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자의 사정

퇴사

by Elora szu

더 일찍 갈 것을 그랬던가 무의미하게 보내는 시간들이 너무 좋은데 너무 아까운 내 시간들. 나중을 위해 아껴두는 돈으로 지금 당장은 아무거도 할 수 없으니 지금의 시간을 죽인다.. 그럴 수 없어서 우선 일어나 앉았다. 그대들이 말했던 젊음을 낭비하는 시간들이 아니었으면 해서 그리고

2019.02월의 어느 단락.



이때의 나는 이제 막 퇴사를 하고 한 달간의 무의 시간이 주어진 때.

내가 한창 일의 흥미가 극에 달하는 시점 내가 가장 부러워했던 친구가 있다. 나는 인문계를 떨어지고 어쩔 수 없이 실업계 고등학교를 찾아 운 좋게 여상에 입학을 했다. 그 덕에 인문계 고등학교보다 더 다양한 미래를 생각하는 친구들과 지낼 수 있었다. 하지만 여러 방향을 생각할 수 있었음에도 우리 집 가정환경 상 고등학교 졸업 후 스스로 본인의 미래를 그리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웠으므로 토를 달지 않은 채 성적에 맞는 대학교를 입학했다. 그러고부터 5년쯤 뒤였을까 그 친구를 다시 만날 수 있었는데 그 친구는 얼마 전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본인이 좋아하는 일을 찾아 이십 대 중반에 대학교에 입학을 했다. 본인이 원하는 분야, 본인이 하고 싶었던 것이니 얼마나 열심히 공부를 했겠는가. 장학금도 심심치 않게 받으며 지금은 졸업을 하고 한 카페에서 어릴 적 친구와 함께 사업을 하고 있다. 참 얼마나 똑똑한 젊은이의 계획인가. 자 하지만 나도 나름의 스토리가 있다.

대학교 졸업해서 어디든 취직해서 일을 해야만 한다는 집안의 가르침에 교수님이 내미신 취업 오퍼를 뒤도 돌아보지 않고 받았다. 허송세월 보내는 것도 싫어하고 아니 사회에서는 젊은이들 취업이 어렵다는데 복이 들어왔다는 생각에 큰 포부 없이 무작정 회사를 나섰다. 그 덕에 대학을 졸업하기 전 꽤 탄탄한(그렇게 믿고 싶다) 중소기업 금형 설계 부품 수정업을 직업으로 갖게 되었다. 일 년 남짓 죽도록 하기 싫은 일과 굳이 내 인생에서 들을 필요 없는 얘기와 조언을 들으며 버텼다. 일 년이라는 시간에 버텼다는 말이 쑥스럽지만 그땐 정말 너무 싫었다. 사람이 무언가에 극한으로 몰리니 내가 어느 쪽으로 빠져나가고 싶은지 눈에 보였다. 나에게 휴일은 대부분 일요일 하루였는데 그 시간이 얼마나 소중한지 집에서 엉덩이를 붙이고 있을 수가 없었다. 온실 속 화초 같은 스물셋이었는데 아침 일찍부터 오후 늦게 한 오후 8시쯤 퇴근을 하는 게 너무 억울해 일요일이면 늘 몰에 가서 옷구경을 하고 잡지를 사서 모으며 대리만족을 하곤 했다. 사실 지금 내 나이 와서 생각해 보면 전문성 있었던 꽤나 멋진 직업이었던 것 같다. 한 달 대부분 6일 근무해야 하는 것만 빼면 말이다. 하지만 그때 알았다. 내가 원하지 않는 일에 어느 날 뚝 떨어져 보니 아 나는 참 하기 싫은 건 절대 못하는 사람이구나. 참을성이 없다는 것이 이런 거구나. 근데 또 참 이 질풍노도의 어린 어른을 마주했을 사람들이 얼마나 골치가 아팠을까 싶다. 인생을 주체적으로 살아야겠다는 마음가짐의 시발점이 이 회사 덕이었다. 고마운 회사다.

아무튼 또 결국엔 이게 내가 바라던 인생이 아닌 것 같아 그 아무도 몰래 패션 리테일 인터뷰를 보고 퇴사 후 3일 만에 새 일을 시작했다. 그렇게 행복할 수가 없었다. 한창일에 빠져서 많은 것을 배우고 좋은 사람들과 즐겁게 일했다. 이게 인생이지 싶었다.


이십 대 후반 퇴사를 결정하고 새로운 길을 찾아 나섰다. 토론토로 행하는 비행기 안에서 앞으로 계획을 세우며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 생각했지만 또 결국 나이에 따라 비주얼라이징 하고 있었다. 그러다 나이 지긋하신 우아한 승무원이 물이 필요하냐 물으신다. 처음 갔던 에글링턴 스타벅스. 임신한 점원이 내 주문을 받고선 이름이 무엇이냐 웃으며 물어본다. 처음 사귄 친구는 30대 초반의 나와 비슷한 사연을 가진 똑순이 언니였고 언니는 이번에 컬리지에 입학했다. 에첸엠 캐나다에서 사귄 친구는 입구 근처 정리하고 있던 나에게 추우니 마감하고 다 같이 하자고 한다. 10년 동안 파트타이머로 일하고 있는 친구는 본업과 파트타임을 병행하며 가정을 꾸리고 있다. 50대 후반 우리 이모나이의 여자는 스토어 매니저를 하고 있다. 참 보면 다양한 인생에 다양한 속도와 색깔이 있다. 의미 없는 시간도 필요하다. 젊음을 꼭 아이스크림 담듯 꽉꽉 누를 필요는 없다. 아버지도 엄마도 더 이상 걱정하지 않는다. 얼마 전 우리 동생이 2학년을 마치고 휴학을 결심했다고 한다. 넋두리하는 엄마에게 놓아버리는 것도 큰 용기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어쩌면 포기하지 않는 것보다 더 큰 용기가 필요 한지도 모른다. 무언가를 하고 있는 혹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 내 사정을 그리고 당신의 사정을 누군가는 그 마음을 알고 있을 것이며 각자에게는 나름의 사정이 있다. 한 번씩 비약적인 내 모습이 가끔 웃기기도 하지만 어쩌겠는가 그저 드물게 써둔 긍정적인 글들을 다시 꺼낼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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