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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페이지 Apr 29. 2020

이름이 많은 고양이

일상다소설

 동네에 있는 마트 주변에 언젠가부터 아기 고양이 한 마리가 살기 시작했다. 두꺼운 패딩을 입고 다닐 때였고 졸업 시즌이었고 코로나19로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으니 2월 중순쯤이었을 것이다. 들리는 말로는 처음에 고양이는 마트에서 창고로 사용하고 있는 곳에 숨어있었다고 했다. 하루에도 몇 번씩이나 납품 차량이 드나드는 곳은 아기 고양이에게 너무 위험한 장소였다.  


 어느날 누군가 마트 창고 옆의 작은 공간에 고양이 집을 만들어주었다. 종이박스의 위아래를 테이프로 막고 문으로 사용할 수 있도록 앞쪽에 구멍을 내주었다. 아기 고양이는 집 밖으로 잘 나오지 않았다. 처음 봤던 고양이는 너무 작은 몸에 연한 털이 성기게 나있는 정말 아기였다. 아직 날씨가 추운데 밖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지 걱정이 되었다. 혹시나 해서 담요를 가져갔는데 이미 누군가 고양이 집 바닥에 담요를 깔아놓았었다. 물과 사료를 담은 플라스틱 그릇도 놓여있었다.


  자꾸 고양이가 생각났다. 아기 고양이를 보러 가는 것은 하루 일과가 될 정도였다. 그런 생각을 하는 사람은 나뿐이 아니었다. 다들 고양이의 안부가 궁금했던지 고양이 집 근처에는 늘 사람들이 있었다. 사람들은 고양이를 걱정했다. 근처를 지날 때 고양이를 한번씩 불러보고 가는 사람들이 늘어났다.  


 어느날 찬 바람이 들어가지 못하도록 두께감 있는 비닐을 갈래갈래 잘라서 만든 커튼이 걸려있었다. 사료 옆에 간식이 놓일 때도 많았다. 누군가 가져다놓은 고양이 장난감도 있었다. 가끔 비닐 커튼 사이로 얼굴을 내밀었다가 금세 숨어버리던 고양이는 시간이 갈수록 집 밖에서 노는 시간이 더 많아졌다.

사람들이 고양이 낚싯대를 흔들면 아기 고양이는 박스 밖으로 얼굴을 내밀었다가 조심스레 밖으로 나왔다. 그리고 낚싯줄을 잡기 위해 앞발을 뻗었다. 나도 몇 번 낚싯대를 흔들며 놀아줬는데 처음에 경계하던 눈빛과 달리 고양이는 신나게 놀다가 배를 보이며 누워서 구르기도 했다. 생선 모형의 장난감을 물어뜯기도 하고 상자 위에 올라앉았다가 뛰어내리기도 했다. 움직임 하나하나가 눈에 깊게 들어왔다. 고양이를 별로 좋아하지 않았는데, 혹한 추위 속에서 살아남은 아기고양이는 이상하게 계속 마음이 쓰였다.


 날마다 아기 고양이를 야옹아 하고 부르다가 문득 이름을 지어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고양이 집에 문패를 만들어주는 건 어떨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고양이와 어울리는 이름을 고민하다가 끝내 짓지 못했다. 이름을 붙이는 순간 아기 고양이의 존재가 너무 커질 것 같았기 때문이다. 내가 그럴 만한 자격이 있는지 알 수 없었다. 고민 끝에 나는 늘 부르던 대로 '야옹아'라고 불렀다.

 

 사람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아기 고양이의 이름을 불렀다.

야옹아 애기야 치즈야 나비야 양이야 밀크야 봄이야.

내가 들은 이름만 일곱 개.


오늘도 고양이의 안부를 묻는 사람들이 아기 고양이를 부른다. 각자의 방식 속에 비슷한 마음을 담아.


야옹아~ 잘 자라주렴.

.

.

.

-후일담-

 이름이 많은 고양이는 얼마 지나지 않아 '치즈'라는 하나의 이름을 가지게 되었다. 누군가 따뜻한 집으로 데려가기로 했기 때문이다. 치즈가 떠난 자리에는 아직 흔적이 남아있다. 일곱개의 이름 혹은 더 많았을지 모를 사람들이 불렀던 이름 만큼이나 많았던 사람들의 손길과 시간들이.

 치즈는 어느 집으로 갔을까. 치즈를 데려간 사람이 남긴 메모를 보니 내가 짐작했던 그 사람은 아닌 것 같다. 늘 같은 시간에 치즈의 물과 사료를 새로 갈아주고 물티슈로 주변을 닦아주었던 곱슬한 파마머리를 하나로 묶고 있던 여자. 만약 치즈가 새로운 집에 정착하게 된다면 그 사람일 거라고 생각했는데, 치즈는 다른 사람이 데려갔다. 아기고양이가 자랄수록 마트 창고 주변의 차량도 근처에 떨어진 담배꽁초도 걱정됐는데, 치즈라는 이름으로 불릴 집으로 가게 되어서 다행이다.


 치즈야, 너는 어느 집에서 살고 있니? 네가 있던 곳을 지날 때마다 네 모습이 아른거린다. 사랑 많이 받고 잘 자라주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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