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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페이지 May 17. 2020

어떤 꿈을 꾸었나요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 <꿈을 빌려드립니다>

 하룻밤 사이 몇 번이나 등장인물과 장소가 바뀌는 꿈을 꾸었다. 깊이 잠들지 못하는 밤, 꿈이 시리즈처럼 연달아 펼쳐질 때가 종종 있다.


 첫 번째 꿈속에서 나는 아주 긴 다리를 건너고 있었다. 바람이 불 때마다 출렁거리는 다리 양 옆으로는 강이 흐르고 있었다. 생각해보니 바다였나 싶기도 하다. 강이라면 그렇게 큰 파도가 몰아칠 수 있었을까. 강과 바다를 구분할 수 없을 정도로 꿈의 전체적인 색채는 조도가 낮은 흑백필름처럼 어둡고 흐릿했다. 넓은 강을 건너야 집에 도착할 수 있는데 파도는 물아치고 다리는 흔들리고 발은 미끄러웠다. 강과 강 사이를 이어놓은 다리의 줄을 양손으로 잡지 않으면 금세라도 강물에 빠질 것 같았다. 다리는 오직 발판과 밧줄로만 이루어져 있었는데 몸의 균형이 조금만 흐트러져도 옆으로 휘청거렸다. 내 뒤로는 가족들이(지금의 가족이 아닌 어릴 적 언니와 오빠) 줄을 잡고 따라왔다. 떨어지지 않기 위해 안간힘을 써서 줄을 잡고 가는 동안 강물은 다리를 건너고 있는 나의 등까지 덮쳐왔다. 다행히 우리는 강물에 빠지지 않고 다리를 건너서 문을 열었다. 꿈속의 집은 다리의 도착지점에 지어져 있었고 다리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그 집-꿈에서는 부모님이 계시는 우리 집이었다-의 문을 열 수밖에 없어다. 미닫이로 된 문을 열고 들어가자 곧장 부엌이 나왔다. 부모님은 식사를 하고 계셨는데 표정이 좋지 않아 보였다. 무슨 일이냐고 묻자 할머니가 또 이불을 망쳐놓았다고 하시며 한숨을 쉬셨다. 화장실에는 두꺼운 이불이 쌓여 있었다. 할머니는 강물에 접해있는 통유리창이 있는 복도에 서계셨다. 할머니, 하고 부르자 나를 향해 돌아보셨는데 그 표정이 어린아이처럼 해맑았다.


 두 번째 꿈속에서 나는 좁은 골목에서 장사를 하고 있었다. 어떤 물건을 파는 가게인지는 모르겠지만 가게 문을 여는 동안에는 그곳을 반드시 지켜야 한다는 사실만은 알 수 있었다. 하루 종일 손님 한 명 들어오지 않은 가게에서 나는 창밖만 내다보고 있었다. 내가 지키고 있는 가게의 건너편에도 가게가 있었는데, 하루 종일 사람들이 자주 드나들 정도로 장사가 잘 되었다. 간판은 없었지만 그곳은 장의사였다. 죽음 이후의 절차에 대해서 상담하러 온 사람들의 표정에는 슬픔이 어려 있었다. 장의사는 차분한 표정으로 사람들에게 상담을 해주었다. 그와 상담을 마친 사람들의 얼굴에는 평온이 깃들었다. 나는 장의사와 한 번도 대화를 나눈 적이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래서 인사라도 해야겠다는 생각에 가게 문을 열고 골목으로 나섰다. 그때 커다란 트럭이 지나갔다. 좁은 골목이라 가게로 다시 들어가지 않으면 트럭에 몸이 끼일 것 같았다. 나는 다시 가게로 들어가 트럭이 지나가기를 기다렸다. 트럭은 천천히 지나갔다. 바퀴가 앞으로 나아갈 때마다 유리창이 흔들렸다. 마침내 트럭이 다 지나갔을 때 나는 다시 가게 문을 열고 골목으로 나갔다. 그런데 조금 전까지 장사를 하고 있던 장의사는 불이 꺼졌고 문이 닫혀있었다. 유리창에 바짝 눈을 대보았지만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세 번째 꿈속에서 나는 누군가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처음 보는 얼굴인데 알고 있는 사이였다. 나는 그에게 요즘 뭘 하며 지내느냐고 물었고 그는 무어라고 대답했다. 우리가 서있는 옥상으로는 햇빛이 쏟아져내리고 있었다. 초록색 페인트로 칠한 옥상 바닥은 뜨거웠고 손에 들고 있던 콜라는 미지근해졌다. 마실까 말까 망설이다가 남은 콜라를 한꺼번에 마셔버렸다. 톡 쏘는 맛도 시원한 느낌도 없는 밍밍하고 달기만 한 액체였다. 쉬는 시간이 끝났다며 그는 나에게 일하러 가자고 했다. 옥상에서 계단으로 들어서자 시원해졌다. 일하기 위해 내려가는 계단으로 두 사람이 내딛는 발자국 소리가 크게 울렸다.




 밤새 꿈을 꾸느라 피곤해졌다. 실제로 나는 꿈만 꾸었을 뿐인데 꿈속의 내가 꿈꾸지 않고 어딘가에서 깨어있는 바람에 쉴 수 없었다.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커피를 마시며 꿈을 적어내려갔다. 어릴 적부터 내 꿈은 한 번도 현실을 예측한 적이 없으며 기억이나 불안감의 반영에 불과했다. 꿈에서는 선명했으나 깨어나자마자 사라지는 꿈이 있는가 하면 하루 종일 머릿속을 떠다니는 꿈도 있다. 어젯밤 꿈은 오랜만에 선명하게 남아있어서 떠올리기가 쉬웠다. 어렸을 적 아버지는 꿈 이야기를 자주 했다. 그러면서 하루에 벌어질 일을 점치곤 하셨다.


아침부터 꿈에 대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 보니 마르케스의 <꿈을 빌려드립니다>가 생각났다.


 마르케스의 소설 <꿈을 빌려드립니다>는 거창한 꿈(이상)이 아니라 우리의 무의식에 잔재되어 있는 꿈에 관한 이야기이다. 꿈은 예언력을 지닐 수도 있고 상징성을 띨 수도 있다. 물론 대부분의 꿈들은 그저 실제 생활과 아무런 상관이 없는 경우가 많다. 그렇다 하더라도 그저 '꿈 따위'로 치부하기에는 꿈의 영향력은 대단하다.

 꿈이 아무것도 아니라면 왜 많은 사람들이 어둠과 침묵 속에서 꿈이 스며든 자리에서 어떤 의미를 찾으려고 할까. 나 역시 꿈을 많이 꾸는 사람이지만... 또한 그 꿈이 대부분 실제 생활과 거의 아무런 관련이 없지만.. 가끔은 중요한 의미를 부여하고 싶을 때가 있다. 사람들을 그럴 때 평소와는 다른 일들을 한 번쯤 시도해보지 않던가. 외출을 삼간다든지, 동쪽으로 간다든지, 복권을 산다든지.

 아무도  꿈꾸지 않는 척박한 시대에 꿈을 꿔서 살아가는 사람이 있다면, 누구든 그를 다시 한번 쳐다보지 않을까. 그리고 그에게 무언가를 갈망하고 싶어 하지 않을까.

  <꿈을 빌려드립니다>의 시대적 배경은 세계대전 직후. 삶은 당연히 척박하고 사람들은 '꿈'이라는 단어조차 잊어버린 듯 살아간다. 하지만 누구든 불안한 미래가 궁금하지 않을까. 꿈을 꾸지 못하는 사람들은 대신 꿈꾸는 사람에게 꿈을 빌리기 시작한다.

 꿈꾸는 여인의 이름은 프라우 프리다. 콜롬비아 출신으로 오스트리아로 건너갔다가 예지력이 깃들어 있는 꿈을 꿀 수 있다는 이유로 어떤 가정에 일자리를 얻을 수 있었다. 여인은 그 가족에 관한 꿈을 꾸고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했다. 그리고 주변의 친한 사람들에게도 꿈을 들려주며 충고를 한다. '나'도 여인의 충고 한마디에 운명에 떠밀리듯 비엔나를 떠나버렸다. 그 뒤로 짧은 한 번의 만남.. 긴 세월이 흐른 뒤 두 번째 만남에서 '나'는 그녀의 무참하게 찢긴 시신과 만나게 된다. 뱀 모양의 반지와 뱀눈처럼 박혀 있는 에메랄드는 그녀에 대한 유일한 정보였다.

  타인의 꿈은 무수히 꾸어서 빌려주었지만 정작 자신의 꿈만큼은 빌리지 못하였다. 해일이 몰아쳐서 자신의 몸이 호텔 벽에 처박히고 갈기갈기 찢긴 채로 발견될 줄은 예언할 수 없었다. 책에서 여인이 꾸었던 유일한 꿈은 시인 파블로 네루다와 함께 꾸었던 꿈뿐이다. 파블로 네루다와 여인이 같은 꿈을 꾸었다고 하자 '나'는 보르헤스가 썼던 혹은 쓰려고 하는 '꿈'일 뿐이라고 한다. 만약 내가 당신의 꿈을 꾸고 당신의 그런 나의 꿈을 꾼다면, 그것은 누구의 꿈일까.
 정작 중요한 의미를 부여하려는 꿈은 이미 누군가가 꾸었던 꿈이고 우리는 그것을 모방하려고 하는 안일한 자세를 지니고 있을 뿐이다. 어찌 보면 여인의 꿈도 모방과 습관 사이를 오갔을지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이 '꿈'을 기다리는 것은 꿈이 주는 상징성이나 예언력보다는 누군가 나의 꿈을 함께 꾸어주기를 원하는 것이 아닐까.

 "꿈을 꾼다는 그 여인을 꿈꾸었네."라고 네루다가 말했다.

아내 마틸다는 네루다가 그 꿈 이야기를 해주길 원한다고 말했다.

"그녀가 나와 함께 꿈꾸고 있다는 꿈을 꾸었네."라고 그가 말했다.

"그건 보르헤스의 꿈인데요."라고 내가 네루다에게 말했다.

그는 실망한 듯이 잠시 나를 바라보았다.

"벌써 그런 걸 썼던가?"

"아직 안 썼더라도 언젠간 쓰겠지요. 그건 보르헤스 미로 중의 하나가 될 겁니다."      

                -가르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 <꿈을 빌려드립니다>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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