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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페이지 Jun 05. 2020

우리를 실어나르는 가방

스타벅스 서머레디백부터 가방에 갇혀 숨진 아홉살 아이까지

  안토니오 타부키의 <인도야상곡>에서 '나'는 누군가 '하나의 언표'처럼 내뱉은 "이 육체 속에서 우리는 무얼 한단 말인가."  듣고, 대답 아닌 자문의 형식으로 육체를 여행가방에 비유했다.

"그 안에서 여행을 하는 게 아닐까요?"  

"뭐라고 하셨습니까?"

"육체 말입니다. 여행가방 같은 게 아닐까요. 우리를 실어나르는 가방 말입니다."

    -안토니오 타부키 <인도야상곡> 중-


  박완서 작가님은 <잃어버린 여행가방>에서 여행가방을 육신에 비유했다.

"누가 내 여행가방을 연다면 더러운 속옷과 양말이 꾸역꾸역, 마치 죽은 짐승의 내장처럼 냄새를 풍기며 쏟아져 나올 것이다." "그러나 내가 정말로 두려워해야 할 것은 이 육신이란 여행가방 안에 깃들었던 내 영혼을 절대로 기만할 수 없는 엄정한 시선, 숨을 곳 없는 밝음 앞에 드러내는 순간이 아닐까."

    -박완서 <잃어버린 여행가방> 중


 우리의 육체를 여행가방에 빗대어 표현한 두 명의 작가를 뒤로 하고 내 앞에 놓인 거울 속 여행가방을 살펴본다. 어디든 갈 수 있을 거라는 낙관적 기대와 달리 붙박이가 되어버린 여행가방은 낡고 빛바랜 모습이다.


 그만두자. 사실 육체가 여행가방이라는 이런 이야기를 하고 싶지 않았다. 살다보면 비유가 전혀 필요하지 않을 때도 많다.


 요즘 가방에 대한 생각이 머릿속에서 떠다녀서 언젠가 듣거나 보았던 온갖 가방의 이미지가 찾아오고 있어서 꺼낸 비유적 여행가방들이었다. 하지만 진짜 하고 싶은 이야기는 이미지가 아닌 현실에서 벌어지고 있는 생생한 사건들이다.




1.

가방이라는 말이 처음 머릿속에 들어온 것은 스타벅스에서였다. 스타벅스의 올해 사은품 서머레디백에 대한 내용이었다. 스타벅스의 로고가 그려진 초록색과 분홍색의 가방은 산뜻하고 귀여웠다. 음료 열 일곱 잔을 마시면 받을 수 있는 사은품이라고 했다.

 평소 스타벅스에 관심이 별로 없었기 때문에 그런가보다 했다. 스타벅스는 커피를 마시는 곳이 아니라 문화를 공유하는 곳이라는 말에 다국적기업의 술수라며 시큰둥했던 나였다. 그런데 스타벅스의 문화를 가치있다고 여기는 사람들에게는 다른 의미로 다가왔나보다. 뉴스에서는 음료 374잔을 주문하고 가방 22개를 받은 취업준비생의 인터뷰가 나왔다. 가장 저렴한 방식으로 커피를 주문했고 사은품 하나 당 6만6백원이 들었다고 하는 그는 가방을 팔아 30만원을 벌었다고 했다. 여의도에서는 커피 300잔을 주문하고 가방 17개를 받은 사람이 커피 1잔을 빼고 299개를 남겨두고 가는 일도 있다고 했다. 유튜브에서는 에스프레소를 주문, 개인텀블러 할인으로 가장 저렴하게 사은품 받는 방법에 대해 설명했다. 커피를 마시면 사은품이 따라오는 것이 아니라 사은품을 받기 위해 경쟁적으로 커피를 사고 있었다.

 '주객 전도 마케팅' '꼼수 마케팅' '노이즈 마케팅'이라는 비난에도 여전히 스타벅스에는 올해 한정으로 나오는 서머레디백을 받기 위해 커피를 주문하는 사람들이 끊이지 않고 있다.



2.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짐승들> 에는 10억원 현금 다발이 가득 든 가방이 나온다. 돈 가방이 찜질방까지 오게 되는 일련의 과정은 시간을 거슬러 설명된다. 인간의 탐욕을 쫓아가다 보면 허탈한 결말에 이르는.



3.

영국으로 밀입국하려다 체포된 아프리카 출신 21세 남성이 있다. 그는 아프리카 에리트레아 출신으로 여행가방에 숨어서 몰래 들어오려다가 발각되었다. 지난 4일 이탈리아를 출발한 유럽횡단열차에 있던 여행가방 안에서 신음소리가 나자 타고 있던 승객들이 경찰에 신고를 했다. 열차가 스위스 남부 키아소 역에 정차했을 때, 스위스 경찰이 가방을 열차 밖으로 꺼냈다. 가방을 열자 밀입국을 시도했던 청년이 나왔다. 그의 키는 180센티미터였다고 한다.



4.

 여행가방 속에 갇혀있다가 숨진 아홉살 아이. 의붓어머니는 아이가 게임기를 고장냈는데도 하지 않았다고 거짓말을 해서 '훈육'을 위해 가방에 가둔 거라고 '변명'했다. 처음에 아이는 50㎝x70㎝ 크기의 여행용 가방에 갇혀있었다. 이후 아이가 소변을 보자 의붓어머니는 아이를 44㎝x60㎝ 여행용 가방에 집어넣었다. 아이는 가방 속에서 심정지 상태로 의식을 잃은 채 발견되었다.


 아이가 갇혀있었다는 가방의 크기를 자로 재어보았다. 우리집 pc 모니터와 비슷한 크기였다. 여기 앉아서 별로 알 필요도 없는 검색어를 클릭하고 쇼핑을 하고 있었을 때 아이는 이렇게 작은 크기의 가방 속에서 고통스러워하고 있었겠지. 아무리 작은 아이라도 그 정도에 들어가려면 온 몸을 접어서 웅크려야 한다. 일곱 시간 이상을 그렇게. 그때 학교 원격수업에서는 아이가 수업에 참여하고 있는 것으로 표시되어 있었다.


 한 달 전 어린이날에도 이마가 찢어져 응급실을 찾았고 담당의사는 아이의 몸에서 오래된 멍이 발견된 점으로 미뤄 아동학대를 의심했다. 당시 의사는 아이의 아버지에게 "체벌은 좋지 않은 훈육 방법"이라고 말한 뒤 돌려보냈고, 병원에서는 다음날 경찰에 아동학대로 신고를 했다. 하지만 부모가 반성을 하고 있으며 아이가 '욕실에서 넘어졌다'고 진술을 바꿨고 학대의 심각성 여부를 판단하기 어려웠다는 점을 들어 가해자와 피해자를 분리조치하지 않고 집으로 돌려보냈다.


 의붓어머니라는 호칭을 썼지만 명백한 가해자. 의붓-이 붙은 모든 부모가 그렇게 살아가는 건 아니므로 가해자는 그냥 가해자로 부르고 싶다.


 친권에 대한 개념이 강한 우리나라에서는 아이에 대한 체벌은 학대가 아닌 '훈육'을 위한 과정으로 여길 때가 많았다. 내가 어릴 적에는 더욱 그랬다. 집안에서 벌어지는 모든 체벌- 주먹이나 몽둥이로 온 몸을 맞거나 몸을 웅크리게 한 뒤 밧줄로 꽁꽁 묶거나 칼로 위협을 당하거나 목이 졸리거나 속옷만 입혀서 혹한 추위에 내쫓기는-은 집안일로 다른 사람은 상관해서는 안 되는 것으로 인식되었다. 친권의 개념이 강해서 친권자가 훈육이라고 주장하면 아동보호기관이 개입하기 어려운 점도 있다. 체벌전면금지법이 제정되기까지 학대받는 아이들은 어떻게 보호되어야 할까. '구할 수 있었는데 안타깝다'는 말이 더이상 나오지 않기를 바란다.




처음에 꺼낸 비유적 가방은 결국 마지막 아이에 대한 이야기를 하기 위해서였다.

육체가 우리를 실어나르는 여행가방이라면 아이들의 가방은 어디로 가는 것일까. 아직 여행을 시작하지도 못했으며 그럴 기회를 영원히 잃어버린 아이들의 명복을 빌어보는 금요일 저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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