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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페이지 Jun 14. 2020

일요일 아침, 내가 본 것들

카페에서 책 읽기 전까지

 새벽부터 까악거리는 까마귀 소리에 눈을 떴다. 밤새 창문을 열어놓아서 어둠 속에서 들려오는 온갖 소리에 잠을 못 잤고 눈만 뜨고 있었지만. 가까워졌다 멀어졌다 하더니 근처에서 맴도는지 계속 가까운 곳에서 까악거림을 반복했다. 눈을 위로 치켜뜨고 창문 밖 하늘을 보았지만 틀에 갇힌 하늘에는 까마귀가 보이지 않았다.


 침대에서 내려와 다육이 화분이 놓인 창가에 쭈그리고 앉아 멍하니 밖을 내다보았다. 노부부가 강아지 한 마리와 함께 느린 걸음으로 산책을 하고 있었다. 노부부를 쪼르르 따라가다가도 강아지는 풀냄새를 맡고 돌냄새를 맡으며 자주 멈춰섰다. 조금 통통한 치와와처럼 보였다. 한때 치와와를 닮았다는 말을 자주 들은 적이 있어서 만약 강아지를 키운다고 해도 치와와는 절대 아닐 거라고 했던 기억이 난다. 주인과 강아지가 닮으면 좀 그렇잖아, 라고 했지만 뭐가 좀 그런지 지금은 모르겠다. 까악까악. 소리에 놀랐는지 치와와는 하늘을 향해 짖었다. 바들거리는 작은 몸이 온힘을 다해, 보이지 않는 까마귀를 향해 짖었다. 까마귀는 아마 쓰레기를 버리는 장소 근처에 있는 나무에 올라앉아있을 것이다. 쓰레기봉투를 버리러 갔다가 몇 번이나 까마귀를 보고 놀란 적이 있었다.

 집 근처에 산이 있어서 그런가. 평소 보지 못했던 새들이 찾아올 때가 있었는데 - 솔부엉이가 하룻밤 창가에서 자고 간 적도 있고, 박쥐가 방충망에 거꾸로 매달려 이틀 동안 자고 간 적도 있다. 방충만을 흔들어도 떠날 생각없이 잠만 자던 박쥐 때문에 전문가를 부를까 생각을 하던 차에 날아갔다.- 하지만 까마귀가 아파트단지에 거의 날마다 나타난 적은 없었다. 먹이가 부족해서 아파트까지 내려오는 걸까. 쓰레기봉투를 헤집고 있던 까마귀 세 마리의 모습이 기괴하고도 괴로워보였다.


 세수를 하고 슬리퍼를 꿰어신고 밖으로 나갔다. 계단을 내려가서 쓰레기장을 지날 때 나무를 올려다보았다. 잎사귀가 무성해서 뭐가 있는지 보이지 않았다. 쓰레기봉투를 내려놓고 시소가 한쪽으로 기운 놀이터를 지나고 세탁소를 지나서 빵집에 도착했다. 아침에 먹을 샌드위치를 만들 식빵을 샀다. 노부부와 강아지는 보이지 않았다. 까마귀 소리도 사라졌다. 날은 밝았는데 세상은 잠시 깨어났다가 다시 잠든 것 같았다.

 냄비에 물과 소금과 달걀을 넣고 삶았다. 멍때리기를 하다가 물이 다 증발한 줄도 모르고 있었다. 정신을 차렸을 때 냄비에 있던 물은 다 증발해버렸고 물기가 바짝 마른 달걀은 하얗게 질려있었다. 다행히 타지는 않았고 밑바닥만 약간 누르스름하게 눌어붙었다. 찬물에 헹궈 껍질을 깐 달걀을 숟가락으로 으깨서 마요네즈를 넣어 버무렸다. 며칠 전 만들어놓았던 토마토잼을 식빵의 한쪽 면에 바르고 안을 마요네즈로 버무린 으깬 달걀로 채웠다. 그리고 식빵 하나를 더 꺼내 한쪽 면에 잼을 발라 덮었다. 중학교땐가, 친구가 가르쳐준 초간단 샌드위치 제조법인데 지금까지 나는 이 방법을 자주 애용한다. 친구도 여전히 이렇게 샌드위치를 만드는지 물어봐야겠다. 샌드위치 여덟 개를 식탁에 올려놓고 그 중 하나를 커피와 함께 먹었다.


 머리를 감고 노트북과 책을 챙겨가지고 집을 나섰다. 일요일 아침, 집안은 북적거린다. 내 방이 따로 없으므로 책을 읽으려면 동물농장과 서프라이즈가 없는 장소를 찾아야만 한다.


 걸어가는 동안 검게 짓무른 버찌를 밟았고 줄무늬 고양이와 눈이 마주쳤다. 멀리서 아는 사람이 걸어오고 있었다. 헐렁한 바지에 파란색 가디건을 대충 걸치고 에코백을 어깨에 멘 나와 달리 단정한 정장차림에 각진 가방을 손에 들고 있었다. 인사를 하고 어딜 가느냐는 말이 오갔다. 아는 사람은 교회에 간다고 했다. 나는 카페에 간다고 했다.

 "아침부터 약속이 있나봐요."

 "아, 그게 아니라 책 읽으러 가요."

 "아, 책...어떤 책 읽어요?"

 내가 책제목을 말했을 때 아는 사람은 얼굴에는 "?!"같은 부호가 떠올랐다. 일요일 아침에 어울릴만한 책인가 싶었던 것 같다. 제목에 '죽다'가 들어있어서 그런 것일까. 다음에 또 보자는 인사를 하고 각자 다른 방향으로 걸어갔다.


 카페가 위치한 사거리는 분주했다. 거대한 크레인 두 대가 도로를 차지하고 있었다. 아파트 꼭대기에 문제가 생겼는지 두 사람이 탄 리프트가 15층 아파트에 올라있었다. 저렇게 높이 올라가는데 괜찮나 싶어 고개를 한참 들어 올려다보면서 걸었다. 내 뒤에서 "앞에 보면서 걸어요!"라는 큰소리가 들렸다. 앞을 보니 바로 세 발자국 앞에 인도에 세워진 크레인 지지대가 있었다.

 앞을 보고 걸어서 카페에 들어갔다. 따뜻한 아메리카노를 주문하고 창가 자리에 앉았다. 조금 전 크레인이 있던 곳과 대각선을 이루는 횡단보도가 보였다. 구세군 희망나누미가 모퉁이에 있고 그 옆으로는 부동산과 휴대폰 할인매장이 있다. 몇 년 전, 저 횡단보도에서 끔찍한 사고가 있었다. 초록불이 깜빡거릴 때 누군가 횡단보도를 향해 달렸고 동시에 버스가 모퉁이를 돌았다. 사고가 났을 때도 초록불이 깜빡이고 있었다고 한다. 사고가 있던 그 시간에 나는 여행중이라 한참 뒤에 소식을 들었다.

 

 뜨거운 커피를 한모금 마신다. 일요일 아침, 생각들이 산만하게 흩어진다. 책을 읽어야지 하면서 계속 딴생각만 하며 멍하니 앉아있다. 어디에서 나타났는지 갑자기 눈앞에 스쿠터 한 대가 멈춰선다. 어린 커플이 내려 헬멧을 쓴 채로 카페로 들어온다. 생기 넘치는 목소리로 아이스아메리카를 주문한다. 뜨거운 커피를 두 모금째 마시고 나는 비로소 책을 읽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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