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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페이지 May 30. 2020

무인도에 가져갈 책 세 권

무인도의 이상적인 도서관/프랑스와 아르마네

 세로로 가로로 책 위로 책 아래로 아무렇게나 꽂혀있는 책 때문에 책장이 지저분해보였다. 그래서 '이번 기회'에 꼭 정리를 하고 말겠다고  결심했다. 넉달  겨울에..


 지금은 오월 마지막 금요일 밤. 여전히 내 기억력처럼 뒤죽박죽인 책장을 다소 심란한 얼굴로 살펴보았다. 자주 읽어 두꺼워진 책 사놓고 절반만 읽은 책 사놓기만 하고 안 읽은 책 오랫동안 방치된 책 도서관에서 빌린 책 존재 자체도 몰랐던 책. 취향을 알 수 없는 책들이 쌓여가는 속에서 나는 버릴 책을 골라내야 했다. 그런 핑계로 오랜만에 책을 자세히 살펴보게 되었다. 그리고 아직 한 권도 골라내지 못했다. 손에 닿는 모든 책마다 갑자기 너무 좋아졌다. 내가 좋아하는 책, 좋아할 책이 이렇게 많았나 싶다.

 그럼에도 인생의 책이 뭐냐는 질문에는 답을 하지 못하고 있다.

 
"당신이 무인도에 갇히게 된다면 가져갈 책 세 권은 무엇입니까?"
 [무인도의 이상적 도서관]은 그런 질문을 던지며
무인도에 가져갈 세 권의 책에 대해 유명한 작가 196명의 대답을 실었다.

 작가마다 너무 다른 방식으로 답하고 있어서 흥미롭다. 세상 진지하게 답하는 작가가 있고 농담식으로 가볍게 답하는 작가도 있다. 짧게 목록만 답하는 작가도 길고 장황하게 설명하는 작가도 있다.

어떤 작가의 어떤 답이 가장 와닿는지 비교하며 읽어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읽다보니 [안나카레리나] [카라마조프의 형제들][수상록]을 언급하는 작가들이 꽤 있으며, 보르헤스에 대한 언급도 보인다.

'내가 무인도에 가져갈 세 권은 책은 무엇일까?'


아직 안 읽은 책 중에서 고르고 싶은데, 그러려면 엄청나게 오랜 시간을 고민해도 불가능할 것 같다.
어쨌든 책을 고르는 것은 나의 몫. 좋은 책에 대한 조언을 듣는 것도 나의 몫이다.


무인도에 가져갈 책에 대한 작가들의 대답에서 작가의 성격과 유머가 보이는 듯 하다. 그들의 목록을 살펴보자면,

-파크리트 쥐스킨트-
우선 '무인도에서 거주하는 법과 요리하는 법'같은 실용적인 안내서를 가져가겠다. 다음은 몽테뉴의 [수상록], 마지막으로 에커만의 [괴테와의 대화]를 택하겠다. 첫 번째 책은 내가 육체적으로 살아남아 다른 두 권에 빠져들 수 있도록 해줄 것이다. 그 두 권은 지고한 지헤로 내 슬픈 운명을 달래주고, 우스운 면으로 (각자 나름의 방식대로)내게 미소를 돌려줄 것이다. (2015년 5월)


-밀란 쿤데라-
내가 무인도에서 유배생활을 해야 한다면 책을 가져가지 않을 것이다. 무인도는 오히려 책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기회일 것이기 때문이다. 진지하게 대답해야 한다면, 아주 우스운 책 세 권, 문학을 통틀어 가장 유쾌한 책들을 가져가겠다. 라블레 전집, 하세크의 [용감한 병사 슈베이크], 카프카의 첫 소설 [아메리카]. 카프카는 보통 난해하고 음울한 작가로 평가되지만, 그에겐 광기 어린 유머가 있다. (2014년 10월)


-오르한 파묵-
위대한 걸작 한 권을 가져가겠다. [카라마조프의 형제들]이나 [안나 카레리나]. 그리고 [브리태니커 백과사전]. 절대로 읽을거리가 부족하지 않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고전 작품 하나, 이를테면 내가 한 번도 완독한 적 없는 [천일야화]나, 아니면 보르헤스가 선택한 책이기도 하고 얼마 전 내 딸에게 열여덟 살이 된 기념으로 선물한 버트런드 러셀의 [서양철학사. 시대에 뒤떨어져 보일지도 모르지만, 마치 소설처럼 읽히는 책이다. (2009년 10월)


-이언 매큐언-
조이스의 [율리시스]. 매일에 대한 환상적인 축하다. [소네트]를 포함한 세익스피어 전집. 인생 전부를 담고 있으므로. 그리고 오든의 시나 존 업다이크의 '토끼'4부작.


-오스터-
무지무지 두꺼운 책이어야 한다! 그러므로 셰익스피어 전집, [돈키호테], 몽테뉴의 [수상록]을 가져가겠다. 저런, 셋 다 동시대인 아닌가! 좋은 시절이었다!(2007년 11월)


-루이스 세풀베다-
무인도에 가져갈 세 권의 책:
1.어니스트 헤밍웨의 [강을 건너 숲 속으로]
2.아민 말루프의 [아프리카인 레온]
3. 알바로 무티스의 [부정기 화물선의 마지막 계단]


-움베르트 에코-

 로빈슨 크루소만큼 오래 있어야 한다면 우리집 서재에 있는 책 5만권이 필요할터다. 딱 잘라서, 전화번호부로 하겠다. 그 많은 이름들을 보며 무한한 이야기들을 쓸 수 있을 테니까,


 지혜를 들려줄 책, 우스운 책, 환상성을 안겨줄 책, 지식의 총체인 책, 무지 두꺼운 책  등. 무인도에 가져갈 책 목록은  각자 다르다. 그러면서도 무인도라는 고립된 공간에서 지치지 않고 포기하지  않을 뿐더러 권태롭지 않을 책을 골랐다는 생각이 든다. '무인도의 고립'과도 비슷한 감정을 느낄 때 나는 어떤 책을 고르게 될까.


 그나저나 움베르트 에코가 말하는 책은 어디에서 구할 수 있을지 궁금해졌다. 예전에는 집마다 있었는데, 요즘도 전화번호부가 있나? 구할 수 있다면 책장에 꽂아두고 싶다. 에코가 말했던 것처럼 많은 이야기가 들어있을 테니니까.

 결국 오늘도 책장 정리는 시작도 못해보고 끝을 맺었다. 전화번호부를 구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엉뚱한 생각만 더해졌을 뿐 책장은 여전히 뒤죽박죽이다. 책장 정리를 다시 시작해서 마무리를 제대로 할 때가 되면 무인도에 가져갈 책 세권의 목록도 정할 수 있게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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