뭐 그리 힘들다고
남들은 다 재미있다는 <폭삭 속았수다>가
왜 그리 인기가 있는지 모르겠다며 아내가 말했다.
아이유가 맡은 엄마 애순이, 딸 금명이
드라마에서 겪는 '수고'란 것이
어릴 적 자기와 비교하면 뭐 그리 대단한 것이 아니라며...
하긴, 내가 아는 그녀는
가난하고 식구 많은 집안의 똑순이 K장녀로서
드라마보다 더 드라마틱한 고생스러운 삶을 살았다.
그래서
가끔 힘들다 찾아오는 친구들의 사연이
그게 뭐가 고민인지
선뜻 공감부터가 안된다며
본인이 이상한 건가 내게 진지하게 묻는다.
"나만큼 힘들었던 사람 없을 거라는
일종의 '고생의 우월감' 같은 게 아닐까?"
내 대답이 멋지다고
그녀는 박수까지 치며 좋아한다.
고생이 뭐 그리 상 받을 일이라고
얼마 전 도서관에서 책을 고르다
눈에 띄는 제목이 있었다.
인생은 고통이 디폴트라고 주장하는
염세주의 철학자 쇼펜하우어의 아포리즘을 모은 책이었다.
부유한 상인의 아들로 태어난 그가
비관적 인생관을 갖게 된 이유는 가족 때문일 듯하다.
사춘기 때 아버지는 투신자살했고
남편보다 스무 살이나 나이가 어렸던 어머니는
아들보다 화려한 사교계만 전전했다니
행복보다는 불행하지 않기를 바랐던 청춘의 경험이
그를 독설적 철학자로 만든 게 아닐는지
누구나 자기 자신에 대한 연민이 있다.
힘들었다고
고생했다고
하지만 그러다 보면 자칫
쇼펜하우어처럼
인생이 베푸는 절망을 거부하지 않겠다는
어두운 환상 속에 갇힌 어린아이로 살아가는 건 아닐까
고생은
우월감도, 열등감도 아닌
그의 말처럼 하나의 착각에 지나지 않을지도 모르겠다.
나만 힘들고
나만 피곤하고
나만 희생당한다는 착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