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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페이지 May 16. 2020

커피를 끓이는 방식

배수아 <밀레나, 밀레나, 황홀한>

  아침에 눈을 뜨면 커피를 끓이는 것부터 시작한다. 빈 속에 커피를 마시면 속이 쓰리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쉽게 고칠 수 없는 습관이다. 진한 커피가 내 주변의 작은 공간을 채워갈 때야 비로소 잠이 조금씩 사라진다. 


 내가 커피를 만드는 방식은 간단하다. 모카포트를 가스불에 올려 끓이거나 핸드드립으로 천천히 내리거나 믹스커피를 재빨리 섞는 것이다. 컨디션에 따라 그날의 커피는 달라진다. 머릿속이 복잡할 때는 핸드드립으로 내린 연한 커피, 잠이 쉽게 사라지지 않을 때는 모카포트로 뽑은 에스프레소, 허기가 질 때는 믹스커피. 인터넷에서 저렴하게 샀던 에스프레소 머신으로 커피를 만들었던 적도 있다. 하지만 제대로 세척이 되지 않았는지 아니면 작동방법이 잘못되었는지 머신은 너무 일찍 멈춰버렸다. 그 뒤로 나는 앞서 언급한 세 가지 방식으로 커피를 끓여 마신다.

 

 험윤은 나와 전혀 닮지 않은 방식으로 커피를 끓인다. '극도로 곱게 간' 커피가루에 뜨거운 물을 부어서 오 분 정도 기다렸다가 마신다.  오 분은 커피가루가 컵 바닥에 가라앉기를 기다리는 시간이다. 그럼에도 입속에 커피입자는 들어올 수 밖에 없다. 

 험윤처럼 커피를 마신 적이 있었다. 깜빡하고 드리퍼에 여과지를 올리지 않고 커피피가루를 넣고 뜨거운 물을 부었다. 물을 다 부은 다음에야 뭔가 잘못되었다는 걸 알았다. 커피가루가 떠다니는 잔을 멍하니 보며 기다렸다. 가루가 가라앉기를. 그리고 험윤처럼 오 분 정도 있다가 커피를 마셨다. 쓰고 거친 맛이었다. 


  배수아의 <밀레나, 밀레나, 황홀한>은 험윤의 하루를 담은 짧은 소설이다. 

험윤이 아침에 일어나 커피를 만드는 장면으로 시작해 밤의 거울이 그를 지켜보는 장면으로 끝을 맺는다. 그의 하루를 따라가다보면 그가 하루에 어떤 종류의 커피를 얼마나 마시고 어떤 종류의 음식을 먹고 어떤 종류의 옷을 입고 어떤 종류의 일을 하는지 알 수 있다. 그밖에 무엇이 더 있을까에 대한 생각은 동시에 그속에서 이야기하지 않은 것들은 무엇일까에 대한 의문으로 이어진다. 소설의 줄거리는 간단하다. 독립영화 감독인 험윤이 아침에 커피를 끓여 마시고 아침식사를 하고 산책로에서 조깅을 하고 욕조에서 책을 읽고 <밀레나에게 보내는 편지>라는 책을 발견하고 면도를 하고 검은 옷을 입고 아무와도 마주치지 않은 채 아파트를 나와서 자신의 독립영화 기획서를 채택한 문화재단에 가서 계약을 맺고 카페에 가서 커피를 마시고 흑백영화를 상영하는 소극장에서 영화를 보고 문화재단 사무실에서 만난 여비서와 만두를 먹고 다시 자신의 아파트로 돌아와 엘리베이터에서 세 조각으로 금이 간 거울 앞에 서서 자신의 얼굴을 보다가 거울 속 자신의 뒤편으로 걸어오는 붉은 코트 입은 사람과 마주치고 험윤은 집 현관문에 밀어넣어진 쪽지를 읽고 다시 집에서 나와 거울 앞에서 잠시 멈추었다가 붉은 코트 입은 사람이 들어갔던 낭하 끝에 있는 마지막 문 앞에 서서 벨을 누르고 누군가 열어준 문으로 들어가고 그 모든 것을 깨진 거울이 모두 지켜보고 있다는 내용이다. 


  내가 읽고 있는 책표지를 보더니 누군가 줄거리를 물어보길래 앞서 언급한 줄거리와 똑같이 말해주었다. 그러자 "무슨 이야기가 그래. 사건도 없고 인물도 은둔형 외톨이같고. 재미없겠다." 는 대답이 돌아왔다. 


 맞는 말이다. 줄거리로 치면 재미가 없다. 더구나 소설의 내용을 전하는 나의 이야기 방식은 더욱 재미가 없다. 줄거리로 다 말할 수 없는 소설일 경우에는 내용을 전하기가 어렵다. 배수아의 소설에는 그런 구석이 많다. 예전에 <훌> <일요일 스키야끼 식당> 이라는 소설에서도 비슷했다. 나는 굉장히 재미있게 읽었는데 막상 내용을 전하려고 할 때는 어떻게 해야할지 감이 오지 않았다. 최근작 <뱀과 물>을 읽은 다음 전하려 할 때도 그런 막막함은 되풀이되었다. 배수아의 소설은 특별한 사건이 없고 인물이 어떤 목적으로 행동하고 있는지 명확하지 않은 경우가 많기 때문에 문장을 직접 읽지 않으면 거의 전부라고 해도 좋을 부분을 놓칠 수 밖에 없다. 


 예를 들어, 소설 속 다음과 같은 문장들을 줄거리에 어떻게 포함시켜 전달할 것인가.


 "시차를 두고 생겨난 똑같은 모양의 낭하가 미로처럼 복잡하게 연결되어 있으므로 잘못하면 건물 안에서 길을 잃을 수도 있다. 그는 건물을 완전히 빠져나오기 전, 문득 습관처럼 뒤를 한 번 돌아본다. 어둑한 낭하의 창들은 그와 시선이 마주치는 순간, 모두 예외 없이 흐릿한 전등 빛 아래서 비밀의 눈꺼풀을 내리깐다."

 "원래 의미의 시간은 나에게 처음부터 부여되지 않았어요. 내 시간은 그냥 밤뿐이니깡. 바로 지금처럼요. 오래오래 계속되는 밤. 영원히 끝나지 않는 밤. 내 시간은 보이지 않고, 불분명하고, 흐릿할 뿐. 가만히 있으면 나는 밤 속에서 연기처럼 흩어지고 점점 엷어지다가, 아무도 모르게 완전히 사라질 거예요. 아무도 나에 관해서 알지 못하는 채로,"

 "검은 밤의 깊은 곳 아득한 밑바닥에서 그녀의 흰 얼굴이 험윤을 올려다본다. 그 얼굴윤을 응시하면서 점점 빠르게 가라앉는다. 어둠 속에서 보이지 않는 흰 점으로 빠르게 사라져 버린다." 

"방충망에 달라붙은 채 전 생애를 보내는, 투명한 날개의 회색 나방이 운다. 부유하는 꿈들이 운다. 그 모든 것들의 울음소리가 낭하에 가득 울려 퍼진다. 험윤은 잠시 휘청거리며 서둘러 낭하를 지나간다. 그는 아무와도 마주치지 않으며, 아무도 그와 마주치지 않는다."

 "금이 간 자신의 얼굴을 보지 않기 위해서 험윤은 눈을 감는다. 거울 속 그의 뒤편에서 한 사람이 걸어온다. 붉은 코트를 입고 있는 그 사람은 그의 뒤편을 지나가면서 거울 속 눈을 감은 그의 얼굴을 잠시 바라본다. 삶에는 일순간이 있다. 그 사람의 금이 간 얼굴이 눈을 감은 험윤의 금 간 얼굴을 응시한다. 일순간이 지난다. 그리고 그 사람은 등을 보이고 돌아선다. 그 사람은 거울 속에서 멀어진다. 그 사람은 거울을 마주하고 있는 낭하의 가장 끝까지 걸어간다. 그리고 가장 마지막에 있는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간다. 그 사람은 집 안으로 사라진다."


 독립영화 감독 험윤은 자신이 구축한 세계 안에서 오랫동안 살아온 사람이다. 오직 혼자 작업을 할 수 있다는 이유로 대학에 좋은 자리를 제안받았음에도 거절할 정도로 혼자 있는 것을 원한다. 아침이면 극도로 곱게 갈린 커피가루에 뜨거운 물을 부어 커피를 마시고 귀리를 쪄서 건조시킨 스위스산 뮤슬리와 요구르트로 아침을 먹고 오랫동안 조깅을 하고 욕조에 몸을 담그며 책을 읽는다. 외출할 때는 각 나라를 여행 다닐 때는 늘 검정색 옷만 입는다. 그의 옷들은 모두 여행을 갔던 도시의 중앙박물관의 숍에서 파는 티셔츠이다. 그는 늘 혼자 다닌다. 산책로에서 마주치는 사람도 그저 스쳐지나갈 뿐이다. 그가 자신이 살고 있는 아파트에서 나와 기나긴 회랑을 걷고 엘리베이터를 타는 사이에 마주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다만 <밀레나, 밀레나, 황홀한>에 나오는 험윤의 하루는 그가 정해놓았던 날들과 조금씩 다르다. 욕조에서 나온 그가 마주한 거울 속에서 점점 늙어가는 자신의 낯선 모습을 '이 세상의 모든 변신과 낯섦이 사실은 문학이 주장하는 만큼 충격적이지는 않다는 것을 생애 처음으로 피부 깊숙이 실감하면서' 무표정하게 면도를 한다. '생애 처음 피부 깊숙이'라는 표현에서 변하지 않았다고 생각했던 험윤의 세계가 조금씩 벗겨지고 있음을 볼 수 있다. 늘 혼자인 험윤은 여비서와 오랜 대화를 나누기도 한다. 그런데 어쩌면 여비서는 실제 인물이 아니라 험윤 자신의 다른 모습일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자신이 싫어할 만한 말을 쏟아내는 여비서에게 화를 내는 험윤. 한 사람의 내면에는 모순되는 부분들이 있고 때로 그것들은 충돌하며 파열음을 낸다. 험윤의 하루에 등장했던 의외의 인물들은 (금이 간 거울에 비친 험윤 자신의 모습이나 그 뒤로 지나간 빨간 코트의 사람) 모두 험윤의 내면에서 살아가고 있던 자신의 또다른 모습일 것 같다. 험윤은 재단에서 지원받기로 한 시나리오가 아직 완성된 것이 아니라는 말을 했다. 소설의 마지막에는 금이 간 거울 속에서 눈 감은 자신을 응시했던 빨간 코트 입은 사람이 들어간 곳의 문을 두드리는 험윤. 그 문은 험윤이 아직 열려고 시도하지 않았으며 열려 있었으나 자신이 닫아버린 또다른 세계의 문으로 볼 수도 있다. 


 <밀레나, 밀레나, 황홀한>은 경기문화재단 전문예술창작지원사업 선정작 시리즈 중 하나로 굉장히 짧은 소설로 순식간에 읽을 수 있는 분량이다. 하지만 나는 도저히 빨리 읽을 수 없어서 천천히 읽었다. 험윤이 커피를 마시는 속도처럼 아주 천천히 읽으며 아침을 시작했다. 다만 그의 방식이 아닌 내 방식대로 커피를 끓여 마시면서.

 

 험윤은 아침에 일어나서 가장 먼저 커피를 만든다.

 그가 커피를 만드는 방식은 매우 간단하다. 모든 종류의 커피머신을 싫어하는 그는 극도로 곱게 간 커피 가루를 스푼 가득히 세 번 커다란 잔에 담고 가스불로 펄펄 끓인 뜨거운 물을 조심스럽게 붓는다. 가루가 대부분 잔 바닥에 가라앉을 때까지 오 분 정도 기다린다. 그리고 두어 모금 정도 마신다. 커피는 충분히 진하지만 그 사이 식어 버렸으므로 아주 뜨겁지는 않다. 당연하게도 항상 약간의 커피 입자가 입속으로 흘러들어 온다. 입안에 미세한 깔깔함이 항상 남아있다. 혐윤은 잔을 양손으로 감싸 쥐고 가루가 가라앉기를 헛되이 기다린다. 하지만 검은 진흙처럼 끈끈하고 고운 커피 입자는 완전히 가라앉는 법이 없다. 충분히 무겁지 않은 미세한 입자들 일부는 잔 전체를 부유할 수밖에 없는 운명이다. 다시 한 모금 커피를 마신 그는 문득 생각난 듯이 줄어든 만큼의 뜨거운 물을 더 붓는다. 험윤은 느리게, 아주 느리게 커피를 마시며 하루를 시작하는 것을 즐긴다.

                                                            -배수아 <밀레나, 밀레나, 황홀한>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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