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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여름 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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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페이지 Aug 23. 2020

여름의 맛

추억을 통과한 맛

 인적 없는 산책로에 두 사람의 복숭아 먹는 소리만 울렸다. 베어 물고 씹고, 흘러내리는 과즙을 쪽쪽 소리나게 빨아먹었다. 다 씹기도 전에 꿀꺽 소리 나게 복숭아를 삼키고 다시 베어 물었다. 잇새에 낀 섬유소를 혀끝으로 빼낼 때는 바람 소리가 났다. 그들은 게걸스럽게 복숭아를 먹었다. 복숭아를 가득 입에 문 채로 눈이 마주치기도 했다. 복숭아를 우적거리면서 맛있다는 의미로 서로 고개만 끄덕였다.
                                       -하성란, <여름의 맛> 중


 두 사람이 복숭아를 먹고 있는 곳은 은각사 근처에 있는 대숲 사이의 작은 절이다. 화보 촬영차 오사카에 갔다가 촬영이 끝난 뒤 혼자 간사이 지방을 돌던 그녀의 여행 계획에 은각사는 들어있지 않았다. 그녀는 원래 금각사에 가려고 했다. 자신은 '킨가쿠지'라고 말했다고 생각했는데, 택시 기사는 '긴카쿠지'로 알아들었던 모양이다. '그 미묘한 발음의 차이'로 그녀는 은각사에 잘못 도착하게 되었다. 관광객들을 따라 은각사를 돌면서도 그녀는 금각사를 떠올렸다.

 그녀에게 금각사는 미시마 유키오의 소설 <금각사>에 나오는 화염에 휩싸여 소멸로 향해 불타오르는 절이었다. 금각으로 눈부시게 빛나는 절 대신 소멸을 향해가는 절을 떠올린 이유는 그녀가 자신이 선택하지도 실행에 옮기지도 못했던 그 밖의 삶에 대한 열망의 빛이 꺼져가고 있음을 알고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현실에서 벗어나 다른 삶의 궤도에 올라타고 싶지만 '어느 것 하나 행동으로 옮기지 못하리라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무엇보다 '가장 울고 싶은 시간이었지만 우는 것조차 마음대로 되지 않으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그녀는 햇빛 속에서 화려하게 서있는 금각사의 금빛에서 소멸의 순간을 보고 싶어했을지도 모르겠다.


 은각사에 올라 '갈퀴질로 만든 정연한 선의 세계와 모래 언덕'을 내려다보며 그녀는 소설 <금각사>에서 주인공 말더듬이가 안짱다리에게 한 말을 떠올리며 혼잣말로 내뱉었다.

 "세계를 변모시키는 건 인식일까, 행위일까?"

 

 “나는 너에게 알려주고 싶었다구. 이 세계를 변모시키는 건 인식이라고. 알겠냐, 다른 것들은 무엇 하나 세계를 바꾸지 못해. 인식만이 세계를 불변인 채로 그대로의 상태에서 변모시키지. 이 삶을 견디기 위해서 인간은 인식을 무기로 삼게 됐다고 할 수 있지.”


“세계를 변모시키는 건 절대로 인식이 아니야”라고 나는 얼떨결에 고백에 가까운 위험을 무릅쓰고 반박했다.  

“세계를 변모시키는 건 행위야. 그것밖에 없어.”

        -미시마 유키오, <금각사> 중-


 그녀의 혼잣말을 듣고서 한국사람이냐고 물었던 남자는 사진을 공부하러 온 유학생이었다. 남자는 많은 한국인들이 미묘하게 다른 발음 때문에 금각사 대신 은각사로 오는 경우가 있다고 했다. 일본어가 몸에 배지 않은 사람은 차이를 제대로 구별할 수 없는 사소하지만 일정을 틀고 우연을 마주치게 하는 미묘한 발음 하나로 그녀는 은각사로 와서 처음 만난 남자가 건넨 복숭아를 먹게 되었다. '탄성이 날 만큼 크고 묵직하고 향이 진하고 물 많고 다디단' 복숭아였다.


 소설을 읽으면서 몇 년 전 내가 갔던 은각사를 떠올려봤다. 교토에서 하루 버스 이용권을 끊어 청수사, 은각사, 금각사, 여우신사를 차례로 돌았다. 구글과 블로그를 수시로 보면서 경로를 이탈하지 않기 위해 열심히 걷다 타기를 반복했다. 여행 중인데 경로를 잠깐 이탈하면 무슨 큰일이라도 생기는 것처럼 긴장했다. 걸을 때는 느긋하다가도 버스나 전철을 탈 때면 잘 들리지도 않는 일본어 안내방송에 귀 기울였고 처음 보는 풍경 속에서 내가 내려야 할 곳을 찾으려 눈을 크게 떴다. 하루에 다 못 보면 그만인데, 뭐 그리도 숙제하듯 다녔던 건지.

 은각사는 정갈하고 고요했다. 한 달에 한번 마당 전체를 갈퀴질해서 새로 만든다는 모래 정원과 연못을 지나 언덕에 오르면서도 여행 블로그에서 소개한 것과 같구나 싶어 담담하게 지나치던 나를 사로잡았던 건 무성하게 자라서 바위를 뒤덮었던 고사리와 이끼였다. 짧은 겨울 햇빛 속에서 더욱 눈부시게 빛나는 금각사를 보면서도 은각사의 그늘에서 오랫동안 살아왔고 그렇게 살아갈 이끼가 떠올랐다.

 하나의 풍경을 앞에 두고도 각자 다른 것을 바라본다. 자신이 보고 싶거나 보지 못해 미련이 남았거나 이미 자신의 속에 들어와 있는 풍경들을. 인식과 행위에 따라 변하는 풍경들.


 까실까실한 털을 보는 것만으로도 온몸이 가려워지는 것 같아 복숭아를 좋아하지 않았던 그녀는 남자가 건넨 복숭아를 마지못해 받아 들었다. 남자를 따라 그녀는 복숭아를 먹었다. 과즙이 흘러내리는 복숭아를 허겁지겁 베어 물었다.


 복숭아가 어찌나 큰지 먹는 데 시간도 꽤 걸렸지만 먹고 나자 바로 일어설 수 업을 만큼 배가 불러다. 손과 팔 곳곳이 끈적거렸고 복숭아 과즙이 묻은 입가가 가려웠다. 격심한 피로감이 몰려왔다. 둘은 아무 말 없이 그대로 앉아 있었다. 작은 뱀이 지나는 듯 이따금 대나무 숲이 조용히 흔들렸다.

           -하성란, <여름의 맛> 중-


  복숭아를 다 먹은 다음 남자는 자신의 고향의 복숭아에 비길 게 못 되는 맛이라고 했지만 그녀는 믿지 않았고 자신이 일부러 복숭아를 찾게 될 것 같지도 않았다. 하지만 개찰구를 통과하여 멀어지는 그녀를 향해 남자가 외친 한 마디, "당신은 이제부터 복숭아를 정말 좋아하게 됩니다!"는 복숭아에 대한 기억이 사라진 다음에도 몸속 어느 구석에 살아남아 있었다. 숭례문 방화사건이 있던 날, 그녀는 불타오르는 금각사가 떠올랐고 금각사로 가려다 잘못 도착한 은각사에서 먹었던 복숭아와 남자가 소리쳤던 말이 생각났다. 아니 오랫동안 몸 안에 담고 있던 말이 소멸을 앞둔 불길 속에서 떠올랐다.

 

 <여름의 맛>에서는 두 가지 맛이 나온다.

 맛기행 프로그램의 작가로 일하고 있는 그녀가 기억하고 있는 복숭아의 맛. 그녀가 여름 특집인 '여름의 맛' 프로그램에서 인터뷰할 인물 중 하나인 김 선생이 기억하고 있는 한여름 콩국의 맛.

 그녀는 김 선생이 썼던 맛 기행 연재가 레시피보다 '음식에 깃든 한 개인의 추억을 재현하는데 공을' 들인 글이라는 걸 알게 된다. 죽음을 앞둔 김 선생은 어린 시절 어머니의 장례를 치르고 산을 내려오면서 먹었던 콩국을 기억하고 있었다.


  어머니를 묻고 김은 아버지와 산을 내려왔다. 너무 더웠다. 땀이 흐르는 데다 블라우스의 깃이 슬리면서 목덜미가 따가웠다. 목이 탔지만 아버지에게 투정을 부려서는 안 된다는 것쯤은 알 만한 나이였다. 산 입구에는 등산객을 상대로 하는 노점상들이 서 있었다. 촌 여자들이 콩국을 팔았다. 고무로 된 커다란 젓갈통이었다. 그 안에 콩국이 가득했다. 커다란 얼음 덩어리가 서서히 녹고 있었다. 아버지가 플라스틱 바가지로 콩국을 떠서 김에게 건넸다. 간간했다. 그녀는 허겁지겁 콩국을 마셨다. 순간 국물과 함께 차갑고 미끄러운 것이 목구멍을 타고 넘어갔다. 어린 그녀는 그것이 작은 물고기일 거라고 생각했다. 작은 물고기들이 헤엄친 것처럼 콩국에서는 비린내가 났다. 양복 바짓단을 대충 접어 올려 드러난 아버지의 앙상한 발목이 보였다. 아버지의 낡은 구두에는 붉은 흙이 구두 등까지 더께로 묻어 있었다. 웃으면 안 되는데 그녀는 자꾸자꾸 목구멍이 간지러워서 몰래몰래 음을 풀어놓았다.

     -하성란, <여름의 맛> 중-


 김 선생은 '맛은 맛이 아니라 추억'이라고 했다. 짜장면 하나의 맛도 각자의 사소한 추억에 따라 다른 맛으로 기억될 수 있다는 것. 그녀가 은각사에서 먹었던 복숭아가 "당신은 이제부터 복숭아를 좋아하게 됩니다."라는 한마디 말고 함께 그녀의 혀에 오랫동안 달라붙어버린 것도 추억이 함께 했기 때문인 걸까.


 하성란의 문장은 얼핏 지나칠 법한 사소한 부분까지 꼼꼼하게 살피고 들여다본다.

 오래전 하성란의 <곰팡이 꽃>에서 한밤중 다른 사람의 쓰레기봉투를 뒤지는 것으로 타인에 대해 알게 된다는 남자를 보았다. 그 소설에서 작가는 사소한 것 하나도 빠뜨리지 않고 집요하게 관찰하고 꼼꼼하게 확인해서 문장으로 적어냈다. 마이크로 방식으로 묘사한다고 알려진 작가의 방식에 숨이 막힐 듯하다가도 때로는 쉽게 지나쳤던, 사소하지만 중요한 순간을 끄집어내어 눈앞에서 흔들어주는 것 같아 다시 들여다보게 된다.


 <여름의 맛>은 금각사를 보면서 소멸되기 직전 화염에 휩싸인 절을 떠올리는 그녀가 자기 파괴 대신 잊고 있었던 맛을 찾아가는 여정을 통해 선택에 따라 다른 생으로 향하는 자물쇠를 열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준다.  

 그녀는 은각사에서 만나 복숭아를 나눠먹었던 남자의 말을 기억한다.

"복사꽃이 피면 산등성이가 온통 꽃바다가 됩니다. 바람도 비도 꽃이에요. 돗자리를 깔아놓고 밥도 먹고 노래도 불러요. 내 복숭아나무는 산등성이 맨 위에 있어 햇빛을 가장 오래 받지요."

 아직 한 번도 맛보지 못한 가장 맛있는 복숭아를 찾아가는 길은 그녀가 삶에 대한 열망을 접지 않는 이상 계속될 것이다.

 

 지난밤 여름답지 않게 서늘한 바람이 불어 드러난 어깨가 시렸다. 여름다움을 잃어버린 여름 뒤에 찾아온 짧은 여름이 벌써 끝나버렸나 싶어 어쩐지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하지만 오늘 낮은 다시 여름답게 덥다. 여름의 맛을 찾아가기에 아직 늦지 않았다. 그녀가 복숭아를, 김 선생이 콩국을 여름의 맛으로 기억하는 것처럼 각자의 추억을 통과한 '여름의 맛'은 수없이 많을 것이다.

 내게 그 맛은 수박과 포도였다가 껍질이 벗겨질만한 푹 쪄낸 하지감자였다가 지금은 쫄면으로 바뀌었다. 운맛 속에 단 맛을 안고 있는 쫄면의 차갑고 질긴 면발을 처음 씹어 넘겼을 때 이마에서 솟아나던 땀과 혀돌기를 지배하던 통각을 기억한다.

  "맛은 맛이기 이전에 한 개인의 추억이라는 사실"에 고개를 끄덕인다. 추억과 함께 기억되는 당신의 '여름의 맛'은 무엇일지 궁금해지는 일요일 한낮이다.  


 이 소설집에는 열 편의 단편이 들어있다. 각 소설마다 치밀한 묘사가 돋보이면서도 이전에 보였던 너무 정밀해서 그로테스크하게 보였던 부분은 줄어들었다. 소설집을 관통하는 감상문을 쓰려고 했는데, 가닥을 잡지 못하고 <여름의 맛>에 대한 글 밖에 쓰지 못했다. <카레 온 더 보더>와 <그 여름의 수사>도 인상 깊었는데, 분량 조절에 서툴러서 표제작인 <여름의 맛>만 쓰고 말았다. 이제 책을 덮고 '여름의 맛'을 찾아 먹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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