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4
"아가씨가 그래도 친절하네."
"아이고, 아저씨. 요즘 애들한테 아가씨라고 하면 안 좋아해요."
"아, 아닙니다. 괜찮아요!"
손님들이 아가씨라고 부르는 경우가 더러 있었다. 처음엔 당황하기도 했지만, 그다지 의식하지 않았는데. 저런 말씀을 들으니 그냥 웃음이 나왔다. 아가씨란 말보다야 말투가 더 중요한 것 같았다. 간혹은 학생이라고 부르는 경우가 많았는데. 학생이란 이름과, 일을 하는 나의 모습엔 괴리감이 들어 가끔 멍한 기분이 들긴 했다.
오늘 웨딩은 한적한 편이었고, 진상도 없었다. 더 친절하게 할 수 있었고. 오늘은 날씨도 그다지 춥지 않았다.
"안녕하세요, 블리스웨딩홀입니다."
"이것 좀 도와줄 수 있나? 내가 늙은이라 잘 몰라서."
"네 고객님, 도와드릴게요. 폰 저 주시겠어요?"
폰을 받아 큐알체크인을 도와드리는 건 전혀 어렵지 않았지만. 고가의 최신폰을 받을 때면 조금 긴장이 되곤 했다. 떨어트리면 몇십은 깨질 텐데 이렇게 열흘을 출근해도 보상해 낼 수 없을 것이다. 그런 생각을 하면 바짝 힘이 들어갔다. 물론 그걸 의식하지 않고 일을 해내려 노력했다.
'근데 저렇게 정중하게 부탁해 주시는 분은 처음 보네. 오늘 되게 따뜻한 하루다.'
웃음이 지어졌다. 다정함은 하루를 바꾼다. 말보단 억양, 행동, 분위기가 내 기분을 좌우한다. 문득 주머니에 넣은 초콜릿이 너무 따뜻해 녹아버릴까 걱정이 될 만큼.
"아, 부장님 오셨어요."
"응, 오늘 30분 정도 내가 볼 테니까 밥 먹고 와라. 오늘은 뷔페는 아니고. 그냥 대강. 뭔 말인지 알지?"
"네네. 다녀오겠습니다."
30분 동안 먹을 거라고 해봐야 편의점 빵정도겠지 생각하고 발걸음을 옮겼다. 휴게실에 들러 잠바를 걸치고 입김을 후후 내뱉는다. 휴게실에 준의 잠바가 없는 걸 봐서는 준도 식사를 하고 있는 것 같았다. 딱히 싸운 건 아닌데 묘하게 어색해서 굳이 준을 찾으려 노력하지 않았다. 웨딩홀 밖으로 나가니 또 자욱한 담배연기가 가득 찬다.
'담배연기, 진짜 싫다 옷에 담배향 나겠다.'
인상을 쓰며 공기를 휘적휘적 저어냈다. 그리곤 눈을 깜빡거렸다. 난 그동안 담배에 대해 부정적인 생각을 갖곤 했다. 성인이 되어서 피는 거야 제지할 수 없을 테지만 미성년자가 담배를 피우는 건 정말 불량해 보인다고 생각했다. 담배 향도 싫지만, 담뱃재를 탁탁 털어대는 것 하며, 후우 내뱉는 담배연기도 지독히 싫었다. 적어도 학생다운 행동은 아닌 것 같았으니까. 그러니, 내 앞에서 저런 모습으로 담배를 피우는 건 적어도 학생은 아니어야 할 텐데.
"준아."
시선 끝에 가장 바라지 않던 사람이 서있다. 불량한 자세로 담배연기를 내뿜고, 담뱃재를 흘리며. 난 그동안 준을 믿었는데. 준한테 주말마다 담배향이 났던 이유, 저번 퇴근길에도 황급히 손을 숨긴 이유. 고작, 이딴 이유였겠구나.
내가 생각하던 준은 이런 사람이 아니다. 적어도 미성년자인 준이 담배를 피우고 있으리라고 생각한 적 없었고. 준도 내게 담배를 피우지 않는다고 말했다.
"너 담배 피워?"
"그게..."
"왜 대답을 못 해? 너 지금..."
자욱한 담배연기, 그 사이에 준의 모습은 낯설지 않았다. 전혀 모나지 않고, 자연스레 동화되어 있었다. 원래 그랬듯, 앞으로도 그러하듯.
"... 어떻게 거짓말을 해?"
"내가, 설... 설명할게."
"담배 더 펴. 돈 아깝다..."
준이 날 따라오려다 주변 사람에게 붙잡히곤 그저 담배를 후 내뱉고만 있고. 나는 콜록콜록 기침을 내뱉는다.
결국 무작정 엘리베이터를 잡아 웨딩홀 옥상으로 올랐다. 준에게 들을 말 따위 없으니. 사실 담배를 피우는 준을 마주하고 싶지도 않았다. 실망스럽다기보단 그냥 어떤 낙인이 찍힌 기분이었다. 준이 어떤 말을 한대도 나는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담배 피우는 양아치.'
준과 만난 건 별 다른 이유가 아니다. 공부는 잘하지 않더라도 예의 바른 모습이 보기 좋았다. 준은 선생님에게 인사를 잘하는 학생이었고. 수업을 듣진 않아도, 예의 없이 수업시간에 자는 학생도 아니었다. 매일 자전거를 타고 학교에 왔고. 꿈을 키워가는 대단한 사람이었다. 적어도 행실이 불량해 보이지 않았고. 나를 속일 사람 같아 보이진 않았다.
문득 준의 친구들이 겹쳐 보이는 것은. 그 불량한 친구들이 준을 물들인 것인지 알 수 없었기 때문이었고. 혹여나 준이 그런 사람이기에, 그런 무리에 어울린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었다.
"정말... 언제부터."
사실 중요하진 않다. 지금 와선 중요하지도 않다. 무작정 옥상으로 올라 맑은 공기를 마시고 싶어 졌고. 옥상 문을 열어 찬 바람을 맞았다.
"어.... 어, 사람이..."
사람이 있었다, 나보다 먼저 이 찬 공기를 맞는 사람.
"캡틴..."
"밥은 먹었어요?"
놀라 말을 더듬고 그를 바라보자 그의 주변은 뿌옇거나 흐리지 않아 명확히 그가 보였다.
'담배, 안 피시는 구나.'
혼자 말없이 그를 응시하자 그가 웃어 보인다.
"왜 그래요, 내가 담배 필 줄 알았구나?"
그가 가까이 다가오자 후욱 남자의 짙은 향수 냄새가 코에 닿는다. 난 당연히 그가 담배를 필 거라고 생각했는데. 그는 그저 웃는다. 나는 그저 멍하니 그 여유로움에 빠졌다.
"표정이 안 좋네요? 일이 힘들었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