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있는 동물의 털로 채운 패딩
아침에 따뜻한 침대에서 나오고 싶지 않아 한참 뭉그적거렸다. 포근한 이불 속에서 이대로 긴 겨울잠을 자고 싶다는 생각을 하다가 짧은 꿈을 꾸었다. 오랫동안 만나지 못했던 사람들 몇몇이 옛 모습 그대로 나타나서 안부를 묻는 꿈이었다.
누군가 많이 거칠어졌다며 내 뺨을 손을 갖다 댔다. 따가운 느낌이 들어 뒤로 물러섰다가 꿈에서 깼다. 그런데도 뺨이 따가워 희부연 어둠 속에서 뺨을 쓸었다. 보드라운 털에 박힌 뾰족한 날개깃이 손에 잡혔다. 오리털 이불에서는 가끔 깃털과 날개깃이 빠져나와 어딘가에 붙는다. 이불이 뜯어졌나 싶어 살펴도 작은 구멍조차 보이지 않는다. 밤새 이불에서 빠져나와 뺨과 머리카락에 달라붙은 깃털을 모아 쓰레기통에 버렸다.
서쪽으로 난 창문이 열리지 않았다. 몇 번 흔들어보았지만 창틀이 얼어붙어 꼼짝도 하지 않았다. 밤새 더 추워진 바깥과 보일러로 데워져 따뜻한 안쪽의 온도 차이로 생긴 물이 얼어붙은 모양이었다. 서서히 얼어버린 물 자국과 하얗게 서리가 끼어 얼룩덜룩한 유리창 너머로 두툼한 패딩으로 몸을 감싼 사람들이 걸어갔다. 오리털 혹은 거위털로 빵빵하게 채워진 패딩은 무척 따뜻해 보여서 매서운 추위에도 끄떡없을 것처럼 보였다.
겨울의 초입에 들어섰을 뿐인데, 갑작스레 낮아진 기온 때문에 실제보다 더 강한 추위가 느껴지는 요즘이다. 밖에서 만나는 추위는 ‘코끝 쨍한 추위 ’귀가 떨어져나갈 것 같은 추위‘ 라는 말보다 더 정확한 표현을 찾기 힘들 정도로 정말 춥다.
옷장 깊숙이 넣어두었던 패딩을 거의 일 년 만에 꺼냈다. 희미한 얼룩이 남아있고 쿰쿰한 냄새가 나서 세탁을 해야 할지 고민이 들었다. 그러다가 작년에 집에 있는 세탁기에 오리털 패딩과 오리털 이불을 차례로 세탁했다가 동물의 털에서 나는 누린내가 진동을 해서 난감했던 기억이 떠올랐다. 며칠 입었다가 드라이를 하거나 다른 방법을 생각해보기로 하고 베란다로 나가 납작해진 패딩을 두들기고 털었다. 숨죽어있던 패딩이 부풀어 오르기 시작했다.
가벼운 깃털 하나가 공중으로 떠올랐다.
그 가벼움 속에 고통으로 울부짖는 새들의 비명이 섞여들었다.
그런 이유로 나는 오리털 패딩을 아직 입지 못하고 있다.
솜이 들어간 패딩보다 오리털이나 거위털이 훨씬 따뜻하고 가볍다고 알고 있었고, 실제로도 그랬던 것 같다. 오래전 입었던 솜 패딩은 한번만 빨아도 숨이 죽어 납작해졌다. 다시 부풀어오르지 않고 얇아져서 후줄근해졌다. 하지만 오리털 패딩은 달랐다. 어떤 추위에도 끄덕없을 것처럼 언제나 부푼 상태였고 가벼웠다.
가볍고 따뜻한 羽毛.
털을 내어준 새들의 몸은 어떻게 되는 건지 가끔 궁금했지만 동물들의 털은 금세 다시 자라지 않을까 하며 잊고 지나갔다. 그러다가 며칠 전 라디오에서 오리털 패딩을 분해하는 체험을 했다는 어느 기자의 말을 듣고 오리털 패딩을 다시 보게 되었다.
머니투데이 남형도 기자는 실제 체험을 하고 기사를 쓰는 ‘체헐리즘(체험+저널리즘)’으로 유명하다. 나는 라디오로 체헐리즘 이야기를 들었는데, ‘유퀴즈온더블럭’을 비롯해 다른 방송에도 출연한 적이 있다고 한다. 우리 사회의 문제점에 대해 관심이 많았던 남형도 기자는 글로만 기사를 쓰는 것과 직접 체험하고 쓰는 차이를 알기 때문에 체험의 방식을 선택했다고 한다. 내가 들었던 체헐리즘 중에는 위험이 따르거나 슬픔이나 고통을 수반하는 취재도 꽤 있었다. 123층 건물 유리창을 닦고 유기견 보호소에서 죽음에 몰린 개들을 돌보고 노인과 시각장애인의 하루를 살아보았다. 단 하루의 체험이지만 직접 하는 취재는 오래전에 멈추고 쉽게 기사를 쓰는 기자들이 많은 세상에 그의 노력은 눈에 띄었다. 그런 남형도 기자가 12월 초입이 되자 오리털 패딩을 분해하는 체험을 하기로 결심했다. 오리털 패딩을 만들기 위해 희생되는 오리나 거위에 대해 알리고자 하는 의도였다. 다섯 명의 독자가 보내준 오리털 패딩을 받았고 집에 있는 방 한 칸을 비워서 작업을 시작했다. 그는 이번 체험을 통해 ‘착한 패딩’ ‘비건 패딩’을 알리려고 했다.
패딩 하나에 평균적으로 15마리에서 25마리의 오리 가슴털이 들어간다고 한다. 전세계 오리털과 거위 털의 80%가 중국에서 생산되는데, 오리털을 뽑는 과정이 가혹하다.
국제동물보호단체 페타(PETA)가 공개한 영상(2014년)을 보면, 거위 머리와 목을 잡아서 움직이지 못하게 한 다음 무릎에 끼우고 누른다. 그리고 살아있는 상태에서 거위의 털을 빠르게 뽑아낸다. 그 상태에서 뽑은 털이 상태가 좋기 때문이다. 털이 다 뽑힌 거위의 시뻘건 살갗은 영상을 보는 것만으로도 고통이 느껴질 정도다. 생후 10주부터 시작되어 6주마다 뽑힌다. 알 낳는 거위는 5번에서 15번까지 그런 과정을 겪다가 죽임을 당한다고 한다. 죽임을 당한다는 건 털의 쓸모가 사라지면 고기로 사용된다는 의미겠지.
남형도 기자는 오리털 패딩을 분해하며 인간의 따뜻함을 위해 지독한 고통을 겪어야 하는 동물들의 삶을 기억하고 추모했다.
다시 눈앞에 놓인 거위털과 오리털을 봤다. 패딩 한 벌에 15~25마리의 가슴털이 들어간다. 새삼 다시 어루만졌다. 흩날리는 털 무더기가 앙칼진 비명처럼 보였다. 고통을 달래듯 천천히 어루만졌다. 쉬이 잠잠해지지 않았다.
-남형도 기자, <체헐리즘> 중-
요즘은 착한 패딩, 비건 패딩이라고 불리는 웰론, 신슐레이트 같은 보온용 신소재를 쓴 패딩들이 나오고 있다. 살아 있는 동물에게 털을 뽑지 않았다는 '윤리적 다운 인증(RDS)'도 있다고 한다. 하지만 소비자가 아무리 원해도 기업의 각성이 없으면 해결할 수 없는 문제이다. 아직 비건 패딩은 소수 매장에서만 판매된다. 남형도 기자는 김성호 성서대 사회복지학과 교수의 말을 전한다. "소비자에게만 '네가 안 쓰면 안 팔린다'고 하는 건 너무 먼 이야기"라며 "소비자 책임만 부각할 게 아니라, 기업들이 책임감을 갖도록 해야 한다"는.
내게는 오리털 패딩 두 개, 솜털 패딩 하나가 있다. 이번에 패딩을 꺼냈다가 한번도 확인해보지 않았던 성분 표시를 읽어보았다. 솜털 80%. 깃털 20%. 처음에는 솜털이 그냥 인공 솜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솜털은 오리나 거위의 가슴에서 배에 이르는 풍성한 털을 일컫는 거란다. 오리의 몸에서 뽑아낸 羽毛가 추운 겨울, 나를 따뜻하게 지켜주고 있었다. 내가 입는 패딩을 채우기 위해 최소 15마리가 고통을 겪는다. 예전에 세탁기로 오리털 패딩과 이불을 빨았을 때 났던 동물의 누린내는 인간에게 당하는 일방적인 폭력의 결과물인 것이다.
두 개의 오리털 패딩 중 하나에는 털이 풍성한 모자가 달려있다. 그 패딩의 성분표시를 확인한 순간 나는 깜짝 놀라고 말았다. 모자에 달린 털은 인공으로 만든 털이 아니라 너구리의 털이었다. 오리, 거위에 이어 너구리까지. 그러고 보면 신발도 소가죽, 가방은 악어가죽. 우리 인간은 동물의 털과 몸을 벗겨 안락하게 살아가고 있으면서 그 이면에는 고개를 돌리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 씁쓸해졌다.
침대에 놓인 오리털 이불에서 깃털 몇 개가 빠져나왔다. 가볍고도 따뜻한 이불. 겨울잠을 자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아늑했던 이불을 만들기 위해서 몇 마리의 오리 혹은 거위가 고통을 겪어야했을까.
앞으로는 오리털 이불을 덮었던 몸에 깃털이 달라붙을 때마다 얼마 되지 않은 삶의 전부를 고통으로 보내야했던 그들이 떠오를 것 같다. 시뻘겋게 드러난 살갗과 고통의 이유를 물을 수조차 없이 겪어야하는 고통까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