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획은 계획에서 벗어나기 2020년 1월 기록
내 인생에 모든 일은 대부분 계획을 설계함에 있어 비롯된다. 하지만 아이러닉 하게도 자주 들었던 말은 즉흥적 이라거나 너무 감정에 휘둘린다는 말이었는데 물론 그럴 때도 있다. 하지만 대부분 오래전 생각해 왔던 그것도 꽤나 자세히 나열해 둔 것들을 그제야 꺼낸 것 일뿐이다. 한 가지의 예를 들자면 재작년 크로아티아로 여행을 떠났던 것. 어디 가서 말하기도 싫었던 어떤 것에 무척이나 억울해 미쳐버리겠는 스스로를 위해 나는 이딴 대접을 받으면서 살 순 없어하고 겁도 없이 다니던 회사를 관두겠다고 가족들에게 으름장을 놓았지만 겨우 이주동안의 휴가를 받아왔다. 그러고 열흘남짓 여행을 계획하고 떠났다. 내 친구는 유럽에 가는데 아깝게 한 나라만 가냐고 했지만 나는 아니 지금 전부 나한테 너무 많아서 버거워죽겠는데 여행까지 여러 군데를 다니라고? 하며 되묻는 나에게 어 그래 것도 그렇지 하고 말아 버리는 내 친구. 사실 한 나라만을 갔지만 거기서도 딱히 한건 없다. 그저 반나절이 넘는 시간 동안 쉼 없이 거리를 걸은 것, 셔츠 속 가슴 중간으로 땀이 흐르는 게 느껴져도 그저 걷고 걸었다. 호텔로 돌아와 글을 쓰고 음악을 듣고 잠 오면 잠을 자고 밖이 밤인지 낮인지도 모르고 일어나 허벅지를 벅벅 긁으며 커튼을 제치고 쓱 보고는 바깥 구경을 하고 미술관에 갔다. 시간이 나를 감싸 안고 그래 시간 많이 줄게. 너 이제 뭐 하고 싶니? 하고 묻는 것만 같은 그 느낌. 계획을 하긴 했지만 그저 하고 싶을 것들을 나열한 것뿐 하지만 그 안에 나를 끼워 맞추는 일은 은근한 매력이었다. 돌아와 생각해 보니 계기가 거지 같았지만 어찌저찌 예전부터 생각했던 일을 상황에 맞게 꺼내어 실행을 시킨 것이었다.
그리고 지금
이곳으로 오기 그래서 거기 가서 뭐 한다고? 누군가의 물음에 사실 너한테 다 얘기하지 않아도 되잖아? 하며 그냥 뭐 한번 살아보는 거지.라는 대답을 하다가 상대가 나를 바보처럼 바라보는 시선에 알량한 자존심이 나를 붙잡아 사실 별로 공유하고 싶지 않았던 계획을 그 시선을 지우려 술술 불어댔다. 그 누군가는 니 계획대로 다 되면 세상사람들 다 성공하지 라는 대답. 웃으며 들은 대답이었지만 그 장난스러운 얼굴 뒤에 느껴졌던 날 선 공격에 그래 그것도 맞는 말이라 열이 받았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내가 괜한 짓을 하고 있나 했지만 이내 고개를 저었다. 사실 나는 계획을 할 때 엄청나게 자세히 계획을 하는 편이다. 플랜 A부터 플랜 D까지는 마련해 둔다. 유학을 오면 다소 비슷한 처지의 사람들을 만나게 된다. 그땐 내 나이 스물일곱, 스무 살 풋내기들이 모여있는 무리에서 언니는 어떤 계획이냐 물었을 때 술술 나오던 내 대답을 들으며 우와 하는 표정들을 앞에 두고 은근한 우월감과 안도감을 느끼기도 했다. 아 그래도 이게 가능성 있는 건가 보다 하고 자위했다. 녹록지 않은 삶을 등지고 욜로를 외치며 계획하지 않은 삶에 내 전부를 맡겨보고 싶기도 하지만 인간의 삶이라는 게 불안함과 공존을 해야만 하기에 또 치열하게 만약을 대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