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밖에서 식사를 하는 일이 불안하고 불편해서 거의 대부분 집에서 하루 세끼를 만들어서 먹었다. 식탁에는 재료와 양념에 미묘한 변화만 있을 뿐 어제와 별반 차이가 없는 반찬들이 올랐다. 가끔 요리라고 부를 수 있는 음식이 식탁에 오르면 가족들은 기뻐했다. 하지만 그마저도 창의력 없이 반복적인 패턴으로 사흘을 건너뛰어 다시 식탁에 오르면 가족들의 반응은 다시 시들해졌다.
하루 세끼를 챙기는 일은 쉽지 않다. 더구나 솜씨도 창의력도 별로 없다면 매끼마다 질리지 않을 음식을 내놓기는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밥상에 대한 기억을 더듬어 어린 시절을 떠올려면 밑반찬이 큰 역할을 했던 것 같다. 김치 종류만 해도 배추김치 열무김치 파김치 것감차 석박지 오이지. 젓갈 종류도 명란젓 오징어젓 낙지젓 창란젓까지 있었고 계절별로 담근 장아찌도 찬장에 그득했다. 물론 나는 밑반찬을 별로 좋아하지 않아서 반찬투정을 했던 까다로운 입맛의 소유자였지만 지금은 그 모든 밑반찬이 간절하다. 어린시절 부엌 찬장과 냉장고에 있던 반찬을 몽땅 우리집 냉장고로 옮겨버리고 싶을 정도다. 그러다 문득 밑반찬이 많으면 밥상 차리는 고달픔이 사라질까는 생각을 해봤는데 그렇지도 않을 것 같다. 우리 가족은 밑반찬보다 즉석에서 뚝딱하는 음식을 더 좋아하니까.
'삼시세끼'를 보면 차승원도 아침을 먹으며 점심 걱정을 하고 점심을 먹으며 저녁 걱정을 한다. 하루 세끼를 먹어야 하는 인간의 운명이라니. 물론 불가피하거나 의도적으로 하루에 한 끼나 두 끼를 먹는 사람들도 있다. 하루 세끼를 먹기 시작한 역사도 길지 않다. 그럼에도 우리의 식사를 상투적으로 하루 세끼라고 명명한 이유는 다수의 사람들이 그런 방식으로 먹기 때문일 것이다.
지난주에는 가족 네 명이 모두 집에 있었다. 온라인 원격수업을 하는 아이들과 일주일 동안 재택근무를 하게 된 남편과 본래 재택근무를 하는 나까지. 아침 7시30분이 되면 식탁에 모여 아침을 먹었다. 그리고 각자 방과 거실, 부엌으로 흩어져 노트북과 태블릿으로 수업을 듣거나 일을 하고 점심이 되면 식탁에 모여 점심을 먹었다.
오후는 어떻게 지나갔는지 알 수 없게 빠르고 흐릿하게 지나갔고 해가 질 무렵이면 가족들은 다시 식탁에 모여 저녁을 먹었다. 끼니와 끼니 중간에는 간식도 먹었다. 움직임은 없고 하루 세끼에 간식까지 먹어서 다들 소화가 잘 되지 않았고 체중이 늘었다. 활동량이 극도로 부족한데도 배는 계속 고팠다. 일주일이 지난 지금, 그때 정말 배가 고팠었나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져보았다. 내 소소한 양심이 고여있는 우물에서 소리가 퍼져나왔다. 배는 안 고팠는데 입이 심심했다고. 그래서 특별히 맛있지 않는데도 계속 먹고 있었다고.
<먹는 인간>을 쓴 헨미 요의 입을 빌리자면, 나 역시 '오랫동안 포식에 익숙해져 버릇이 없어진 데다 무엇을 먹었는지 곧 잊어버리기 일쑤며 매사에 아무 감동도 받지 못한 채 축 늘어져 있는 내 혀와 위'를 나도 가지고 있었던 셈이다. 일본의 저널리스트이자 시인이자 소설가인 헨미 요는 오랜 포식에 길들여져 맛의 감동을 잃어버린 자신의 혀와 위를 '극한의 상황'에 데려가서 괴롭히고 싶다는 마음으로 '먹는 인간'을 만나기 위한 여행을 떠난다. 그렇게 그는 교도통신 외신부에 재직하고 있을 당시 2년 동안 세계 여러 지역을 여행하며 그곳의 사람들을 취재했던 여행기를 신문에 연재했다. 그리고 1994년 신문 연재를 묶어 <먹는 인간>을 출간했다.
먹는 행위를 둘러싼 인간의 천태만상을 보여주는 책.
'식과 생'을 통해 인간에 대해 묻고, 먹고 살기 위해 묻어버린 아픔과 역사를 끄집어내어 다시 묻고(질문하고), 그 질문을 꺼내고 공유하는 과정을 통해 다시금 먹는 인간의 고단한 운명과 고귀한 존엄을 깨우치게 되는 책을 읽으며 나는 슬픔을 느꼈다. 하루 세끼에 대한 고민의 흔적이 남아있는 밥상의 처음과 끝에는 '먹는 인간'의 극히 일부만 자리잡고 있다. 내가 차린 밥상을 벗어난 곳에서는 먹방프로그램에서는 하루에도 다 먹을 수 없을 정도의 음식을 한끼에 차려지고 요리사들의 신기에 가까운 요리가 선보이고 밥과 온갖 레시피의 향연이 펼쳐지고 있다. 그것 역시도 '먹는 인간'의 극히 일부일 뿐이다.
굵직하게 울리는 코란의 기도 소리가 스피커를 통해 거리로 흘러나온다. 고기를 먹는 아이들 등 뒤의 쓰레기 더미에는 또 다른 남자아이가 들개, 까마귀와 서로 으르렁대며 쓰레기를 뒤지고 있다. 음식을 남기는 것이 죄라면, 이 아이들이 그 죄를 씻고 있는 셈이다.
-헨미 요, <먹는 인간> 중
헨미 요가 처음 선택한 여행지는 방글라데시의 다카였다. 그는 저녁 식사를 할 곳을 찾으며 어슬렁거리다가 다카역 광장의 포장마차로 들어갔다. 커다란 양철 쟁반에 브리야니(볶음밥)과 밧(흰 밥)과 뼈에 붙은 닭고기와 양고기가 듬뿍 쌓여 있는 모습에 그는 식욕이 솟았다. 고기를 얹은 풍성한 밧을 단돈 5타카(92년 당시 75원 정도)에 먹는다는 사실에 기뻐하며 그는 손으로 밥을 집어 먹었다. 식은 밥이었지만 가격이 싸서 불평할 생각은 못했다. 씹을수록 단맛이 나는 밥을 먹으며 기분이 좋아진 그가 뼈에 붙은 고기를 입으로 가져가려고 할 때 누군가 "잠깐!" 이라고 소리쳤다. 곧 "그건 먹다 남은 음식이에요."라는 말이 이어졌다.
다카에는 부자들이 버린 음식을 파는 시장이 있다. 도매상과 소매상이 있으며 음식이 버려진 날짜, 즉 신선도에 따라 가격이 달라진다. 헨미 요는 자신에게 그러한 사실을 알려준 사람을 가이드 삼아 다카의 '음식 찌꺼기 리사이클'을 확인해보기로 한다. 이슬람교도가 결혼식을 많이 올리는 목요일과 금요일에 음식 찌꺼기가 출하되면 중개인이 도소매상인들에게 값을 붙여 넘긴다. 그러면 다카 역 앞, 패리 선착장을 비롯한 '4대 음식 찌꺼기 시장'이 펼쳐지는 것이다.
'달과 밧을 모든 사람에게'
밥과 국을 전국민에게 주겠다는 방글라데시의 표어. 지켜지지 못했기에 표어로서 다짐을 하는 것이리라. 그럼에도 빈민이 아닌 서민도 먹다 남은 음식인 '판타 밧'을 자주 먹는다고 한다.
방글라데시의 다카를 시작으로 헨미 요의 여행은 먹는 인간으로 살아가는 비애를 보여준다. 문명의 이기에 잠식당해 전통을 잃어버린 부족, 전쟁의 참혹한 기억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땅에서 눈물을 삼키는 마을, 굶주림으로 인해 서로에게 분노를 던지는 빈민과 난민, 총탄이 박힌 부엌과 방사능에 오염된 땅, 내전의 피가 말라붙지 않는 땅에서 먹고 살아가는 사람들을 만나 그들의 이야기를 적는다. 그의 취재는 사실을 기반으로 하고 있으면서도 시적이다. 그래서 사람들의 생 너머에 숨어있는 숙명의 비석을 엿볼 수 있도록 한다. 여러 나라를 돌아다닌 마지막에는 우리나라도 나온다. 현재의 굶주림이 아닌 과거의 굶주림, 역사의 비극에서 받은 씻을 수 없는 고통의 기억을 이야기하기 위함이었다. 김복선 할머니, 이용수 할머니, 문옥주 할머니. 헨미 요는 할머니들의 이야기 속에서 아픔과 추억 모두를 받아볼 수 있었다.
나는 그 주인에게서 기억을 나눠 받아먹었다.
잔류 일본 병사의 인육식 한국인 일본군 '위안부'의 가혹하고도 격렬한 음식과 삶이 바로 그런 경우다. 그 음식들은 그들의 기억에 의지할 수밖에 없었다. 그 기억을 더듬어 악몽과 환상을 이 입으로 씹어보고서야 비로소 나는 처절하고 깊디깊은 드라마의 한 단편을 알 수 있었다. 인간의 고요한 기억 속 우물에 돌멩이라도 던지듯, 두 번 다시 되풀이할 수 없는 죄 많은 행위였다.
-헨미 요, <먹는 인간> 중
하루 세끼 밥상을 차리는 어려움에서 어떤 형태로든 끼니 걱정에서 벗어날 수 없는 인간의 숙명까지. 멀리 다녀온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아직도 내가 차리는 밥상의 처음과 끝은 '먹는 인간'의 극히 일부에 지나지 않지만 헨미 요가 보여준여정은 세상 곳곳에서 계속되고 있다는 사실을 또다시 깨달을 수 있었다. 이 책은 지금으로부터 16년 전인 1994년에 출간되었지만 헨미 요의 시선과 혀 끝에서 만난 세상은 그다지 좋은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는 것 같지는 않다. 그가 적은 마지막 문장을 옮기며 하루 세끼 중 마지막 끼니를 차리기 위해 일어서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