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이 내려오고 있다고
비 내린다, 장맛비.
처음엔 소나기인 줄 알았다. 어떤 전조도 없이 이리 내린다면 소나기일 거라고 생각했다. 생각보다 묵직이 내리는 빗줄기에 옷소매마저 다 젖고, 체온 뺏긴 팔은 서늘하기까지 하다. 추적이며 달라붙는 젖은 옷소매를 접어내기는 곤욕이었다. 오늘부터 장마라고 했던지. 여름철 장마가 지나고 나면 정말 여름이 온다고 했다. 장마는 멈추지 않을 것 같았지만.
그는 우산 대신 양산을 들었다. 장마라는데도 양산을 꿋꿋이 챙긴다. 튼튼한 양산이면 모를 텐데 약해빠진 양산, 빗줄기는 하나도 막지 못할 부실한 우산. 누가 보면 비웃을까 겁났지만 햇빛은 막을 수 있을 테지. 뜨거운 여름의 열정은 막아내고, 시린 아픔은 막을 수 없을지라도. 그는 양산을 들었다.
사실 양산도 매 순간 들 순 없을 터인데. 그는 매번 그 부실한 우산으로 해를 막아섰다. 어느 날엔 해를 맞이하는 것도 알아야 할 텐데 떠올렸지만 그는 매번 양산으로 그림자를 만들었다. 어두운 그 그림자, 식어가는 열기 속 그는 이것이 삶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다 비가 오는 날에는 구겨진 양산으로 그 장맛비를 맞았다. 소나기라는 핑계, 금방 그칠 것이라는 거짓말. 언제 망가질지 모르는 양산. 그에게 장마라는 사실을 아무도 알려주지 않은 것인지 그것이 궁금했다. 무참히 쏟아지는 빗줄기에, 콸콸 흘러내리는 하수구 물줄기에 가끔 발 헛디뎌 넘어져 온몸이 젖어버리고 넘어지기 일쑤였지만. 그리도 그는 양산을 버리지 못했다. 어쩌면 비보다 두려운 건 햇빛이었을지도 모른다 떠올렸다.
해가 두려워진 것은 언제였는지. 장맛비를 막아내지 못한 것은 언제였는지. 사실 그는 소나기라도 막을 여력이 없는 사람인데. 왜 매번 비를 맞고만 있는지.
쏴아아- 비가 내리는 어느 날.
그는 힘없이 양산을 펼치고 무서운 비와 맞서 싸운다. 거센 바람에 흔들리는 양산, 보이지 않는 시야. 어두운 세상, 차가운 온도. 더럽혀진 팔과 다리. 의미 없다 생각하며 이제 양산조차 버거운가 고민하던 터에. 양산엔 아주 작은 구멍 여러 개. 장마는 뚫을 수 없는 작은 구멍. 장마가 언제 끝난다는 말은 없는데 왜인지 오늘 장마는 마지막일 것 같아서. 소나기는 뚫어도, 장마는 뚫지 못할 것 같아서. 그는 두려움을 느끼는 것도 같았다.
쏴아아- 빗줄기가 조금 여려지고. 어느새 그친 비. 구멍 사이 쏟아지는 햇살. 떨어진 체온에 온몸이 떨리고. 빗줄기 소리 없이 정적과 고요. 그는 빗줄기 대신 울었다. 장마였구나. 이 부실한 양산은 나를 지켜주지 못하는구나 하는 한탄 속. 흐느껴 울며 내뱉는 두 마디.
희망이 내려오고 있다고.
장마가 끝이 나고 있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