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빙
그는 맨발로 눈을 즈려밟고, 그런 이야기를 했다. '끝이야, 끝이야.' 시린 발끝으론 마지막을 느꼈고. 삶의 끝자락을 느꼈다. 언젠간 차갑게 변할 이 육신의 온기라 떠올리면서.
그는 매트조차 틀지 않았다. 어차피 추워 죽든, 내 의지로 죽든 똑같을 테니까. 그럼에도 이불만은 포기하지 못한 것은, 이불 없이 한숨도 들지 못하는 자신의 무력함 때문이었다. 그는 이불을 덮고 잠에 드는 자신을 무척 한심히 여겼고, 이내 조롱하기 바빴다.
허나 얇은 이불을 덮고 드는 잠은 깊지 못했고. 이번에 깨면 난 이 세상이 없을 것이란 우스운 생각은 지켜진 적이 없다. 얕은 잠의 반복은 그가 무의미하게 오래오래 버틸 것이라는 걸 증명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보일러조차 튼 적 없으니 코끝은 시렸고, 손발은 굽었다. 입김만 나오는 이곳에서 굽어버린 손을 위해 하아- 숨을 불어넣는대도 꼿꼿하게 펴질 일조차 없었다. 손을 펴기 위해 다시금 침대에 몸을 눕히고, 무거운 육신 밑에 손을 밀어 넣고 나면 조금씩 아파오는 것이 삶의 무게라고 제멋대로 해석을 내렸다. 겨우 온기를 얻은 손은 아파올 뿐이었지만.
겨울이라 상하지 않겠지 하는 마음으로 음식물을 밖에 그냥 널부러두었고, 매일 찬밥을 먹었다. 밥을 먹을 때마다 온몸이 서늘해오는 것에, 털이 쭈뼛 서곤 했지만.
요즘은 날이 무척 빨리 어두워진다. 시간 상관없이 잠이 들던 그에게 중요한 일은 아니었지만 부쩍 일찍 잠에 드는 것도 같았다. 삶의 주기는 늘어지고만 있었다. 그는 어두운 시간을 견디지 못한 채, 다시금 내일이 오지 않으리란 기대감 끝, 잠에 빠졌다. 조금이나마 빛이 들어오는 시간엔 커튼을 걷어치웠다. 그러면 영원한 잠에 들 수 있겠지.
날이 얼마나 지났을까. 달력에 체크하는 것조차 잃어버려서, 뉴스를 틀었다. 눈이 펑펑 내리는 어떤 날이었다. 아 그래 눈이라면 내 작은 육신을 덮어주겠지.
걷어친 커튼을 다시금 걷어내 창문을 열었다. 긴팔에는 눈송이가 매달려 물방울로 변해버리고. 코끝엔 눈송이가 매달린다. 시린 코끝이 저리게도 아프다. 날리는 눈송이가 눈에도 맺히고, 심장에도 맺힌다. 지금 내리는 눈은 비가 되고, 심장이 식게 만든다. 워낙에 춥디 추운 이곳인데. 왜 열을 내어 뜨거워지는지 도무지 알 길이 없어서.
기나긴 겨울이 끝날 것만 같았다. 그가 사랑할 추운 겨울은 끝날 것만 같았다. 고작 이 눈으론 그를 감출 수 없을 것 같았다. 어린아이처럼 털썩 주저앉고 만 그는. 눈송이를 눈에 매단다.
오늘은 겨울이 아니란다. 초봄 눈치 없는 눈송이의 방문이었단다. 눈은 많이 내리지 못할 거라고. 쌓이지 못할 거라고. 금세 눈 녹듯이 사라져 내릴 거라고. 얇디얇은 이불로도 금세 따뜻해져 버릴 거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