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름 한 점 없는 오늘

평온한 하루

by 유월

내가 사랑하는 계절이 왔다. 가을의 청명의 계절이라 하던가. 난 이 가을의 적당한 온도가 좋았다. 청명한 하늘도, 적당한 바람도. 평안한 이 계절을 사랑하고 있었다.


예쁜 구름도, 모난 구름도 없는 청명의 날씨. 구름 한 점 없는 하늘에 남몰래 취한다. 때론 빈도화지 같은 하늘이 가장 아름답다는 걸 사람들은 모른다. 난 그것이 좋았다. 나만이 간직할 오늘의 하늘이. 가을 하늘을 담은 그것이 좋았다.


가을 되면 여러 음식들을 먹을 수 있었다. 여름철 미처 팔지 못해 남은 빙수를 초가을에 맛보며. 부쩍 추워진 날씨에 겨울철 음식들이 나오기도 하고. 과일가게에도 다채롭게 과일들이 쏟아지곤 한다. 그에 맞춰서 내 식탁도 풍성해지니, 가을은 살찌는 계절이다 떠올리곤 했다.


옷들도 무척이나 포근한 느낌이다.

친구와의 약속에 옷을 고르는 것이 즐겁다. 나는 가을에 코트를 걸치는 것을 좋아했다. 바람에 나부끼며 펄럭이는 것이 제법 멋지게 보이잖아. 아우터 하나로 패션이 완성되는 것이 좋다. 대충 맞춰 입으면 멋진 차림으로 보일 수 있을 테니까.


"올해의... 유독 청명한 가을."


가끔 그런 사실을 잊고 산다. 생일은 일 년에 한 번 뿐이라며 그리 아쉬워하면서. 이 계절의 모든 순간은 한 번 뿐이라는 것을 모른 체 살아간다. 오늘 하루도 일 년에 하루뿐인데. 계절도 다른 날들이 돌아온대도, 그것은 일생에 한 번뿐인데. 그걸 알아차린 뒤로 하루를 특별히 여기고자 노력한다. 특별한 오늘이 모인 삶은 더욱이 아름다울 것 같아서. 오늘의 가을을 곱씹는다. 눈에 가득히 담아내본다.

작년 가을엔 그런 사실을 잘 몰랐다. 언젠간 또 돌아올 하루를 기다리는 게 바보처럼 느껴졌다. 남들보다 하루를 소중히 여기지 못하는 걸 알아차리지 못한 채. 작년보단 더 특별한 계절을 보내야겠다.


"이번 가을엔 뭐 하며 보낼 거야?"


"음 올해는, 다이어리 써보기?"


"다이어리는 겨울에 사는 거 아니야?"


"그치, 그런데... 난 매번 의지가 약해서 일 년을 채워내지 못하더라."


남들과 다르다는 걸 인정하고, 나만의 계절을 피워내는 것. 내 답변이 어떤 반응을 이끌어낼까 두려워하지 않는 것.


"올해 가을부터 시작하면. 재고처리된 다이어리가 많지 않을까? 비워진 장이 많으니까 부담감이 없을 것도 같고."


"돈도 아끼고, 죄책감도 줄이고?"


"그렇지, 차마 다 쓴다고는 못하겠다. 그냥 시도해보고 싶네. 그리고 가을 낙엽이 예쁘잖아. 난 다이어리에 꼭 낙엽을 붙이고 싶더라고."


부츠 소리는 또각이고. 친구의 웃음소리, 그리고 내 웃음소리. 펄럭이는 코트 소리. 여전히 구름 한 점 없는 하늘.


"사진이나 찍을까?"


"너만 예쁜 코트고. 나는 맨투맨인데? "


"옷 예뻐 보여? 네 옷도 예쁜데."


친구가 어깨를 툭 쳐낸다. 나는 빙긋 웃어 보인다.


"그러면 하늘이나 찍을까?"


"구름 한 점 없는데?"


"난 그게 좋더라. 구름 없이 청명한 가을이."


카메라를 잡고 맨투맨 차림의 친구를 지나, 하늘로 손을 뻗는다. 그 사랑을 사진에 담는다. 누군가는 이런 공허한 하늘을 왜 찍느냐며 되묻겠지만. 사람들은 여전히 자신의 계절을 모른다. 나만의 계절, 내가 사랑하는 부분 그리고 조각. 구름 한 점 없는 가을이 아름답다는 걸을 나만이 안다.

별일 없는 하루, 무탈한 하루가. 행복한 하루보다 값질 수 있음을 모른다. 이 무탈함이 좋다. 평온한 하루가 기쁘다.


"봐, 예쁘지?"


가끔 나도 되물어. 나의 계절이 어찌 보일지 궁금해서. 그런데 나는 그럼에도 내 계절을 사랑할 것 같아.

나는 그저, 내가 사랑하는 걸 나누고 싶을 뿐이거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