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 계절이 바뀔 때면 <소설 보다>를 산다. 최근에 나온 단편소설 3편과 작가의 인터뷰가 실려있는 책으로, 작고 얇은 만큼 책값이 싸고 그런 이유로 주머니에 넣어 다니기 좋기 때문이다.
<소설 보다>는 '문학과지성사'에서 나온 시리즈. 출판사 측의 설명을 덧붙이자면 다음과 같다.
<소설 보다>는 '이 계절의 소설' 선정작(문지문학상 후보작)을 묶은 단행본 시리즈로, 1년에 네 권씩 출간됩니다. 계절의 리듬에 따라, 젊고 개성 넘치는 한국 문학을 가장 빠르게 소개하며 독자와 함께 하겠습니다.
이번 여름호에는 강화길의 <가원(佳園)>, 서이제의 <0%를 위하여>, 임솔아의 <희고 둥근 부분>이 수록되었다.
강화길 작가는 작년부터 관심 있게 지켜보고 있었는데, 올해 <음복>으로 젊은작가상수상을 하더니 얼마 전부터 <화이트 호스>로 더 주목받는 작가가 되었다. 언젠가 강화길의 <괜찮은 사람> 소설집에 실린 단편을 읽은 적이 있었는데 섬뜩하고 독특한 지점에서 이야기를 서늘하게 끌어나가는 능력이 뛰어났다. 몇몇 소설은 잔상이 깊고도 길어 무섭기도 했다. 임솔아 작가는 소설 <뻔한 세상의 아주 평범한 말투>를 처음 읽은 뒤로 아프고 상처 입은 존재들을 쓰고 있구나 싶었는데 이 소설에서도 비슷했다.
단편소설이라 금방 읽었는데, 소설 뒤에 실린 작가의 인터뷰 부분을 읽는 시간이 오래 걸렸다. 소설이 던지는 질문과 함축적 의미, 사회적 영향력 등에 대한 질문과 대답이 오가는 지면에서 한참 머뭇거렸다. 쉽고 단순하게 읽는 독자로서 소설보다 인터뷰에서 언급하고 있는 소설을 이해하기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강화길의 <가원(佳園)은 '밥값 하는 여자들'과 그렇지 못한 '박윤보'를 중심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주인공 연정이 나온다. 박윤보는 유명한 서예가로 명성이 자자했던 석당의 셋째 아들이자 평생 스스로 돈을 벌어본 적 없었으며 가족이 아파트로 이사 갈 돈을 주식으로 날린 남자로, 주인공 연정의 외할아버지였다. 평생 돈을 벌어 가족을 먹여 살린 외할머니와 그와 반대로 담배를 피워 허공에 도넛 모양의 연기를 만들며 시간을 보내는 외할아버지. 소설은 연정이 할머니가 사라졌다는 엄마의 전화를 받으면서 시작된다. 치과 개원을 앞두고 있던 연정은 과거를 떠올리다 가족의 기원이라고 할 수 있는 가원을 찾아간다. 한때 반짝거리고 튼튼했던 가원은 허물어져있었다. 연정은 그곳에서 여름 원피스를 입은 채 서성이고 있는 할머니를 찾게 된다. 계절은 겨울이었고 할머니는 여름 원피스를 아무렇지 않게 입고 있었다. 연정은 그 모두 오래전 이야기라고 말한다. 할머니는 이제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하는 상태가 되었다며. <음복>과 비슷한 공기의 흐름이 있었고 작가 특유의 서늘함이 언뜻 스릴러 장르로 스핀오프를 따로만들어도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을 해보면..... 영향력은 쓰는 사람이 아니라, 읽는 사람이 발휘하는 것 같습니다. 저를 돌이켜보면 그런 것 같습니다. 독자였기 때문에, 뭔가를 깨달았기 때문에, 의심하고 불신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믿음을 가졌기 때문에 어떤 행동들을 할 수 있었던 것 같고, 더 나아지기 위해 노력했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이런 것들-독자로서의 태도가 결국 쓸 때 영향을 미치는 것 같습니다. 결국 처음 대답으로 돌아가네요. 그렇게 출발한 이후에 대해, 제가 지키고 싶은 것들에 대해 말입니다. 내 감정이 이야기의 전부라고 확신하지 말 것. 가장 멀리 떨어진 곳까지 바라볼 것. 거기까지 걸어가는 것을 주저하지 말 것.
-인터뷰 강화길 x 조연정-
서이제의 <0%를 향하여>는 한국영화 100주년을 맞은 해에 독립영화관을 찾은 주인공이 오랫동안 해오고 있는 독립영화를 그만둬야 할까 고민하는 대목에서 시작한다. 3대 거대 멀티플렉스가 97% 시장을 점유하고 천만 관객 영화가 전성기를 맞고 있는 시대에 한국 독립영화 관객 점유율은 1% 미만이고 여전히 근로계약을 맺지 못한 채 일하는 영화인들이 있다는, 화려하고 거대한 시장 이면의 암울한 현실을 들려준다. 그럼에도 주인공은 아무도 없음이 아니라 그곳을 찾아가서 독립영화의 자리를 지키는 존재들이 있는 한 '0이 있음'을 느끼며 독립영화의 지속성에 대해 생각한다. 소설은 독립영화를 찍으면서 가장 어려운 것이 독립이라는 말을 통해 영화뿐 아니라 문학에서도 자본에 휘둘리지 않고 독립성을 지켜나가는 것의 어려움과 그럼에도 지켜야 한다는 의지를 보이고자 했던 것 같다. 한 편의 지루한 독립영화 같은 느낌을 주었던 소설. 지루하다는 나쁜다는 것이 아니라 상업적이지 않다는 말로 해석.
'독립'이란 말을 지켜내면, 독립의 의미가 사라지지 않을 거라는 희망도 있었습니다. 0은, 없음을 의미하는 게 아니라 '0이 있음'을 의미하니까요. 제가 생각하는 언어의 기능, 언어가 작동하는 방식도 그런 것이에요. '나'가 할머니의 작품을 보러 먼 길을 갔다면, 그 자리에 모인 사람들로 하여금 0의 자리가 가능해진다면, 독립은 여전히 가능하지 않을까요. 이 소설을 쓸 때, 제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던 부분도 '나'를 감상자의 자리에 놓는 것이었어요. 그곳에서 '나'는 혼자가 아니에요. 가능 여부를 논하기보다, 가능하다가 믿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믿음은 때때로 변화를 가져다줍니다.
-인터뷰 서이제 x 조효원-
임시교사 시절 진영은 학생 민채의 손목 상처를 보고 관심을 기울였다. 하지만 어느 순간 자신의 힘으로 감당하지 못할 순간이 찾아왔다고 생각했을 때 기관의 힘을 빌리기로 결정했다. 민채는 "하는 척은 할 만큼 했다는 건가요?"라는 말을 남기고 집 욕조에서 자해를 한다. 손목의 힘줄이 끊어져 접합 수술을 받아야 할 정도였다. 그 문제로 진영은 징계위원회에 회부되었고 학교를 떠나게 된다. 그 뒤부터 미주신경성 실신이라는 증상에 시달린다. 아무 곳에서나 갑자기 몸을 움직일 수 없게 되는 증상. 자신이 잘 알고 있으며 제대로 보고 있다고 확신했던 것들의 맹점과 누군가의 잘못이라고 명확하게 지적할 수 없는 상황에서의 가해와 피해를 바라보는 입장에 대한 이야기. 읽는 내내 가슴이 답답했다. 미주신경성 실신을 끝내 해석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일종의 체증이었던 것 같다.
부연하자면, 저는 '반성'이라는 단어를 좀 경계하려는 경향이 있어요. 전 인류가 매일매일 반성을 하며 산다고 느끼는데 정작 다르게 살려는 각오로 새로운 출발을 모색하는 사람은 드물어서, 윤리적인 불편감에 '반성'이라는 프레임을 덧씌워 손쉽게 회피하려는 것은 아닐까 의문이 생기는 일을 너무 많이 목격하니까요. 저는 반성보다는 재편과 재편과 재편으로 나아가려는 모습이 소설 속에서 드러났으면 했던 것 같아요.
-인터뷰 임솔아 x강동호-
세 편의 단편소설과 인터뷰를 읽고 쉬운 방식만 찾고 쉽게 판단하고 쉽게 재단하는 나의 습관을 반성했다... 가 '반성이라는 단어를 경계한다'는 임솔아 작가의 인터뷰를 보고, 또다시 반성으로 쉽게 넘어가려고 했던 습관적 반성에 대해 반성했다. 새로운 출발을 모색하는 일은 고쳐서 바꾸어야 하니, 변화를 필요로 하는 일이니 어렵다. 그래서 반성만 하고 다시 낡은 습관을 되풀이하고 있다.
사람이 별로 없는 영업이 끝날 무렵의 카페에서 얇은 책을 읽고 나자 서늘한 기운이 몸을 감쌌다. 지나치게 낮게 설정된 에어컨 때문만은 아닌 듯 그 기운은 카페를 나온 뒤에도 오래도록 이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