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4
"무슨 정신으로 한 주를 보냈더라."
눈을 뜨니 또 출근날이 되었다. 어떤 말로 준을 대했는지 기억이 나지 않았다. 그날 같이 하교를 했고. 하교 때쯤 캡틴의 문자를 받았었다. 준은 그 연락이 궁금한 듯했지만 크게 물어보지 않았고, 나도 바로 답변을 보내지 않았다. 주말도 아닌데 칼답을 할 필요 있나 하는 생각이었다.
'맞아, 그리고 그 연락... 결국 출근 안내 문자였지.'
그 연락엔 이번 주도 출근 가능하냐는 질문과 웨딩 안내가 적혀있을 뿐이었고. 매우 형식적이었다. 웨딩홀 단톡방에 5층 인원은 초대하지 않는다고 들었다. 그렇기에 캡틴이 연락을 보내온 것 같았다. 단톡방에 초대조차 해주지 않는 건 황당했지만. 준의 프사엔 내가 같이 나와있기에 준에게 연락을 해도 되었을 텐데 하는 생각이 들었다.
오늘 웨딩은 11시, 마지막 웨딩은 3시였다. 오늘은 뭔가 연장 근무를 시키실 것 같은 느낌. 좀 더 힘을 내보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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덜커덩 버스에 몸을 맡기고 오늘도 노래를 듣는다. 고작 3번째 출근인데도 크게 어색하지 않았다. 오히려 등교가 더 낯설었으니 이제 꽤나 직장인다운 모습이려나. 노래 가사가 귀에 들어오진 않는다. 그냥 노래를 들으며 출근하는 것에 집중해낼 뿐이었다.
'오늘은 잘 해낼 수 있을까. 부장님은, 하... 혼날 것 같기도.'
항상 퇴근길이 발걸음이 무거웠는데. 오늘은 왜인지 출근길부터 발걸음이 무겁다. 준과의 관계도 완벽히 회복된 기분이 아니라서 그런 건지. 유독 출근길조차 버거웠다.
웨딩홀에 들어가 다시금 종이로 복기를 하고, 어색한 나를 마주한다. 출근길이 익숙해진대도 거울 속 화장기 가득한 내 얼굴은 낯설다. 19살이래도, 10대는 10대인가 보다. 20살처럼은 전혀 보이지 않는 것이. 습관적으로 눈을 비비려다 멈춘다. 아이라인이 번질 것 같았다.
'불편하다, 눈도 못 비비고. 얼굴도 마음대로 못 긁고...'
준이 인사하러 올 일은 없을 테니 나가는 즉시 업무를 시작하면 될 텐데. 다리가 무겁다.
화장실 문을 열고 나가니 익숙한 얼굴이 보였다.
"안녕하세요?"
"어, 어..."
캡틴이었다. 저 큰 키, 여유 있는 표정.
"아, 죄송합니다. 인사 바로 못 드려서..."
"제가 먼저 인사하겠다고 했잖아요. 출근 잘했네요. 근데, 이렇게 일찍 올 필요는 없는데. 돈 더 안 준단 말이죠."
"아, 부장님이 일찍 출근하면 좋아한다고... 전해 들어서."
"그쵸, 근데 지금은 부장님 아직 3층에 계시잖아요?"
"어, 네 그쵸."
"어느 정도 꼼수 알려줄까요? 일요일엔 일찍 오실테니까. 일찍 오려면 일요일에 일찍 와요. 그래야 들키지."
"아, 네 감사합니다."
캡틴은 하하 소리 내어 웃더니 주머니를 뒤적거렸다. 대화가 뭐 이리 정신이 없이 흘러가는지. 나는 그냥 눈을 굴리며 캡틴을 바라볼 뿐이었다.
"이거요, 드리려고 가져왔어요. 단 거 좋아하죠?"
"아, 네 감사합니다. 어떻게 아셨어요?"
"일요일에 뷔페 왔잖아요. 초밥은 안 먹고 디저트만 먹길래. 아직 어리네요."
"아... 맞아요... 감사합니다. 저는 드릴 게 없는데. 어떤 거 좋아하세요?"
"제가 19살한테 뭘 얻어먹어요. 나중에 인사 먼저 해주세요. 이제 10분 전 되었나? 이제 업무 슬슬 복귀하시죠?"
"네, 이제 복귀 슬슬 할 때예요."
"오늘은 3층 오시려나? 일단 저도 갈게요. 고생해요."
"네! 감사합니다."
나 되게 바보같이 말한 것 같은데?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어버버 말을 더듬기 일쑤고, 어... 네... 하고 말을 흐리기 바빴다. 내가 봐도 너무 사회초년생처럼 구는 것 같았다. 거기에 달달한 초코바를 손에 쥐니 정말 어린아이가 된 기분이었다.
캡틴의 말이 귀에 웅웅 도는 것 같았다. 물론 간식을 받아도 그다지 부담스럽다고 느끼진 않았다. 사회생활을 많이 해본 어른의 느낌. 다정한 사람 같다고 느꼈다.
'프로답다고 해야 하나... 그래도 힘이 나네.'
처음으로 이름을 알려준 캡틴, 도훈. 친해져서 나쁠 건 없어 보였다. 적어도 블리스 웨딩홀에선 가장 다정한 어른이 되어주었으니까. 오늘은 일을 잘 해낼 수 있을 것 같았다.
"안녕하세요, 블리스 웨딩홀입니다."
목소리에 힘이 들어간다. 오늘은 조금 더 웃어 보였다. 일은 늘었고, 힘을 얻었고. 자신이 있었다. 나도 잘 해낼 수 있을 것 같단 생각. 오늘이라면 3층에도 내려갈 수 있을 것 같았다. 무모한 자신감이래도 민족스러운 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