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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페이지 Sep 05. 2020

여름의 재단

책을 잘라내듯 상처를 잘라내고

 싹둑. 책등에 날카로운 날이 박히고 책은 단번에 잘린다. 책의 형태를 유지시키준 책등이 떨어져나가면 책은 순식간에 종이 다발이 된다. 종이는 쉽게 흩어진다. 바람이라도 불면 후드득 몸을 터는 새의 깃털처럼 눈앞의 공기를 가르며 떠올랐다가 허공을 빙글빙글 맴돌며 바닥으로 내려앉을 것이다. 너무 가벼워진 나머지 허공에서 바닥으로 내려오는 사이 시간의 무게와 습도를 흡수할지도 모른다.

 한때 책이었던 종이는 페이지가 뒤죽박죽 섞인다. 작가의 의도대로 배열된 서사는 순서를 바꾸어 새로운 구조로 진입한다. 원인과 결과, 과거와 현재가 순서를 바꾸며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낸다. 한 장 한 장 새롭게 순서를 바꿀 때마다 페이지에 인쇄된 숫자를 지우고 내 방식대로 숫자를 적는다.

 절대로 바꿀 수 없다고, 평생 벗어나기는 글렀다고 생각했던 삶의 서사가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기 시작한다. 책등을 잘라내듯 상처를 잘라내면 그렇게 될 수 있을까.  

 몸속 어딘가에 깊이 박혀버린 상처, 시간이 너무 오래 지나버려서 이제는 빼내면 커다란 구멍 속으로 아무런 대답도 들을 수 없이 공허한 자신의 메아리만 울릴까 봐, 그런 것들이 두려워서 그냥 그렇게 박힌 채로 살아온 사람은 책등을 잘라낼 수 있을까. 그리고 종이로 변한 그것들을 버릴 수 있을까.




 이 소설의 주인공 치히로는 돌아가신 할아버지가 남긴 책을 재단한다. 소설가인 그녀가 책등을 잘라낸다. 오래된 목조주택의 2층, 천장이 낮고 고풍스러운 카펫이 깔려있는 그곳에서 벽장을 가득 채우고도 남을 만권이 넘는 책을 앞에 두고. 책등을 잘라내면서 자신 입었던 상처를 떠올린다. 그리고 잘라낸다. 그 일은 여름 내내 계속되었다.


  싹둑, 날이 책을 파고드는 순간, 아랫배에서 본의 아닌 욕정 비슷한 열기가 끓어올랐다. 새끼 고양이나 갓난아이가 너무 귀여워 골려주고 싶을 때 같은 뒤틀린 애정에 온 몸의 피가 들끓었다. 어이없고 황홀하리만큼 깔끔하게 책등이 떨어져 나갔다. 조심스럽게 들어보니, 책은 낱낱이 흩어진 종이 다발이 되어 있었다.

                                     -<여름의 재단> 중-


 어린 시절 치히로는 마음 둘 곳이 없었다. 여섯 살 때 여자를 만난 집을 떠난 아버지, 혼자 힘으로 먹고살기 위해 술집을 하는 엄마. 술집은 사람들로 붐볐다. 손님들이 가게를 나설 때마다 치히로도 엄마와 함께 손님들을 배웅했다. 미소를 띠는 걸 잊지 않았다. 엄마가 운영하는 술집에는 손님들이 필요했다. 어렸지만 손님들이 있어야 먹고살 수 있으니, 하는 생각으로 치히로는 노력했을 것이다. 필요한 사람이 되기 위해 잘 보이려고 했을 것이다. 열세 살 봄, 치히로는 단골손님에게 성추행을 당한다. 그는 어딘가로 불러내거나 가게에 딸린 방으로 들어와서 치히로를 괴롭힌다. 강압적인 폭행은 반년 동안 지속된다. 그가 다른 곳으로 거처를 옮길 때까지.

 

  깊이 박힌 상처를 사라지지 않는다. 착한 아이로 살았던 치히로는 어른이 되어서도 착하다는 말을 듣는다. 가학적이고 질 나쁜 어른의 폭력을 고스란히 답습한 시바타가 치히로에게 다시 폭력을 행사했을 때 비로소 그 말이 무엇을 뜻하는지 이해하게 된다. '착하다는 건 약하다는 말과 동의어라는 것을.'


  <여름의 재단>은 어릴 적 성추행 트라우마로 인해 타인의 강압적인 지배력에 쉽게 굴복하고 순종적인 태도로 일관하며 상처투성이의 내면을 가지게 된 치히로가 돌아가신 할아버지가 남긴 책을 재단하면서 자신에게 벌어졌던 일을 객관적으로 바라보게 되는 여름의 이야기부터 시작된다. 소설은 치히로가 벌어진 상처를 응시하며 혼란에 빠지고 고통스러워하다가 봉합하는 과정을 계절의 변화에 맞춰 그려낸다.


 소설집에 담긴 네 편의 이야기는 계절에 변화에 따라 치히로가 어떤 변화를 겪을 것인지 암시한다.


여름의 재단

가을의 여우비

겨울의 침묵

봄의 결론


 여름에는 묻어두었던 상처를 벌어지게 만든 시바타가 주었던 고통을 떠올리며 재단하는 일, 가을에는 여우비처럼 잠깐 나타났다가 지나치는 남자들과 의미 없는 만남이 그려진다. 다행히 여우비 끝에는 치히로를 품어줄 좋은 사람이 서있다. 목차에서 예상할 수 있듯 소설은 '봄의 결론'처럼 따뜻하다. 표지에서 느껴지는 어두운 섬뜩함과는 달라 다행이다.

 

 솔직히 책에 대한 정보 없이 표지만 보고 샀다. 여름이 하룻밤 사이에 가버린 날씨가 되어 당황스러웠지만 여름에 읽지 못한 미스터리 소설.. 이런 책을 읽고 싶었다. 여름이면 늘 읽었으니까 이번 여름이 특별하다고 해서 지나치고 싶지 않았다. 그런데 내 예상과 다르게 트라우마를 극복하는 이야기를 담고 있어서 처음에는 허탈했는데, 어젯밤 읽고 나서 아침에 눈뜨자마자 다시 읽었다.

 우유부단하고 갈피를 못 잡는 것처럼 보이는 치히로의 행동이 답답했지만 이해할 수 다.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어린 시절의 트라우마는 엄청난 위력을 발휘한다. 상처를 똑바로 응시하기 전까지 치히로는 상처 받은 열세 살 아이에서 벗어나지 못했을 것이다. 아무도 이해하지 못하니 혼자만의 깊은 우물 속에 들어가 웅크려서 울었던 거다. 자신의 잘못이 아닌데 어른이 될 때까지 그렇게 알고 살아왔다.


 책등을 잘라내기 시작한 여름, 치히로는 다시 태어났다. 상처로 막혀있던 시간이 흐르게 되었다.


  소설에서 치히로에게 유일하게 어른의 역할을 해주 교수가 있다. 책의 다른 구절보다 상처 입었던 시절의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어 옮겨 적는다.


"한 번 죽은 기분이에요."

깊이 생각하지 않은 채, 그렇게 말했다.

"그렇군. 그렇다면, 다시 태어나자고."

교수의 부드러운 말투에 나는 멍하니 그 눈을 쳐다보았다.

"한 인간으로. 누군가에게 빙의된 그릇이 아니라."

"태어나고 싶지, 않았어요."

간신히 말했다.

"어렸을 때, 취한 손님이 동의하에 그러는 것처럼 하고서, 어린 내게 성욕을 드러내고, 약함을 이용해서 지배욕을 채우고. 아버지조차, 딸이 아니라 그냥 여자처럼 나를 대했어요. 엄마는 그런 걸 모르고, 남자 때문에 위험한 일을 당해도 내가 분명하게 거절하지 않아서 그런 거니까 자업자득이라고."

"심하군."

"엄마도 필사적이었다고 생각해요. 태연한 척했지만, 실제로는 자존심도 그렇고 생활도 그렇고, 지켜야 할 것이 너무 많았으니까요. 지금도 미안하다고 생각이 있으니까, 일방적으로 굳이 세게 말하고 나한테서 도망치는 거죠."

"음, 어린 너와는 관계없는 사정이지. 어머니가 정상적으로 손님을 대하고 푸근한 공간을 제공했더라면, 그런 남자들이 없어도 가게는 돌아가니까. 실제로 가야노 씨가 없는 지금도, 어머니는 지금까지 하던 대로 가게를 하고 있잖아. 그러니까 강판으로 몸을 가는 듯한 헌신은 이제 그만둬야 해.

            -<여름의 재단> 중-


  누구에게도 자신을 넘겨주지 말 것. 선별하거나 부정한다는 감각을 품게 하는 상대는, 나에게 대등한 존재가 아니야. 자신이 느끼기에 정말 좋은 것만 취할 것.

               -<여름의 재단>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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