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회 2019
한국에서 귀국한 지 겨우 며칠. Jetleg으로 뜬눈으로 한국에서 찍어둔 사진을 보다 전에 찍어둔 지하철에서 우연히 발견한 전시회 포스터. 가야지 가야지 하면서도 못 갔다. 내 비자는 이제 스터디에서 워킹비자로 바뀌었다. 그 중간동안 고작 몇 주 쉬는 거였으면서 기다리던 잡 오퍼 레터를 받지 못할까 봐 불안함에 잠도 못 자고 호흡도 힘들어 화장실 갔다가 밖에 갔다 염병을 했다. 전시회가 뭐야, 그 어디도 가지 못했다. 근데 정확히 몇 주뒤에 레터를 받을 거다 했으면 맘 놓고 내가 쉬지. 참 유별난 내 모습이 가끔 저 멀리 제삼자로 보이곤 하는데 우리 할아버지랑 꼭 닮았다. 친척들 사이에서는 하는 말이 있다. 주씨피는 못 속여. 주가들은 빨리빨리 집어치워버리고 행동으로 빠닥빠닥해버려야 직성이 풀리지. 안 그러면 속이 터져버리지. 우리 할아버지는 참 유별났다. 이가 아파서 음식을 못 먹는데 틀니 임플란트 그딴 거 돈 든다고 생니를 몽땅 잡아 뽑아버리셨다. 어릴 때 명절날 차를 타고 큰집을 가는 길 중간에 들러 할아버지와 할머니를 모시고 같이 가는데 그 좁고 낡은 세피아 안에서 무슨 연유에서인지 할아버지와 아빠는 빠짐없이 다투었다. 오래된 차 냄새로 속이 울렁거려 싫었을뿐더러 백미러로 보이는 인상 쓰며 소리치는 아빠가 그래도 본인 아버지인데 왜 저러나 참 밉기도 했고 할아버지가 이 없이 하는 말씀은 알아들을 수 없었다. 명절마다 까닭도 모른 채 좁은 차 안에서 싸우는 소리를 들어야 했던 나는 지금도 사람끼리 싸우는 소리나 누군가 소리 지르는 모습을 보면 심장이 요동친다. 중학교1학년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눈물 한 방울 보이지 않던 아빠가 너무 미웠고 이해가지 않았지만 할아버지의 아집도 알고 있었기에 부자사이에 무언가 있겠거니 했다. 몇 년 전 24살이었나 강릉 작은 고모네에 놀러 가서야 이유를 들을 수 있었는데 왜 그랬는지 알 수 있었다. 지울 수 없는 아픈 기억을 주신 할아버지가 미웠고 아빠는 불쌍하다 생각했다. 계획대로 되지 않을 때 무언가의 결과를 기다릴 때 참 쓸데없는 불안장애 같은 증상이 나올 때마다 마음을 다잡았다. 그런데 늘 그 바보 같은 불안함 앞에 졌다. 이번엔 고작 3주를 견디지 못해서 온갖 히스테리와 유난을 떨었다. 실내에선 숨 쉬는 것도 어려워 화장실이든 세탁실을 들락거려야만 했다. 결과를 받았다. 계획에 어긋나지 않는 적절하고 완벽한 결과였다. 부끄러웠다. 3주 동안 무의미한 염병짓거리 하면서 시간낭비했네. 호흡곤란증상도 나았고 방광예민증도 나았다. 허무했고 별나다 싶었다. 이제 와서 가고 싶었던 저 포스터를 보니 아니 왜 안 갔지????? 싶다. 이런 건 물려받고 싶지 않은데. 좁디좁은 감정을 넓혀보려 요가를 끊으려 한다. 근데 또 세상에서 제일 어려운 일이다. 요가 끊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