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페이지 May 31. 2020

공터

 그곳은 오랫동안 공터였다.

여러 갈래로 뻗친 나뭇가지가 서로 엉겨 붙어 어디서부터 어디까지가 하나의 나무에 속하는지 가늠하기 어려웠고 흙에서 태어난 뒤 한 번도 상처입지 않은 풀은 무릎을 넘어 거의 허리춤까지 푸르게 뻗어올랐다.

바람이 불 때마다 나무가 흔들리고 풀이 마찰하는 소리가 길게 들렸다.

가끔 드나드는 청설모나 고양이를 빼고는 나무와 풀이 전부였던 공터.


 아깝게 왜 비워두냐 뭐라도 지어야지. 세상에 쓸모가 있어야지.

사람들이 지나갈 때마다 공터에 던지던 말.


 어느 날 전기톱과 낫을 든 사람들이 공터에 들어가 나뭇가지를 자르고 풀을 베었다. 그리고 공터에 출입하지 못하도록 그물망을 둘렀다.

 무성했던 나무는 앙상해졌고 풀피 냄새를 풍기며 쓰러진 풀은  발등을 덮지도 못할 만큼 줄어들었다. 바람이 불면 공터에서는 과거의 환영처럼 희미한 소리가 짧게 들렸다 사라졌다.


 이제 뭐라도 짓겠지. 쓸모 있어지겠다.

기대에 찬 사람들의 말이 자주 들렸다.


 몇 차례 공사가 무산된 공터에는 아무것도 지어지지 않았다.

공터는 더 이상 공터가 아닌 것이 되었다.

나무와 풀이 잘린 그곳에는 언젠가부터 쓰레기가 쌓였다.

공터를 둘러싼 그물망에 누군가 뚫어놓은 구멍 사이로 검은 비닐봉지, 두꺼운 외투, 보풀투성이 이불, 커다란 곰인형이 버려졌다.


공터 때문에 동네가 더 지저분해졌네.

쓸모없이 왜 이곳에 공터가 있어가지고.


사람들의 성난 목소리가 쓰레기와 함께 쌓여갈 때

공터는 가장자리부터 허물어졌다. 세상 가장 약한 부분이 그러하듯.

작가의 이전글 영화 <기생충> - 햇빛을 잊어버리지 않도록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