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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페이지 Nov 15. 2019

튀김과 생선초밥이 담긴 도시락, 날다

신수원 <오리 날다>

 재작년 가을, 업무 때문에 목동에 갔다가 버스를 타고 돌아오는 길이었다. 하늘은 푸르고 해는 쨍쨍 빛났는데 내 마음은 한없이 가라앉고 있었다. 

 나는 회사의 업무를 지시받으면서도 개인사업자로 계약되어 있는 특수고용노동자로 일하는 중이었다. 일을 시작한지 8년째 접어들었지만 수입은 좀처럼 늘지 않았다. 최저임금을 기준으로 하루치 일당을 계산하고 그 일당을 한 달 단위로 모아 입금해주었는데, 이전에 들어보지 못한 세금 계산법으로 원래 수입에서 몇 퍼센트의 세금을 더 떼어갔다. 게다가 1년에 한 번씩 하던 재계약을 6개월마다 한다는 새로운 규정이 만들어졌다. 담당자가 바뀌면서 이전 담당자들의 지시사항은 없던 것이 되고 새로운 지시가 내려졌다. 임금은 제자리걸음에 불안정한 고용까지. 고개가 아래로 꺾였다.


 버스 유리창을 통해 들어온 햇빛이 따가워 잠시 눈을 들었을 때 나는 낯선 광경을 목격했다. 목동 열병합발전소 굴뚝 위에서 고공농성을 하고 있는 모습이었다. 방송으로는 종종 봤지만 실제로는 처음이었다. 굴뚝에는 합의 이행과 노동악법 철폐 등이 적힌 현수막이 걸려 있었다. 고공농성을 하는 노동자들은 1년이 넘는 시간 동안 76미터 높이의 굴뚝에서 내려오지 못하고 있다고 했다. 


 신수원의 <오리 날다>는 폐쇄회로 철탑에서 고공농성을 하는 여성노동자의 이야기를 다룬 소설이다. 진복연은 고향에서 중학교를 졸업한 뒤 서울에 올라와 일찍부터 구로공단에 다니고 있는 큰언니와 함께 살게 된다. 자매는 '닭장집'이라 불리는 가리봉동 셋방에서 살며 공장에 다닌다. 닭장집은 여러 면에서 비좁고 답답했지만 가장 불편한 것은 화장실이었다. 좁은 양계장 같은 방들이 더덕더덕 붙어있는데 화장실은 적으니 늘 줄을 서야 했고 그마저도 시간이 없어서 제대로 갈 수 없었다. 만약 화장실에 들어간다고 해도 앞사람의 배설물 냄새를 맡아야 하는 고역에 처했다.

왜 일을 할까,라고 물으면 먹고살기 위해서,라고 대답한다.

단지 먹고살기 위해서라니... 자명하지만 슬픈 대답이다.

그러한 대답 뒤에 따라붙는 한숨은 늘 쭈그리고 앉은 짐승의 뒷모습처럼 축축하고 젖어있다.

2년 6개월이 넘는 시간 동안 온갖 방법-투쟁 홍보물을 뿌리고 단식을 하고 밥 먹듯 연행이 되고 육교와 전철역에서 연좌 농성까지-으로 농성을 했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다. 처음에 쳐다보던 사람들은 늘 어딘가에서 농성을 하는 그들의 모습에 익숙해져 갔다. 


지나가던 대여섯 살배기 아이가 엄마에게 물었다.

 "엄마, 저 사람들 왜 저래?"

 몹쓸 것을 보기라도 했다는 듯 엄마는 아이 얼굴을 가렸다.

 "너도 공부 안 하면 저렇게 돼. 알았지? 얼른 가자."

 손을 잡은 엄마에게 이끌려가는 아이는 고개를 돌려 자꾸만 우리를 돌아보았다.

           -<오리 날다> 중


  어지간한 농성의 방법으로는 원하는 바를 찾을 수 없다는 걸 깨닫고 진복연은 높은 철탑으로 올라갔다.

'성실 교섭'과 '비정규직 철폐'를 주장하며 높고 폭이 좁은 난간에 서서 진복연은 하루하루를 버텼다. 몸이 중심을 잃고 흔들려 한 발자국만 잘못 내딛어도 그대로 목숨을 잃을 수밖에 없는 공간에서 그녀는 잠을 잘 때고 몸을 똑바로 눕히지 못하고 탑의 타원형 모양을 따라 옆으로 누워야 했다. 음식은 철탑 아래의 역 광장에 모인 동료들이 바구니를 통해 올려주고 그녀가 먹은 뒤 바구니에 쓰레기를 내려보내는 식으로 해결이 되었다. 문제는 배설물이었다. 먹고사는 문제에는 당연히 배설의 문제가 함께 한다.


 하루 중 가장 힘겨운 것은 배설 행위였다. 먹고 싸는 일이 이렇게까지 구차스러웠던 적은 없었다. 몸을 돌리기도 좁은 공간에서 대소변을 치우다 보면 화장실에서 일을 보고 물을 내리는 것과는 비교도 디지 않게 세세한 정황을 어쩔 수 없이 부딪히게 되었다. 변의 굵기와 냄새는 물론 색깔과 점도까지 일일이 오감을 자극했다. 싫다고 피할 수도 빠르게 서두를 수도 대충 처리할 수도 없을 정도로 가까운 거리에서 맞게 되는 일이었다.

                       -<오리 날다> 중


 그녀는 35미터의 고공에서 아이들이 사용하는 오리 변기에 신물지를 깔고 배설을 했다. 사방이 개방된 곳에서 아무도 보지 않을 시간을 골라 최대한 빨리 상황을 마무리하기 위해 노력했다. 그리고 배설을 한 즉시 신문지에 돌돌 싸서 검은 봉지로 묶어 바구니에 함께 내려보내는 일을 반복했다. 


 어느날 진복연은 지역국회의원이 응원차 보낸 도시락을 받게 된다. 갖가지 튀김과 생선초밥까지 구색을 맞춘 고급도시락이었다. 그녀는 초코파이로 떼운 속에 따뜻한 밥을 밀어넣었다.  하지만 밤이 깊어가면서 속이 불편해지며 배가 아파왔다. 배가 꼬이듯 아프면서 부글거렸다. 그녀는 늦은 밤 어쩔 수 없이 오리 변기에 앉아 배변을 했다. 역 광장에 설치된 천막에서 잠든 지원 방문자들이나 늘 광장에 차를 대고 밤을 새우는 형사에게 들릴까 두려워 소리를 내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썼다. 평소라면 신문지에 둘둘 말아서 검은 봉지로 묶었겠지만 배탈이 난 이후라 그러지 못하고 그대로 오리 변기의 등 뚜껑만 덮었다.


다음날, 전철 첫차가 움직이지도 않은 이른 시각 광장이 소란스러워졌다. 전경들과 낯선 사내들이 탑 주위로 매트리스를 설치하고 소방차가 들어오고 있었고, 탑 쪽으로 두 대의 사다리차가 붙고 있었다. 밤부터 내리던 비는 그치지 않았다. 오른쪽 사다리차로 전경 셋, 왼쪽 사다리차로 형사 셋이 올라오고 있었다. 진복연은 두려움과 비웃음을 느끼며 입에 밴 구호를 외쳤다. 사다리차는 점점 더 가까이 다가왔다. 진복연이 발을 떼며 방향을 틀던 순간 페트병이 아래로 떨어졌다. 전날 하루치의 오줌을 모아놓은 페트병이었다.


진복연은 해고된 비정규직의 억울함고 서러움 보다도 모멸감이 치밀어 순간 뛰어내리고 싶은 충동이 일었다. 동시에 그들이 가까이 다가올수록 처리하지 못한 오리 변기에 대한 생각이 머릿속을 가득 채웠다. 비정규직 철폐 구호보다도 광장에 모인 사람들의 시선도 오리 변기에 담긴 배설물보다 급하지 않았다. 전경들이 철탑에서 현수막을 걷어냈고 자신을 늘 감시하던 형사는 비웃는 듯한 얼굴로 확성기를 입에 댔다. 그 순간 진복연은 형사가 탄 사다리를 향해 변기를 던졌다.


 말안장처럼 신문지를 등에 얹은 하얀 오리가 빗속에서 공중을 날았다.

                                -<오리 날다> 중


그 뒤로는 어떻게 되었을까.

파인텍 노동자들의 굴뚝농성은 426일 동안 계속되었고 사납금 폐지를 요구하던 택시기사는 조명탑에 올라 510일 동안 고공농성을 했다. 지금도 타워크레인을 비롯해 높고 좁은 곳에 수많은 노동자들이 올라있다.


어느 순간부터 우리의 눈길은 위를 올려다보지 않는다. 우리 관심은 하루에도 몇 번씩 바뀌는 이슈에 집중되어 갔다. 그럼에도 한 발자국만 잘못 내딛어도 죽을 수 있는 고공에 몸을 맡기는 사람들은 계속 있다. 무모해서가 아니라 먹고살기 위해서다. 슬픈 대답을 하는 것이 싫지만 그런 대답을 할 수밖에 없는 순간들도 있다.


고공농성을 할 때 진복연은 배설의 문제 때문에 인간으로서 가장 수치심을 느낀다. 그래서 끼니를 줄이려는 생각을 했던 차에 국회의원이 보낸 고급 초밥도시락을 받아 먹고 탈이 난다. 한 끼 정도에 해당되는 관심보다 그녀가 원했던 건 단지 사람답게 살고 싶다는 마음을 알아달라는 것이었는데, 그런 마음은 결국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오히려 배탈이라는 결과로 그녀를 괴롭혔다. 갖가지 튀김과 생선초밥이 구색을 갖춘 고급도시락은 결국 오리에 담겨 하늘을 날았다.


오늘 서울에 첫눈이 관측되었다고 한다. 차가운 공기에 손끝이 시리지만 정신은 맑아진다.

지금도 나는 재계약을 반복하며 7년째 특수고용 노동자로 일하고 있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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