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고기가 놓인 불판 앞에서 부부가 상추에 불고기를 올려 쌈을 싸서 먹고 있다. 쌈이 너무 커서 볼이 미어질 정도였다. 볼이 미어지게 쌈을 먹는 아내를 보며 남편은 '미어지다'는 단어에 대해 생각한다. 삼년 전까지 같이 왔던 아들은 이 자리에 없다. 둘이 와서 삼인분을 시켰더니 불고기가 많이 남았다. 남편은 가슴을 주먹으로 쳤다. 가슴 미어지는 이야기가 시작된다.
불판 가장자리에 고인 육수에 밥을 말았다. 밥이 죽이 될 정도로 끓여 먹는 걸 아내와 아들은 좋아했다. 나는 밥이 들러붙지 않도록 저어주었다. 불판에는 아직 불고기가 많이 남아 있었다. 둘이 와서 삼인분을 시킨 것은 처음이었다. 불고기 이인분. 공깃밥 하나. 그리고 맥주 여섯 병. 주문은 이렇게 바뀌었다. 내가 필리핀에 가 있는 동안 종종 집에 들러줄래? 물고기 밥 좀 부탁해. 아내가 내게 말했다. 그러고는 상추에 불고기를 가득 올려놓고는 쌈을 쌌다. 쌈이 커서 볼이 미어질 것만 같았다. 나는 쌈을 씹는 아내를 보며 미어지다는 단어에 대해 생각했다. 볼이 미어지다. 가슴이 미어지다. 나도 아내처럼 불고기를 가득 넣고 상추쌈을 쌌다. 볼이 미어지다. 입이 미어지다. 주둥이가 미어지다. 나는 가슴을 주먹으로 쳤다.
-<베개를 베다> 중
셋이었을 때 그들은 불고기 삼인분에 맥주 두 병, 사이다 한 병을 주문했다. 아들의 키가 방학 동안 십오 센티미터나 자랐던 삼 년 전에는 불고기 오인 분, 공깃밥 네 개, 사이다 한 병, 맥주 두 병을 주문했다.
둘이 되었을 때 부부는 불고기 이인분에 맥주 여섯 병을 주문했다. 남편은 볼이 미어지게 상추쌈을 씹는 아내를 보며 '미어지다'는 단어에 대해 생각한다. '가슴이 미어지다'는 말을 하고 싶었지만 직접 말하지 않고 아내처럼 미어지게 쌈을 먹고 '미어진 가슴'을 주먹으로 친다.
윤성희 작가의 소설에는 일상의 규칙과 자잘한 습관들이 만들어내는 독특한 리듬과 짧게 끊어지며 '할 말을 다하지 않는'것처럼 느껴지는 문장들이 있다. 그러한 리듬과 문장 사이에는 한숨과 상처가 고여있다.
소설 속 인물들은 상처를 받지 않은 것처럼 가볍게 살아가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진짜 할 말을 숨기고 있는 것이다. 그들은 상처를 드러내는 방식보다 상처가 지나가기를 기다리면서 작은 규칙들을 되풀이하며 시간을 견디고 있다. 별 쓸모없어 보이는 규칙들은 타인은 이해할 수 없고 나눠가질 수 없는 혼자만의 외로운 싸움이다. 그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상처의 통증이 무뎌지기를 기다린다.
소설에서 사라진 사람은 아들이다. 셋이었을 때 가족은 풍족하진 않았지만 단란했다. 삼 년 전, 불고기를 함께 먹을 때 아들은 '성년이 되는 날 자신에게 아주 근사한 선물을 사줄' 거라는 말을 했다. 하지만 아들은 그 약속을 지키지 못한다. 성년을 맞이하지 못했기 때문에. 소설이 끝날 때까지 아들에게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아무도 말하지 않는다. 다만 보여주는 몇몇 문장을 통해 아들의 부재를 알 수 있다.
'버스비가 아깝다며 자전거를 타고 통학을 하던 아들이었다. 성년이 되는 날 자신에게 아주 근사한 선물을 사줄 거라고 했다. 그 선물이 무엇인지는 비밀이에요.'
'언젠가 한강에 던져버렸던 호출기. 그걸 버린다고 그 안에 들어 있는 음성메시지가 없어지는 것도 아닌데.'
'베란다의 행복나무는 죽어 있었다.'
''아들의 방문에는 비상구 표지판이 달려 있었다. 뭐야. 불 나면 니 방으로 탈출해야 해? 아들에게 아내는 농담을 하곤 했다. 아들이 문을 광 닫을 때면 비상구 표지판이 흔들렸다.'
'성년의 날 아들은 무얼 사려 했을까? 자기 자신에게 어떤 걸 선물하려 했을까?"
'나는 아들이 스무 살이 되면 복권 삼등을 세 번이나 당첨시켜준 행운의 그 꿈을 팔려고 했다. 단돈 천 원에.'
-<베개를 베다> 중
아들의 부재 이후 남편은 엑스트라가 되어 하루에도 몇 번씩 죽었다 살아나기를 반복한다. 죄수가 되었다가 시체가 되는 그가 촬영장에서 가장 많이 하는 일은 '기다리는' 것이다. 기다리는 것은 시간을 견디는 것.
남편은 촬영장에서는 엑스트라들과 함께 유통기한이 네 시간이나 지난 삼각김밥과 유통기한이 세 달이나 남은 두유를 이른 아침을 먹고, 제육덮밥을 점심으로 먹고, 사발면을 야식으로 먹는다.
촬영이 끝나면 들르는 포장마차에서는 혼자 혹은 P나 K와 함께 무언가를 먹는다. 혼자일 때는 국수 한 그릇과 술을 먹고, P나 K 중 한 사람이 오면 국수 한 그릇이 테이블에 더 놓였다. 작년 여름, 포장마차에서 우연히 만난 그들의 공통점은 '이혼'이었다. 전화번호를 교환하지도 않았고, 어디에 사는지도 모르고, 나이 서열을 정하지도 않은 셋은 '잔이 비면 따라주면서 시답잖은 농담을 주고받는 사이'로 만족했다. 셋은 각자 자신이 왜 이혼을 당했는지 이유를 모른 채, 어떤 식으로든 자신에게 새겨진 상처를 잊기 위한 시간을 보내는 중이다. 특별히 이름을 부를 필요가 없는 셋 중 누구 한 사람이 사라져도 찾지 않을 관계를 유지하며 그들은 각자 자신이 하루를 보내고 있는 방식에 대해 털어놓는다.
그중 아내가 왜 이혼을 요구했는지 이유를 전혀 모르는 K의 경우는 독특하다. 이십사 시간 하는 분식집의 아흔여덟 개 메뉴를 메뉴판에 적힌 순서대로 먹는 도전 중이라니 무용하면서도 쓸쓸해 보인다.
K는 메뉴판 순서대로 음식 먹기에 도전 중이라고 했다. 이십사 시간 하는 분식집인데, 어느 날 메뉴판에 적힌 음식을 세어보니 자그마치 아흔여덟 개나 되었다. K는 주방 쪽을 보았다. 거기에는 오십 대가 넘어 보이는 아주머니가 마늘을 까고 있었다. 어떻게 혼자서 아흔여덟 개나 되는 음식을 만든다는 거지? K는 도통 이해가 되지 않았다. 메뉴판에 있는 첫 번째 음식은 천오백 원짜리 야채김밥이었고 마지막 음식은 만 이천 원짜리 돈가스 오므라이스 세트였다. K는 김밥을 시켰다. 그날부터 K는 메뉴판의 첫 번째 음식부터 차례차례 먹는 중이라고 했다.
-<베개를 베다> 중
남편이 사소한 규칙을 지키며 시간을 견디는 동안 아내는 미래를 위한 준비를 차곡차곡 밟아왔다. 자신은 모르는 사이 아내가 필리핀 어학연수 준비를 하고 있었다. 아내는 자신이 필리핀에 가있는 동안 집을 봐달라는 부탁을 했다. 그렇게 남편은 오랜만에 셋이서 함께 살던 옛집에 갔다. 그곳에서 혼자 점심을 배달시켜먹고 잠이 든다. 옛집에 머무는 사이, 남편은 자주 꿈을 꾸었다.
꿈꾸던 첫날, 아내는 그가 전화를 할 때마다 전화를 계속 끊었다.
꿈꾸던 둘째날, 아내는 전화를 끊지 않았고 그의 말을 들어주었다. 그는 꿈 속에서 아들에게 팔려고 했던 행운의 꿈을 아내에게 팔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아내는 꿈 따위는 필요 없다면서 전화를 끊었다.
남편은 꿈에서 깨어나 물고기들에게 밥을 주고 화분에 물을 준다. 살아있는 물고기는 밥을 잘 먹었다. 하지만 죽은 화분은 아무리 물을 줘도 살아나지 못했다.
다시 되돌릴 수 없지만 다시 되찾고 싶은 안타까운 마음은 이런 시도로 드러난다.
과거의 고통에서 벗어나지 못해 현재를 제대로 살아갈 수 없는 이들에게는 시간을 견디는 방법밖에는 없는 걸까.
셋이었을 때, 남편은 아들에게 단골집을 만들어주기 위해 세 달 내내 주말마다 외식을 했다. 그때 단골집으로 내세운 조건은 다섯이었다.
맛있을 것. 집에서 걸어갈 수 있는 거리에 있을 것. 비싸지 않을 것. 주인이 주방일을 할 것. 가게 주인의 나이가 사십 대 후반이나 오십 대 초반일 것.
그런 곳을 찾기 위해 가족은 세 달 동안 주말마다 외식을 했고, 마침내 단골집을 찾아냈다.
셋이었을 때 그들의 주문은 늘 똑같았다. 불고기 삼인분. 공깃밥 세 개. 사이다 한 병. 맥주 두 병.
아들의 키가 방학 동안 십오 센티나 자랐던 삼 년 전에는 불고기 오인분. 공깃밥 네 개. 사이다 한 병. 맥주 두 병.
둘이 된 부부의 주문은 이렇게 바뀌었다. 불고기 이인분. 공깃밥 하나. 맥주 여섯 병.
둘이 된 그들은 헤어졌고, 그다음부터 누구와도 친밀한 관계를 맺지 않으며 '함께' 나누지 않았다.
소중한 사람을 잃은 자리에서 생겨나는 것은 슬픔이 아니다. 그곳에서는 아무것도 생겨나지 않는다.
단골이었던 불고기 식당에서 사라진 것은 한 사람의 자리가 아니라 '모든 것'이었다.
불고기를 상추에 싸 먹으면서 가슴이 미어지는 것은 너무나 당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