'동지'들에 가깝다.


이후

스무 살 청춘의 철없던 시간을

서른 살 청년의 화려한 시간을

마흔 살 중년의 고달픈 시간을

곁에서 같이 했다.

 

이제

쉰 살이 넘어

좋은 술과 음식을 나누며

주마등처럼 스치는 저마다의 옛 기억들을 꺼내

추억을 나누는 이 시간이 너무 소중하고 감사할 뿐이다.




얼마 전 배운 알쓸신잡 중 하나가 '주마등'이다.


달리는 말(走馬)에서 보이는 주변 풍경처럼 스쳐가는

 기억들을 말한다 생각했는데,

실제 존재하는 장식용 등(燈)이란 걸 처음 알았다.


등이 안팎 두 겹으로 되어

안쪽에 말이 그려진 부분이 불을 켜면 열 때문에

천천히 돌아가 마치 달리는 것처럼 보인다고 한다.


'주마등처럼 스친다'는 표현도

죽음처럼 어떤 긴박한 상황에 처했을 때

뇌 속에 담긴 수많은 기억들 중 발견한 정보가 머리에

투영되는 자연스러운 과정이란 것도 알았다.


즉, 뇌가 살 방법을 찾으려

깊숙이 저장된 기억들을 뒤지다

잊어버린 줄 알았던 소중한 추억들을 찾아낸다는 거다.

 

내가 정말 힘들고 지칠 때

나의 칵테일 동무들과 보낸 그 소중한 시간들은

언제나 주마등처럼 나를 비추어 주었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나 역시 그들의 주마등이 되는

영원한 동지가 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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