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의 가슴 한 구석엔
첫사랑이란 망령이 숨어 산다.
순수했던 어린 시절 만났던 인연일수록
손 한번 못 잡고 헤어진 사랑일수록
오래오래 살아남아
비 오는 어느 날
술 취한 어느 밤
불쑥 나타나 사내 가슴을 후벼 판다.
해성(유태오)도 그랬다.
왜 갑자기
초등학교 때 이민 간 나영(그레타 리)이가
이십 대 대낮에 군대 행군하다 생각이 나는지.
왜 우연히
인터넷으로 서로의 소식을 알고
시차를 극복해 가며 국제적 썸 타기를 했는지.
그리고 왜 굳이
세월이 흘러 결혼한 그녀를 보러
남편과 잘 살고 있는 뉴욕에까지 날아간 건지.
전생의 인연이라는 말 밖에는
설명하기 어렵다고 스스로 믿고 싶었을 것이다.
그래서
이 영화 <Past lives>의 베스트 컷은
두 사람의 재회 장면이다.
특별한 대사나
특별한 음악이 없었지만
이십여 년 전 헤어진 순간부터 간직해 온
전생의 인연이 현생으로 환생해
바로 눈앞에 나타났을 때
그 복잡한 감정들을 담고 있는
서로의 눈빛 연기가
오롯이 그 모든 걸 담담하게 전해 준다.
피천득의 수필 <인연>의 아사코처럼
첫사랑은
전생에만 남아야지
현생에서 만나게 되면 그 애틋함이 사라진다.
하지만,
그 인연이 현실을 너무 힘들게 한다면
한 번쯤 환생시켜 제대로 장례식을 치러주는 것도
필요하지 않을까.
<봄날은 간다>의 상우(유지태)의 소년미를 닮은
해성(유태오)에게 한마디 해주련다.
사랑은 변한다.
하지만 첫사랑은 절대 변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건 바로
그 시절 너 자신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