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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페이지 Nov 17. 2020

일자를 위하여

뜨거운 안녕

  짧은 비명이 터져 나왔다. 힘들지만 버틸 수 있다 생각했다. 반복적인 노동과 잘못된 습관으로 굳어버린 시간의 축적물에 안녕을 고할 기회라고 여겼다. 그래서 성급하게 재촉했다. 일자를 위하여 한시라도 빨리 나아가고 싶었다. 차근차근 밟아가야 할 단계를 건너뛰려고 했다. 순간 날카로운 통증이 등허리를 꿰뚫었다. 다시는 일자에 이르지 못할 거라는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비명이 터져 나오기 직전, 나는 몸을 반활 형태 만들기 위해 엎드린 상태에서 왼팔을 뻗은 채 오른손으로 바닥을 짚고서 몸을 크게 틀었다. 어어 너무 많이 틀었나 싶었을 때는 이미 허리가 살짝 꺾인 뒤였다. 아랫배에 힘을 줘서 허리가 꺾이지 않아야 한다는 말이 뒤늦게 떠올랐다. 오른손으로 오른발을 잡으면서 견갑골을 접힌 상태를 만들어야 했는데, 나는 그만 힘을 잃고 다시 엎드린 자세가 되었다. 그렇게 반활이 되지 못하고 한참 개구리로 남아있었다.


 반활이 되지 못하고 개구리로 마감한 이 몸은 비명 속에서 작아졌다.

 


 

 목표는 일자 어깨를 찾는 것과 일자 다리를 가지는 것이었다.


 내 어깨가 일자일 때는 눈에 들어오지 않던 형태인데, 안으로 말린 어깨가 되어가자 갑자기 반듯한 일자 형태의 어깨가 간절해졌다. 일자 다리는 한 번도 성공해본 적이 없었다. 어릴 때 몸이 유연한 리듬체조반 아이들이 일자 다리(다리 사이의 각도를 180도로 벌려서 일자 형태로 만든 다리)를 쉽게 하는 걸 보고 따라했다가 180도에 한참 미치지 못하는 내 각도를 보고, 그런 동작이 되는 사람은 따로 있을 거라며 미리 포기했던 적도 있었다.


어쩐지 이번에는 가능할 것 같았다.

유투버는 말했다. 4주를 꾸준히 하면 누구나 일자 다리를 만들 수 있다고. 2주를 하면 누구나 일자 어깨를 가질 수 있다고.


 일자에 이르는 방법은 다양했다. 어렵지 않아서 누구라도 마음만 먹으면 할 수 있으며 노력한 만큼 확실한 결과가 나올 거라고 했다. 내가 편하게 여겼던 방식을 반대로 하는 것으로 시작되었다. 의식하지 않을 때 내 몸이 자연스럽게 향하는 방향을 의식적으로 틀어야했다. 쉽고 빠른 결과를 손에 쥐고 싶은 마음에 성급하게 들어섰던 나는 첫 단계부터 어려움을 겪었다. 평소 사용하지 않던 근육을 쓰다 보니 평소 알지 못했던 통증이 생겼다. 안으로 말린 어깨를 일자로 펴기 위한 스트레칭이 다른 곳의 근육까지 건드렸다.


 일자 어깨를 위해 기지개 켜는 고양이, 먹이를 찾는 뱀, 활쏘기 직전의 팽팽한 반활이 되었다.

 일자 다리를 위해 소머리, 뛰기 직전 개구리를 거친 뒤 머뭇머뭇 각도를 넓히는 컴퍼스가 되었다.

 

  개구리로 마무리되었던 몸은 겨우 일어서서 사람이 될 수 있었지만 허리 통증을 얻었다.

심각하지 않다는 자체 판단으로 아직 병원은 가지 않고 있지만 요즘 이 몸은 계속 허리만 생각하고 있다. 걷다가도 앉다가도 일어서다가도 '허리야'를 외친다. 인생에서 내가 이토록 허리만 생각하던 때는 없었을 것이다. 그동안 무관심하다가 이제야 사랑에 빠진 것인가.


 더 이상 일자 어깨와 일자 다리를 갖는 것은 중요하지 않다. 지금 이 순간, 허리에 대한 생각에서 벗어나는 것만이 중요하다. 그러기 위해서는 허리의 통증이 사라져서 예전처럼 내게 허리가 있었는지 없었는지 생각조차 하지 않게 되는 상태로 되돌리는 게 먼저다. 앉는 자세가 가장 큰 통증을 주기 때문 반드시 필요한 경우를 빼고는 서거나 걷거나 눕는다.

 이 글도 누워서 쓰고 있다. 누워서 쓰니 어깨가 아프다. 이러다가 어깨가 더 안으로 말려서 일자와는 더 멀어질 것 같지만 낮에 반드시 앉아있어야 하는 시간이 있으니 지금은 누워야 한다. 내일 아침에 눈을 떴을 때 허리가 이 몸에 더한 관심을 표한다면 병원에 가야 할지도 모르겠다.


 돌이켜보니 과거에도 성급하게 무리한 동작을 했다가 병원을 찾았던 적이 있었다.

앞구르기가 머리를 자극해서 정신을 맑게 하고 두통을 줄여준다는 정보를 듣고 곧장 실행을 했다. 매트를 깔아놓고 무작정 앞구르기를 수십 번 했다. 머리가 맑아지고 두통이 줄어드는 효과 대신 목과 어깨에 담이 와서 고개를 돌릴 수가 없었다. 로봇처럼 꼿꼿하게 고개를 들고 가서 아프다고 하자 병원에서 이유를 물었다. 나는 사실대로 앞구르기를 했다고 대답했다. 그때 의사는 잘못 들었나 싶은 얼굴로 되물었다. 네? 앞구르기요?

 아이들에게 보여준다고 철봉에 한 발을 걸고 몸을 앞으로 뒤로 굴렸다가 담이 오기도 했다. 몸을 바퀴처럼 옆돌기를 하다가 내려오다가 무릎을 다치기도 했다.


 시간에 쫓기듯이 급하게 하다가 벌어진 일들이다. 평소 바른 자세를 유지하며 굳었던 근육과 관절을 천천히 풀고서 다음 단계로 넘어가면 될 텐데 그렇지 못할 때가 많다. 4주라는 시간을 반으로 접어서 빨리 끝내면 훨씬 이득이 아니냐는 얄팍한 계산법이다. 이번에도 이런 계산법을 적용했다가 어려움을 겪고 있다. 평소에 쉬웠던 일들은 쉽지 않고 당연하게 건강하던 허리는 끝없이 자신을 봐달라고 외치고 있다. 뜨거운 찜질팩을 허리에 대고 누워서 나는 일자에 작별을 고했다. 뜨거운 안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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