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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페이지 Aug 29. 2020

가위

불면의 시작

 며칠째 잠을 잘 못 자고 있다.

잠들지 못하는 이유는 많다. 덥고 습한 온도 때문이기도 하고 열어놓은 창으로 밤새 자동차들이 도로를 달리는 소리와 '빠라빠라밤' 현란한 음악을 틀고 달리는 오토바이 소리가 들려오기 때문이기도 하고 귓가에서 맴도는 모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적절한 온도가 유지되고 소리를 차단하면 잠을 잘 수 있었을까. 다른 계절을 떠올려보면 그렇지도 않다. 봄이나 가을에도 잠들지 못할 때가 많았다. 낮에 했던 후회되는 말이나 행동, 냉장고에 넣어둔 우유의 유통기한, 며칠 전 버스를 탔는데 뒷좌석에서 들려왔던 통화내용 같은 것들이 머릿속에서 맴도는 날이 있다. 그런 날은 잠을 자려고 하면 할수록 눈이 또렷해졌다.

 

 엄마는 내가 아기 적부터 잠을 깊게 못 잤다고 했다. 작은 기척만 나도 눈을 동그랗게 뜨고 소리 나는 쪽을 쳐다봤다고 했다. 울지도 보채지도 않고 조용히 그렇게 보고만 있었단다. 그 말을 들으면 식구들이 다같이 모여서 먹고 자는 단칸방에서 밤새 나는 여러 소리에 몇 번씩이나 깨서 눈을 뜨고 어둠을 보고 있었을 아기가 떠오른다. 기억날리 없지만 어쩐지 기억하고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기억을 더듬어보면 나는 중학교 3학년 때부터 잠을 깊게 못 잤다. 어릴 때도 워낙 자주 깼지만 불면이라는 말을 달아도 좋을 정도로 못 잤던 건 그때부터였다. 가위에 처음 눌렸던 날과 겹치는 것 같다.

 그날은 체육대회 연습이 있던 날이었다. 흙먼지를 뒤집어쓴 얼굴이 가려웠고 종아리 근육이 뭉쳤다. 집에 돌아오자마자 씻고 저녁을 먹자마자 곧장 잠에 빠져들었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내가 잠들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몸은 무겁게 가라앉아 움직일 수 없는데 정신은 깨어있었다. 실제로 뜨지 못했지만 내 목을 감싸고 있는 검고 굵은 매듭이 보였다. 손으로 떼어내고 싶었지만 몸을 움직일 수 없었다. 매듭은 나를 옥죄이며 목을 눌렀다. 손가락 하나만 까딱하면 깨어날 수 있을 것 같은데 움직여지지 않았다. 옆에서는 엄마가 틀어놓은 텔레비전 소리, 벽 너머 작은 방에서는 언니가 틀어놓은 라디오 소리가 들렸다. 나 좀 깨워줘, 하고 외쳤지만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목을 감싼 매듭은 점점 커졌고 나는 깊숙이 가라앉았다. 너무 무겁게 가라앉아 다시는 올라오지 못할 것 같았다. 더이상 가라앉지 않기 위해 이불을 붙잡으려 했지만 불가능했다. 다시는 깨어나지 못하고 가라앉기만 할 거라는 두려움이 엄습해올 때 엄마가 일어서다가 실수로 내 발을 건드렸다. 그순간 나는 가위에서 벗어났다. 목을 감싸고 있던 매듭은 순식간에 사라졌고 나는 가라앉지 않고 멀쩡히 이부자리에 누워있었다.


 가위에 처음 눌렀던 이후로 몇 달 동안은 괜찮았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는 거의 가위눌림이 찾아왔다. 가장 심했던 시기는 고등학교 2학년 때였다. 서너달, 한달 단위로 찾아오던 가위눌림은 보름, 일주일로 간격이 좁아지더니 거의 매일, 하룻밤에도 몇 차례씩 찾아오곤 했다.

 목을 감싸던 매듭으로 시작했던 가위눌림은 여러 형태로 변형되기 시작했다. 구옥에서 빌라로 이사간 뒤로 나는 혼자 방을 쓰고 있었는데, 자리에 누우면 또렷한 의식과 달리 몸은 쉽게 잠들어버렸다. 팔다리를 마음대로 움직일 수 없는 것은 기본. 몸이 무겁게 가라앉았다가 천장까지 천천히 부웅 떠올랐다가 방문 쪽으로 스윽 이동했다가 문에 부딪혀서 바닥으로 떨어지는 걸 반복한다. 방문을 열고 들어온 여자가 나를 오랫동안 내려다보다가 뭐라 중얼거리면 다시 내 몸이 떠오른다. 방문 밖에서 수십명이 발을 끌며 돌아다니다가 방으로 들어오기 위해 방문을 밀어댄다. 문이 열리는 걸 막아야겠다는 생각에 힘껏 일어나서 문을 막아서지만 내 몸은 그대로 누워있다. 천장에서 나를 내려다보는 일이 낯설지 않게 여겨지던 날이 지난 뒤부터는 광대처럼 과장된 화장을 하고 요란스러운 옷을 차려입은 남자가 찾아왔다. 방안에서 가위눌림에서 시달리다가 겨우 벗어나 거실로 나오면 그 남자가 인터폰에 낮은 목소리로 노래를 하며 서있었다. 눈은 언제나 나를 향한 채였고 화장 속의 얼굴은 한번도 웃지 않았다. 남자는 가까이 다가와서 내게 얼굴을 들이밀고 노래를 불렀다. 분명 잠에서 깨어났다고 생각했는데, 방에서 일어나 거실로 나왔던 그 모두가 여전히 가위눌림 속이었다.


 새벽에 겨우 깨어나 안방 문을 두드리면 엄마는 주기도문을 외우라고 했다. 집에 나쁜 영이 떠도는데 내가 기가 약해서 자꾸 들러붙으려 한다는 것이었다. 평범한 기독교인이었던 엄마는 이상하게 그당시 종교에 너무 집착하고 있었다. 가게가 망하고 집안 살림이 바닥나서 위기에 처해있을 때여서 더욱 그랬을거라 짐작한다. 당시 각 교회마다 부흥집회가 유행이었는데 엄마는 날마다 그곳에 갔다. 그리고 집에 돌아와서 통성기도를 했다. 안방에 들어가서 몇 시간이나 소리를 높여 기도했다. 다른 방에 있어도 그 소리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전화가 울려 안방에 갔다가 통성기도를 하는 엄마를 보았다. 온몸을 흔들고 통곡하며 기도하는 모습에 뒷걸음질을 쳤다.

 내가 가위에 눌릴 때마다 엄마는 주기도문을 외우라고 했다. 나는 가위에 눌리는 것보다 가위에 눌렸는데 나쁜 영이 몸에 깃들지 못하게 주기도문을 외우라는 말이 더 싫었다. 어쩔 수 없이 혼자 가위에 시달렸다. 날이 밝아올 때 짧게 잠들었다가 학교에 갔다. 하루종일 졸립고 피곤했지만 웃고 떠들었다. 가위눌림은 일 년 동안 계속되었고, 그동안 나는 잠을 잘 수 없었다.


 가위눌림은 지나친 스트레스, 카페인 섭취, 불규칙한 습관, 수면부족 등의 이유로 발생한다고 한다. 아마 그당시 나도 그런 이유 중 하나 때문에 가위에 자주 눌렸을 것이다. 그런데 어느 순간 나를 무겁게 누르던 가위가 사라져버렸다. 내가 버리지 않고 아껴두었던 삶의 목록 중 하나를 버린 날과 비슷한 시기였다. 수면을 관장하는 어떤 존재가 가위만 끄집어내어 가버린 것처럼 가위는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불면은 가위눌림이 사라진 뒤에도 종종 찾아왔다. 잠들지 못하는 이유는 많다. 좀더 시원해져서 창문을 닫고 잘 수 있는 계절을 기다려보자. 그때도 잠들지 못하면 낮에 보고 들은 모든 것을 지워내보자. 그럼에도 여전히 불면이면 햇볕 아래서 좀 많이 걸어보자. 그러다보면 다시 푹 잘 수 있는 날이 오겠지.

 

 다들 잠들었나 싶어 밖을 내다보니 건너편 창 하나가 밝다. 아직 잠들지 않은 혹은 잠들지 못한 사람이 또 있구나 싶어 반가운 마음이 든다. 차들이 달려가는 도로를 한참 보다가 고개를 돌리니 건너편 창도 어둠에 잠겼다. 이제 나도 불을 끄고 어둠 속을 걸어 침대에 가서 누워야겠다. 잠들 수 있으면 좋겠다.


*표지는 노세환의 <온실 속의 노마디즘>-My Toes are free. -직접 촬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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