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리화 - 1

Ep5

by 유월

'무슨 말을 해야 할까.'


스스로 되묻듯 내뱉은 말이었지만, 무의미한 질문이었다. 스스로도 그 질문에 대답을 할 수가 없었고. 어떤 답변도 민족스럽지 않았다. 이런 생각을 하며 일에 집중하지 못하는 것 역시, 옳은 행동은 아니란 생각에 머리는 더 아파왔다.


'그래, 퇴근 후에 생각하자.'


생각을 정리한대도, 생각이 사라지진 않았다. 저번주엔 오늘 꼭 연장근무를 해봐야지 생각했지만. 결국 오늘도 연장근무는 어려울 것 같았다. 이렇게 잡생각이 많아서야 실수할 것이 뻔했고, 준과 대면할 자신은 더욱 없었다.

괜히 손이 시려 주머니에 손을 넣자 캡틴에게 받은 사탕이 달그락 손이 감겼다. 뾰족한 사탕의 막대를 쥐다 피고, 괜스레 손을 어루만지길 반복했다.


"네, 고객님 도와드릴게요."


평소와 다른 멘트, 나는 나를 돕고 싶었는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

업무를 마치고 1층으로 내려가니, 오늘은 바로 퇴근종이를 받았다. 바로 퇴근해도 좋단 뜻이었다. 서둘러 서명을 하고, 꾸벅 인사를 건네려 하자, 직원분은 한마디를 덧붙이셨다.


"내일도 나오니?"

"아뇨, 내일은 웨딩이 없다고 말씀 전해 들었습니다."

"아직 뷔페일은 안 하고?"

"네, 아직이에요."

"뭐, 그래. 그럼 가 봐. 수고했다."


스스로 아직이라는 답변을 하고도, 명쾌하지 않다. 뷔페일을 배워야 하는 건가, 난 뷔페 서빙으로 계약한 건 아닌데 하는 생각이 들었다. 생각해보니 이상하다. 나에게 해당 업무를 배우란 말은 없었는데. 다시금 준의 말이 생각나 울컥한다. 결국 난 또 네네 하며 대답하고 있는 꼴이니까. 아직 그 말에 대한 감정조차 해소되지 않았다.

웨딩 없는 일요일, 쉴 수 있단 생각에 기뻤던 게 어제 같은데. 바로 추락해내려 오는 기분이었다. 물론 준과 함께 일하지 않는다면 그나마 다행이지만. 어차피 대화는 미룰 수 없는데 하는 생각 역시 차올랐다. 내일마저 지나면 더 이상 '우리'는 되지 못할 것 같은 불안감도 엄습해오기 시작했다. 요 근래 준과 제대로 된 대화조차 한 적이 없었으니. 내일마저 미룬다면, 제대로 대화를 해낼 수조차 없을 것이 뻔했다. 내가 두려워하는 것이 명확하지 않으니 더 심장이 두근거리는 것만 같았다.


다시금 허리를 숙여 인사를 건네고 건물 밖으로 나왔다. 오늘 역시 담배연기가 시야에 닿았다. 의식하지 않으려 발걸음을 옮겼다. 시선 끝에 준이 있을 것만 같았다. 뿌연 담배 연기를 흘리며 흐려질 것 같았다. 어쩌면 좋았던 추억들도 흐려질 것 같단 생각이었다.


'과민한 생각이지. 오늘 유독 지쳤던 거겠지.'


스스로에게 아니다, 아니다라며 내뱉는 길. 울컥하는 마음에 사탕을 꺼내 들었다. 달달한 향기, 혀를 감싸는 달콤함. 사탕이 달다는 사실에 슬플 이유는 없는데. 사탕으로 마음을 달랬다. 그것이 가장 좋은 위로 방법이 될 것만 같았다. 입안에 사탕을 굴리며 조심스레 문자를 적어내었다.


-미안하지만, 오늘은 자신이 없네. 우리 내일 얘기하자.-


준에게 메시지를 보내고 머리를 툭 풀었다. 묶었다가 푼 자국이 남아 붕 뜬 머리. 부스스한 머리칼을 넘기며 버스를 타러 갔다. 오늘은 다리보다 마음이 저린 것이 괜히 씁쓸해져 왔다.


'준에게도 이유가 있었겠지.'


준을 이해하려 애를 썼지만 쉬운 일은 아니었다. 직장에선 같이 담배피며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중요하다고 한다. 그렇다면 준도 그런 이유가 아니었을까 생각하다가도 욱하는 마음이 들었다. 캡틴이 옥상을 떠나며 내게 '저는 담배 안 펴요, 그냥 옆에 있어주는 거예요.'라고 이야기한 것을 보면 굳이 피우기까지 해야 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미성년자가 그런 사회생활을 익힌다고 하면 말리는 것이 정상 아닌가 하는 생각.

이 세상을 이해하기엔 내가 너무 어린가 하는 답답함이 들었다가, 이내 이런 세상이 잘못된 거라는 생각. 그러다가는 결국, 준이 미웠다. 차라리 담배를 피운다고 말을 해주었다면, 적어도 담배향이 남았던 그날 다른 사람 핑계는 대지 말지. 그랬다면 나는 준의 솔직함을 이유로 준을 용서하려 들었을지도 모를 텐데.


"정말 미치겠다."


작게 읊조리듯 뱉은 말. 오늘은 기묘한 날이다. 어른스럽지 못하지만, 거짓말은 하지 않던 캡틴과. 어른스러운 척 담배를 피우되, 거짓말을 하는 준. 그 괴리감이었다. 녹여 먹던 사탕의 단물에 헛기침 끝, 사레가 들린 것은.


나는 준에게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할지. 준을 이해할 수 있을지도 그 무엇 하나 답하기 어려웠고.

숨을 죽였다, 오늘의 일은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토, 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