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 모임 직전, '맛있는 커피는 내가 사가지고 간다'는 약속을 지키기 위해 서둘러 카페로 갔다. 초로의 남자 사장님이 혼자 운영하고 있는 작은 카페에는 커피부터 아이스크림, 미숫가루, 쿠키를 거쳐 누룽지까지 메뉴가 다양했다. 카페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이나 머그컵의 색깔, 의자의 쿠션 같은 것들이 마음에 들지 않아서 평소에는 잘 가지 않던 곳이다. 무엇보다 사장님의 속도가 너무 느린 탓에 더욱 답답함을 느껴 가지 않았던 것 같다. 하지만 그날은 근처에 있는 프렌차이즈 카페의 대기줄이 너무 길었기 때문에 줄을 서지 않아도 되는 그 카페의 문을 열고 들어갔다.
내가 주문한 커피는 단순했다. 따뜻한 카페라떼 여섯 개. 사장님이 커피를 만드는 동안 나는 높은 의자에 앉아 휴대폰을 보거나 카페의 장식품 같은 것을 구경하고 있었다. 주방 쪽에서는 끓는 소리와 탕탕 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어두운 초록색 티셔츠를 입은 사장님의 등은 오랫동안 나를 향해 있었다. 주문한지 15분이 지나서 커피가 나왔다. 그런데 커피는 단 하나뿐이었다. 계산할 때 건넨 뒤 깜빡 잊고 돌려받지 않았던 신용카드는 아직 카드기에 꽂힌 채였다.
"카페라떼 여섯 개 시켰는데요."
"아까 하나라고 하지 않았어요?"
"아니에요. 여섯 개라고 말씀드렸어요."
"여기 카드에도 하나 가격만 찍혔는데..."
사장님은 카페라떼 여섯개를 하나로 잘못 들었던 것이다. 이쯤에서 나는 시간을 확인했다. 그리고 나머지 커피를 빨리 만들어달라고 다시 주문했다. 이번에는 계산서에 있는 수량과 금액까지 확인했다.
결국 그날 모임에 지각을 했다. 커피 때문에 늦었다고 하자 사람들은 커피를 만들어왔냐며 웃었다. 그래서 주문을 잘못 받을 뿐만 아니라 커피를 너무 늦게 만드는 카페에 대한 이야기를 꺼냈다. 일종의 험담을 하기 위한 마음이 컸다. 그런데 커피를 후후 불며 마시던 Y가 "나 그 카페 자주 가는데. 거기 사장님 너무 재미있지 않아요?" 라고 했다. 무슨 말인가 싶었는데 Y의 말에 의하면, 카페 사장님이 말귀가 어두워서 주문을 하면 자꾸 몇 번이고 반복해서 물어볼 뿐 아니라 친한 이웃이 놀러오면 인사를 나누다가 커피 만드는 일을 잊어버렸다가 아 깜빡했구나 하며 다시 주방으로 몸을 돌리고 누군가 또 나타나면 인사를 하다보니 당연히 커피가 늦게 나온다고 했다. 답답하지 않느냐는 말에 Y는 커피가 나오기까지 재미있게 볼 수 있는 일들이 많아서 자신은 오히려 즐거운 마음으로 사장님의 커피를 기다린다고 했다. Y의 마지막 말은 "다들 바쁘게 살아가서 늘시간이 부족한 것 같을 때 그 카페에 가면 오히려 시간이 많아지는 것 같아 마음이 편해져요." 였다. 내가 준비하고 있던 험담이 슬그머니 꼬리를 내리며 어색한 웃음 뒤로 숨어들던 순간이었다.
너그러운 사람이 되기에 나는 아직 멀었다. 나의 생활 중 일부분에는 너그러움이 묻어있을지 몰라도 전체적으로 볼 때 여전히 나는 옹졸한 사람에 가깝다. 나이를 먹고 순간순간 깨달아도 행동으로 옮기지 않으면 너그러움으로 넘어가는 길은 요원할 것이다. 단호할 때는 단호하게, 너그러울 때는 너그럽게. 올해도 어김없이, 나이를 더 먹기 전에 내 입술과 팔다리에 부여하고 싶은 결심들이다.
<주문을 틀리는 요리점>을 읽다가 주문을 틀리게 받았던 카페가 떠올랐다. 너그러움에 대해 일깨워준 공통점 때문이었다. "치매 환자이기 전에, 사람이잖아요."
방송국 PD로 일하던 오구니 시로 씨는 우연한 기회에 나고야에 있는 치매 간병 시설을 취재하게 된다.
원래 기획되어 있던 취재분의 촬영에 문제가 생겨서 급하게 취재대상을 찾던 중 누군가의 소개로 가게 된 곳이다.
오구니 시로씨는 나고야의 간병시설인 그룹 홈을 취재하면서 자신이 가지고 있던 '치매'와 실제 보는 '치매'의 다른 점을 느끼게 된다. 취재 전까지, 시로 씨의 머릿속에 있던 '치매'는 기억을 잃고 자꾸 집을 나가거나 폭언을 하고 환각증세가 나타나는 무섭고 슬픈 병이라는 생각과 함께 '위험한 사람들'이라는 인식이 있었다. 하지만 그룹 홈에서 취재를 하는 동안 치매의 다른 면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각자 맡은 일을 하고 함께 시장을 보러 나가는 일상적인 일들을 하는 어르신들의 모습은 평범했다. 그곳의 책임자인 와다 씨의 보이지 않은 노력이 큰 도움이 된 것은 사실이겠지만 주변에서도 흔쾌히 받아주었기 때문에 어르신들은 치매를 앓기 전과 변함없는 모습으로 살아갈 수 있었던 것.
그룹 홈의 책임자인 와다 씨. 그는 30년이 넘도록 간병 시설에서 일하고 있는 사람인데, 취재가 진행되는 동안 시로 씨에게 병 시설을 세우는 것이 얼마나 힘든지에 대해 이야기한다. 가장 큰 문제는 비용이 아니라, 사람들의 이해를 얻는 것이라고 한다. 그는 그때마다 정중하게 설명하고 이해를 구하기를 반복했다고 한다. 그런 시로 씨는 치매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사람에게 치매란 벌레가 달라있는 것일 뿐. 그 사람이 그 사람인 것은 변함이 없다. 거기에서 시작하라."
오구니 시로 씨는 그곳에서 어르신들이 직접 만든 요리를 강렬한 위화감과 함께 대접받았다고 한다. 분명 그날의 점심메뉴는 햄버그스테이크였는데, 식탁 위에는 물만두가 놓여졌다. 순간 놀랐지만, 자신이 '이거, 실수한 거죠?'라는 말을 꺼내면 그 말 한마디로 와다 씨와 어르신들이 그동안 싸하온 삶을 물거품으로 만들어버릴 것 같은 느낌이 들어 말을 삼켰다다. 그리고 그 순간 '주문을 틀리는 요리점'이라는 키워드가 생각났고, 그것은 5년 후인 2017년에 실질적으로 문을 열게 된다.
2012년 나고야의 그룹 홈에서 얻은 아이디어는, 2016년 11월부터 본격적으로 실행하게 되어, 2017년 6월 3일과 4일, 도쿄 시내에 있는 작은 레스토랑을 빌려 시험적으로 오픈한다.
시로 씨는 많은 회의를 거쳐, 실수를 일부러 내세우는 방식은 치매를 희화화시킬 수 있다는 우려 때문에 가장 중요한 원칙 두 가지를 내세운다.
첫째, 식당답게 음식의 질을 고집하기(멋있을 것, 맛있을 것)
둘째, 실수가 목적이 아니다. 일부러 실수를 하려고 해서는 안 된다.
'주문을 틀리는 요리점'에서 주문을 받는 직원은 모두 치매를 앓고 있는 어르신들이다. 그래서 주문한 음식과 다른 음식이 나올 때도 있고 주문을 반복해서 받거나 샐러드가 두 번 나가는데 스프는 안 나오기도 하고, 주문을 받으러 왔다는 사실조차 잊어버리는 경우도 많다. 그리고 심지어 주문을 틀리게 받는 할머니께서 그 사실을 잊어버린 채 레스토랑 이름을 보고는, '주문을 틀리다니 말도 안 되는 식당이네' 라며 껄껄 웃기도 한다.
모든게 뒤죽박죽인 엉터리 식당.
하지만 그곳의 손님들은 모두 즐거워하며 그런 실수를 너그럽게 바라본다.
평생 피아노를 배웠고 피아노 교실까지 운영했다는 미카와 씨의 아내가 56세에 청년성 치매를 앓게 된 대목이 특히 기억에 남는다. 평생 치던 피아노의 건반에서 음계를 찾을 수 없게 된 마카와 씨의 아내는 건반을 눌러 소리를 들으면 음을 짐작하고 피아노를 칠 수 있게 되었다. 그런 미카와 씨 부부가 '주문이 틀리는 요리점'에서 잦은 실수를 하며 우여곡절 끝에 연주를 마친다. 레스토랑에 있는 손님과 직원들은 큰 박수를 보고 어떤 이들의 눈은 붉게 젖어 있었다.
비효율적으로 일하지만 기다리고, 실수하지만 받아들이는 사이, 그곳에 있던 사람들과 '주문을 틀리는 요리점'을 알게 된 사람들 사이에서 관용이 생겨났다.
요리점을 이용한 손님들이 제출한 설문지에는,
"주문을 틀렸는데도 왠지 사랑스러워서 저절로 용서하는 마음이 생겼습니다."
"어르신들이 실수를 했을 때 혀를 내미는 모습이 너무 다양해서 우습고 재미있었습니다."
"요리가 잘못 나와서 너무 기뻤습니다."
"좀 더 실수가 나왔어도 괜찮았다고 생각합니다."
등의 응답이 있었다.
이 프로젝트를 기획한 시로 씨는 '비용기 가치로 바뀌는 순간'을 목격하게 된 것이다.
이런 요리점 하나가 생겼다고 해서, 초고령화 사회에 불어닥친 치매에 대한 획기적인 해결책이 되지는 않겠지만, 그곳에서 퍼져나가는 따뜻한 시선이 사회 전체를 따뜻하게 물들일 수 있다면. 그런 사람들의 시선과 사회적 관용이 널리 자리잡을 수 있다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치매 뿐 아니라 다른 병을 앓고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도 말이다.
이 책을 번역한 김윤희 번역가의 글도 마음에 와 닿아서 적어본다.
나는 현재 시내 대학병원에서 배선원으로 일하고 있다.
입원 환자들에게 하루 세 끼 식사를 운반하는 일이다 보니, 필연적으로 늘 환자와 마주하는 셈이다.
처음에는 '이분들처럼 아프지 않으니 감사하다, 다행이다'라는 생각을 했는데, 일을 하면 할수록 환자 특히 노인들을 보면 남의 일 같지가 않아 안타까운 마음이다.
언젠가는 우리 모두가 겪게 될 일이고 건강하게 세상과 작별을 고하면 좋겠지만, 그런 기대는 꿈에 가깝다. 몸을 운신할 수 없는 것도 고통이지만, 정신적으로 문제가 생기면 정작 본인이 아닌 사랑하는 가족과 주변 사람들이 힘들어진다는 비극이 기다린다.
....(중략)....
많은 이들이 '주문을 틀리는 요리점'에 와서 분위기를 즐기고 공감하는 동안 마음이 훈훈하고 여유로어지는 것을 느끼게 되었다고 한다. 그러다 보면 저자가 기대하는 새로운 가치관이 실제로 나타나게 되지 않을까. 크게 심각하거나 문제될 것 없는 실수는 가벼운 마음으로 수용하고 함께 즐기는 분위기. 그 정도의 문제와 갈등은 소통으로 충분히 해결할 수 있다는 긍정적 마인드. 그것이 개인적 가치관에서 이어져 사회적 가치관으로 자리 잡는 나라라면, 그야말로 강력한 힘을 갖게 될 것이다.
늙는 것이 두렵지 않은 나라, 병드는 것이 더 이상 불행하고 외롭지 않은 사회. 이 책을 읽으면서 살짝이나마 그 맛을 본 것 같다. '주문을 틀리는 요리점'의 그 현장감이 우리 삶 자체가 될 수 있기를, 관용과 이해와 소통의 공기가 곳곳에 흐를 수 있기를 바라고 고대하는 마음 간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