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요 하고 싶은 게 너무 많아요. 꿈이요? 행복하게 사는 거예요.
스물몇 살 나는 잔잔함을 몰랐고 하고 싶은 게 많다고 느껴지는 게 결국엔 딱히 하고 싶은 일이 없다고 해석될 수도 있다는 것을 몰랐다. 일주일 중 오 일을 열심히 살고 주말에 오래전 방영 했었던, 우리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살아 계셨던, 오랜만에 본 친척들도 그저 반가움뿐이었던 그 시절의 시트콤을 온종일 틀어놓고 우리 집 고양이가 잠에서 깨기만을 기다리는 나 스스로가 텅 비어버렸다는 것을 느꼈다. 혹시나 우울증이 올까 두려워 급박하게 다시 시작하고 있는 글쓰기.
하루가 끝난 뒤가 퇴근 후로 정의 되는 것이 싫어 게을러진 몸을 억지로 이끌어 집 근처 몰에 가 무려 20불짜리 노트에 펜을 샀다. 그럼 뭐 해 여기에 뭘 쓸건대. 우리 집 선반 위 놓여있는 노트를 볼 때마다 불편하다. 돈 주고 되려 죄책감을 사 왔다.
얼마 전 하고자 하는 일이 있어 일을 관두게 된 동료가 나에게 대뜸 물었다. 너의 long term goal이 뭐냐고. 사실 그런 대화 따위를 나눌 만큼 가깝지도 않았고 본인의 퇴사 후 대단한 목표를 말해주고 싶어 하는 것 같길래 나 그냥 행복하게 사는 거지라고 말하고선 되려 물었더니 본인이 원하는 대답이 아니었는지 나의 커리어적인 골을 묻는다. 살다 보면 신경 쓸 가치가 없는 상황이 생기는데 안타깝게도 그날따라 생긴 얕은 분노가 그 가치 없는 상황에 놓였을 때 나 스스로가 좀 불편해지는 뭐 쉽게 말해 얘 뭐라는 거야ㅋㅋ 하고 넘길 수 있는 일이 속에 남아 아 이 새끼 저 새끼하고 있게 된다는 말이다. 아무튼 그 기분을 겪으니 아 내가 지금 내 인생이 좀 불만족스럽긴 한가보다 하는 생각에 마음을 정리하는 시간을 가져보고 있다. 목적 없는 하루가 너무 좋다. 그저 보통의 하루를 스르르 보내고선 침대 위에 누워 우리 집 고양이 엉덩이나 만지고 있는 그 시간들이. 그런데 말이다, 그렇게 보내는 시간들이 길어지면 또 새로이 욕심이 생긴다. 아 이게 이렇게만 시간을 보내면 안 될 것 같은 그런 알 수 없는 마음, 그런데 또 내 몸을 일으켜 무언가를 해볼 에너지는 없는 그런 시간을 보내고 있다. 누군가는 고독의 시간에 창작의 욕구를 불태워 그림을 그리거나 음악을 만들거나 시를 쓴다는데 혹은 독하게 어떤 공부를 해보거나 새로운 목표를 정해본다는데 이 게으르고 살찐 몸뚱이는 아직은 그럴 생각이 없나 보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죄책감을 다스리려 스님이 쓰신 책을 한국에서 사 왔는데 스님의 말이에 자꾸 속으로 반박을 하니 이 철딱서니는 시간이 조금 더 필요한가 보다. 그래도 마음이 이제는 잔잔하고 무너진 잔해 없이 언제든 원한다면 무엇이든 해볼 수 있다는 감사가 생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