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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본드형 Dec 02. 2023

아들 작품을 보러 왔다

나의 대학 시절을 떠올렸다

미대 3학년으로 복학한 아들의

'오픈 스튜디오'다.


오픈 스튜디오란

4학년들의 졸업전이 열리는 기간에

재학생작업실 함개방하는 걸 말하는데


미술에 문외한인 나로서는

작품 창작 과정을 구경할 겸,

자식의 대학 생활 엿볼 수 있는 좋은 기회다.




먼저 둘러본 졸업전이

사회 진출을 앞둔 4학년들의 근사한 그림이 걸린

갤러리 전시회에 가까웠다면


오픈 스튜디오 풍경은 사뭇 달랐다.


'술 = 그림'이라는 내 고정관념을 비웃라도 하듯

독특한 소재와 형식의 다양하고 재미난 습작들

날것 그대로 공간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아들의 작업 공간에 들어섰을 때,

너무 깔끔해 놀랐다.

(집에서 자기 방은 엄청 어지르는 녀석이... 가증스럽다)


뭔가를 경계하는 듯한 검은 동물의 그림에서나

차가운 감촉의 철사로 만든 드레스 작품에서나

평소 밝았던 아들 모습과는 다른 낯선 어둠이 느껴졌다.


뭘까...


철사 드레스 위에 보일 듯 말 듯 놓인

시집 한 권을 보고 생각했다.


거친 사회로 뛰어들 불안감에

밤새 작업실에서 졸업전을 준비하는 동기들을 보며

대학 시절이 1년밖에 남지 않았다는 현실이

어쩜 두려웠을지도 모른다고.


30년 전 복학했을 때 나도

그랬으니까...




시인 기형도가 대학에 들어간 1979년에

12.12사태가 일어났다.


'서울의 봄'이 한창이던 그때 대학 시절도

마찬가지였나 보다.

대학 시절

나무의자 밑에는 버려진 책들이 가득하다
은백양의 숲은 깊고 아름다웠지만
그곳에서는 나뭇잎조차 무기로 사용되었다

그 아름다운 숲에 이르면 청년들은
각오한 듯 눈을 감고 지나갔다,
돌층계 위에서 나는 플라톤을 읽었다
그때마다 총성이 울렸다

목련철이 오면 친구들은 감옥과 군대로 흩어졌고
시를 쓰던 후배는 자신이 기관원이라고 털어놓았다

존경하는 교수가 있었으나
그분은 원체 말이 없었다
몇 번의 겨울이 지나자 나는 외톨이가 되었다

그리고 졸업이었다,
대학을 떠나기가 두려웠다

기형도 시집 <입 속의 검은 잎>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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