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실한 생명력
그녀는 그저 집에서 창문을 바라보며 시간을 보내길 좋아했다. 가장 많이 바라보는 건 가을 낙엽의 풍경이었다. 생명력 없는 겨울의 마른 가지, 봄의 눈부신 벚꽃, 싱그러운 초록 잎들보다. 생명력이 꺼져가는 낙엽이 그녀는 마음에 들었다. 언제 떨어져 말라비틀어질지 모를 그 위기감이 왜인지 그녀를 기대하게 만들었다. 그녀가 나무를 저주하거나, 원망하는 마음 따위를 품은 것이 아니라. 누군가 잎사귀의 추락을 기대하고 있음을 나무에 전해주고 싶은 것이기도 했다. 이따금 그 추락을 손에 넣고자 연 창문에서 불어온 찬 바람도 그녀는 맘에 들었다.
낙엽은 품에 넣을 수가 없는 것이었다. 그녀의 애정 어린 시선은 빨갛고, 노란 단풍잎이 아닌 갈색으로 바스러진 낙엽이었는데. 그것은 손에 쥐면 바스러지기 십상이었다. 그 꺼져가는 생명력마저 바스린 그녀의 기분은 쉽게 형용할 수 없는 무엇이었다. 그녀는 나무의 마지막을 간직하되, 그 마지막을 종용하고 싶진 않았기에 그 마지막이 퍽이나 슬펐던 것이었다. 그런 이유로 그녀는 늦가을을 좋아하지 않았다. 그 부실한 생명력이 눈앞에서 꺼져감은 보기 두려웠다.
그녀는 상처가 많았다. 하기야 생명력 넘치는 봄도 여름도, 그렇다고 온 천지가 하얗게 뒤덮일 겨울도 아닌 초가을이라니. 그녀의 애정에서도 추측하건대 그녀는 낙엽 같은 사람이었다.
가끔 그녀는 낙엽과 자신을 동일시하곤 했다. 낙엽을 손에 쥐고 다스릴 때면 슬픈 감정과 자기 파괴적인 행동에 고통을 느꼈다. 온전히 유지한 순간에도 그 부실한 생명력에 마음이 아파오곤 했다. 그래서 그녀는 가을을 좋아하지만 조금은 증오해 마지못했다. 가을이 온대도 그녀는 꺼져가는 가을의 체취의 늘 가슴 아리게 슬퍼할 것이 분명했기에.
늦가을, 그녀는 창문을 열어 다시금 낙엽들을 바라보았다. 초가을이 지나고 다시 더 추운 바람이 들어오는 이 순간에 그녀는 복잡한 감정을 느끼고 신음했다. 그러다 문득 생각을 했다. '아 나도 이렇게 가벼이 사라지면 어떨까.' 그녀는 무릎 밑으로 내려오는 갈색 긴 원피스를 걷어올렸다가 내리기를 반복했다. 가벼이 나풀거리는 치마폭이 꽤나 낙엽 같았나. 그러다 창문으로 들어온 찬 기가 그녀의 가슴팍까지 차오를 때는 이따금 치마폭을 잡고 덜덜 떨기도 했다. 본인이 만든 바람보다도 찬 기운이 그녀를 두렵게 만들었다. 공포에 질린 그제야 행동을 멈추고 창가에 다시금 팔을 기대어 밖을 내다보았다. 아까보다 잔잔한 바람이 그녀의 긴 생머리를 흩날리게 하였다. 낙엽이 바람에 흩날려 끝없이 바닥에 떨어져 붙었다. 낙엽이 만드는 풍경은 늦가을의 정취를 가득 담은 듯했다. 그녀는 손을 다시금 뻗어 낙엽을 쥐어내곤 손에 가벼이 움켜쥐었다. 그러곤 조금 가볍게 더 손에 힘을 주었다. 바스락거리는 낙엽 소리가 그녀의 손에 울렸다. 그녀는 부서진 낙엽의 형편없는 모양새에 자기도 모르게 웃음이 새어 나왔다. 손에 쥐되 쥘 수 없는 생명력이란 얼마나 우스운 일인가. 그녀는 그렇게 생각했다.
그녀는 겨울이 오고 있음을 느꼈다. 어쩌면 그녀가 찾는 초가을이란 한 해가 지나도 오지 않을 것만 같았다. 그녀는 겨울날 낙엽처럼 아예 짓밟혀 덮일 것만 같았다.
창문을 닫았다. 그러곤 손에 쥔 낙엽을 털어내었다. 손에 남은 낙엽이 있음에도 그녀는 그냥 손에 얼굴을 묻었다. '아 겨울이다. 아 결국 겨울이다.' 하고 되뇌며 낙엽 위로 물을 흘렸다. '내년 가을이 온다면. 내가 찾던 가을이 온다면 나는......'
닫힌 창문에 계절감은 감춰진 지 오래였다. 그녀는 가을을 기다린다. 생명력이 바스러질 가을을. 그리고 손에 남아 간직할 가을을. 어쩌면 영원히 오지 못할 가을을, 다시는 푸르지 못할 그 낙엽을. 낙엽보단 낫다고 생각하는 그녀의 한심함을 보내며 다시 가을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