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내는 것은 그저 가을의 낙엽

사랑은 가을을 닮았다

by 유월

사랑을 피워내는 건 봄이라고들 한다. 복숭아빛 뺨, 따스한 공기. 겨울 다음이 봄인 것은 차가운 마음이 뜨거워지기 때문이라고 이야기하곤 했다. 그들의 생각에 사랑은 가을이었다. 차가움이 느껴지다가도 그의 손을 잡으면 뜨겁게 타오르는 것이. 푸릇한 청춘의 잎사귀, 붉은빛 비쳐 뜨겁게 타오르고 져버리는 것이. 청명한 가을 하늘, 끝없이 환하게 빛나는 것은 그들의 관계를 가장 잘 설명할 무언가라고 생각했다.

사랑은 결코 나약하지 않다. 조심스레 내려앉은 모든 것들이 그랬다. 잠자리는 그저 비행하는 것처럼. 주변을 빙빙 맴돌다 강가에 낮게 내려앉는다. 사랑의 말은 잠자리를 닮았다. 빙빙 맴돌다 귓가에 차분히 내려앉는 것.
사랑의 표현도 그러했다. 가벼이 주변을 맴돌아 입술에 축 내려앉는 것이. 차가운 입술이 맞닿아 뜨거운 숨결 나누는 것이 가을을 닮았다.

그들의 입맞춤은 그러했다. 쫓고 쫓기는 사랑의 반복에서 그는 그녀를 앉히고 조심히 당겨냈다. 늘 도망치는 그녀를 찾는 일을 멈추지 않았다.
손을 조심히 잡아당겨 품에 안고, 조용히 목덜미를 감싸 안았다. 눈동자의 맞춤에서 열을 올리곤, 입술을 조심히 만졌다. 부끄러운 그녀가 도망치려 하거든 고개를 감싸 안았다. 뜨거운 입맞춤이었다. 청명한 가을 하늘 떠올리지 못할 뜨거움이었고, 단풍보다도 붉은 사랑이었다. 가을이 무한하다면 이들에게 사랑은 영원한 뜨거움이 되어줄 것 같았다.

그녀는 조용히 숨을 내뱉고, 그는 그런 그녀의 숨마저 갖는다. 농염한 사랑은, 가을에 피어났다.

조금씩 가을이 붉은 단풍을 시들게 만들고, 추워진 날씨에 옷깃을 여며 스스로를 따뜻하게 만들 때쯤. 그녀는 그런 생각을 했다. 봄에서 여름이 오듯, 여름에서 조금씩 식어갈 가을이 오듯. 가을이 지나면 그들의 사랑이 식어가진 않을까 떠올렸다. 기우였다, 불안이었고, 무책임한 회피에 가까웠다. 그러나 그녀는 그와의 사랑을 나누는 동안에도 그런 생각에 갇혔다. 불필요한 생각임을 알았음에도 멈추지 못했다.

어느 날 그가 메어준 목도리에 신경질을 낸다. 답답하다고 투정을 부린다. 그것이 답답함을 표현한 것이 아님을 그녀는 알았지만, 그는 미처 알아내지 못한다.

"답답해, 너무 춥고."

"자기야, 내가 어떻게 해주면 좋겠어?"

"그냥 알아서 좀... 챙겨주면 안 되는 거야?"

단풍은, 낙엽은 언젠가 시드니까. 시들어 떨어지기 전 아름다운 모습으로 떨어지길 바랐나.

"나는, 원래 이런 사람이잖아."

"그런 말은 하지 않기로 했잖아."

하지 않아도 될 차가운 말, 가을 공기는 이리 고요하지도 차갑지도 않은 데. 하늘을 나르던 잠자리도 차가운 물가에 내려앉지 않는데.

"자신이 없는 거지?"

툭 던진 말을 돌이킬 수 없음을, 누구보다 잘 알았기에. 겨울이 오는 게 두렵다고 이야기하지 못했다. 사랑을 입에 올린 것은 사실 두려움이었다고 미처 전하지 않았다.

"왜 날 사랑했어? 보잘것없는 나를 왜 사랑했어?"

대답하지 않아도 되는 대답, 그러기에 찾아온 정적.

"......"

그녀도 스스로 돌이켜내면 불필요한 질문, 그러나 자신 없던 질문. 대답을 바라지 않아서 슬프게 와닿던 그 대답들.

"자신은 자기가 없는 거 아니고? 내가 뭘 어떻게..."

그날의 열기는 온데간데없이, 차가운 가을만이 남고 전하지 않아도 될 이야기들만 둥둥 떠다니는. 상처로 남아 평생 아파올 이야기들.

"네가 날 버리고 싶은 건 아니고? 왜 항상 도망쳐? 나는 항상 여기에 있는데. 왜 너는 항상 도망쳐?"

예전처럼 그가 그녀를 당기지 않는다. 안아주지 않는다. 좀만 더 밀어내면 겨울이 올 것 같은데. 좀만 더 시간이 지났다면 그가 그녀의 목도리를 매어줄 텐데.

"나는, 그런 게..."


"있잖아, 사랑은 차갑기만 한 게 아니야. 영원한 것도 아니고. 불변하는 것도 아니야. 차갑대도 뜨거워질 날을 기억하는 거고. 뜨거운 순간을 기억하며 타오르는 거야."

그가 그녀를 밀어내는 것은 심장이 차갑게 식어가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뜨거울 자신은 있어? 내 마음마저 불신하고 싶은 건 아니고?"

그가 외면하고 돌아선다. 가지 말란 이야기를 미처 내뱉지 못한다. 잎사귀가 떨어져, 시든 잎. 겨울바람이 불어와. 차갑게 식은 마음이야. 부스러질 사랑이야. 계절은 돌아오지 않을지도, 그가 돌아오지 않을지도.

사랑을 물어봐, 계절에게 물어봐. 가을의 뜨거움은 나의 것이 아니라고. 계절 따위 돌아오지 않으면 좋겠다고. 시들어 떨어질 낙엽이 어쩌면 가을과 닮았다고. 사랑은 역시나 가을이었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