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산자락숲길에 왔다.
여름이 시작된 6월 이후로 처음인 것 같다.
사실, 직감적으로 알았었다.
맹렬하던 폭염이 잠시 주춤한 틈을 타
금방이라도 비가 올 것 같은 이 선선한 날씨를
아내가 놓칠 리 없다는 것을.
아침을 먹자마자
자긴 오늘 필라테스를 쉰다며,
그런데 나는 운동 좀 안 하냐며 눈치를 주길래
'좋은 말할 때 산책 가자'는 명령이란 걸
바로 알아들었으니까.
숲길 입구에 도착하니
산책 나온 사람들은 없고 까마귀와 바람 소리만
가득한 것이 어째 이상하다.
바닥에 온통 누런 낙엽으로 가득한데
자세히 보니 아카시아 잎들이 이번 폭염을
못 견디고 떨어진 모양이다.
푸른 잎이 남아있는 나무들과 묘한 대조를 이뤄
마치 여름과 가을이 공존하는 풍경이라고
사진을 찍으며 신기해하는데
아내가 중얼거린다.
떨어진 잎들이 꼭
인생에서 먼저 낙오된 패자 같아
요즘 부쩍 예민해진 그녀의 감수성에 놀라며
나도 한마디 거들어 본다.
붙어 있는 애들도 가을 되면 다 떨어지는데 뭘
그러다 내년 되면 또 나오잖아
인생이 다 그런 거지...
그렇게 말하고 나니
계절이 바뀌면 다시 푸르게 피어날 나뭇잎과
한번 가면 다시 오지 않는
우리네 청춘이 같지 않다는 사실이
새삼 서글퍼진다.
(괜한 얘기를 했다)
한번 가면 다시 오지 못하는 우리는
누가 먼저 가지 말고
비슷한 때 같이 갔으면 좋겠다고,
아내의 손을 꼭 잡고 숲길을 걷기 시작하는데
내 마음을 다 안다는 듯
참나리꽃 하나가 고개를 내밀어 흔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