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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신드롬 15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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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서휘 Oct 19. 2024

[연재소설] 15. 신드롬

1년 후.


동엽은 감았던 눈을 떴다.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다리 사이로 하얀 변기가 보이고, 낯익은 화장실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문을 활짝 열어젖히며 인사했다.


“저 왔어요!”


“왔어? 빨리 와. 이제 시작한다.”


손에 팝콘을 든 송이가 소파로 걸어가며 말했다.


새로 산 갈색 가죽 소파 주위로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소파에는 지후와 영선이 나란히 앉아 있고, 남우와 연지는 소파 다리 부분에 등을 기대고 앉아 있었다. 송이가 지후 옆에 앉자 자리가 꽉 찼다. 동엽은 송이가 새로 사준 자신의 컴퓨터 의자를 끌고 와 옆에 앉았다.


사람들은 집중한 눈으로 텔레비전을 봤다. 급하게 구매한 55인치 텔레비전 화면에는 한국 시리즈 경기가 틀어져 있었다. TQ드래곤스와 HT플라이의 1차전 경기였다. 출전 선수 명단에 임승우의 이름이 올라와 있었다.


“근데 너 왜 화장실로 왔어? 입구에 아직도 사람이 있어?”

송이가 팝콘을 씹으며 물었다.


“네. 기자들은 없는 것 같은데 고프로 들고 서성이는 인간들이 몇 있네요.”

동엽이 투덜댔다.


작년 가을, 딜레마에서 비밀리에 진행된 목숨 거래 현장이 SNS에 올라왔다. 파란 조명 아래 도미노처럼 늘어선 침대와 똑같은 복장으로 누워 있는 사람들의 모습은 세상의 관심을 끌기에 충분했다. 


이 소식은 입소문을 타고 금세 퍼져나갔다. 조회수를 노린 몇몇 유튜버들은 자극적인 썸네일과 제목으로 이 일에 관련된 영상을 찍어 올렸다. 한발 늦게 뉴스에서도 딜레마의 불법 목숨 거래 문제를 다루기 시작했다.


들썩인 건 인터넷 세상뿐만이 아니었다. 이모탈 호텔 앞에도 사람들이 바글거렸다. 기자들, 유튜버뿐만 아니라 호기심 가득한 일반인들도 모여들었다. 호텔 영업은 계속됐다. VIP층은 일반 고객들에게도 공개되었다. 평수도 넓고 시설도 좋아 가격이 비쌌음에도 연일 만실이었다. VIP룸 리뷰 영상이 인기 급상승 동영상에 뜬 덕이었다. 


영상을 올린 건 몇몇 목숨 계약자들이었다. 목숨을 주입하는 동안 VIP룸 후기 영상을 찍어 SNS에 올린 것이다. 거기에 인플루언서와 유튜버가 가세하면서 VIP층은 이전보다 훨씬 더 많은 손님이 찾게 됐다.


호텔 25층부터 27층은 딜레마라는 이름을 떼고 헬씨나라로 개명 후 영업을 이어나갔다. 여전히 건강식품과 의료 기기를 판매했다. 28층부터는 출입이 금지됐다. 개미처럼 득실거렸던 정장 입은 사람들이 다 어디로 갔는지는 알 길이 없었다.


넉 달이 지나자 ‘딜레마 사태’라고 불린 목숨 거래 사건은 잠잠해졌다. 유튜버들도 단물을 다 빨아먹은 모양이었다. 그때 갑자기 조용했던 신드롬 사무실 앞이 시끌시끌하기 시작했다. 어디서 유출되었는지, 딜레마의 불법 행위를 파헤친 곳이 신드롬이라는 조그만 단체였다는 사실이 밝혀진 것이다. 


촬영차와 기자들, 돈 냄새를 맡은 유튜버와 구경 나온 동네 사람들까지 좁은 거리가 북적거렸다. 태양슈퍼의 주인아주머니는 잦은 인터뷰에 귀찮아하면서도 날로 화장술이 늘어갔다.




한국 시리즈 1차전은 TQ드래곤스가 승리를 가져갔다. 9회 말, 4대 3 스코어에서 삼진을 잡으며 경기를 마쳤다. 보호구를 벗어던지고 투수에게 달려가는 승우의 얼굴이 화면에 잡혔다. 기쁨을 포효하고 있었다. 저렇게 웃을 줄도 아는 사람이구나, 송이는 작게 감탄하며 미소 지었다.


“아, 쫄깃했다.”


남우가 기지개를 켰다. 다른 사람들도 응원하느라 잔뜩 졸였던 마음을 내려놓고 이제야 웃기 시작했다.


영선과 남우, 연지는 모레 저녁에 모이기로 약속하고 집으로 돌아갔다. 월요일 경기는 저녁 6시 30분에 시작이었다.


“퇴근하고 보면 되겠다.”


송이가 말하자, 동엽이 물었다.


“야근 수당 주나요? 아니면 출근을 늦게 할까요?”

“이동엽 사원. 늦지 말고 아홉 시까지 오세요.”

“비영리단체일 때가 좋았네요.”


동엽이 입을 비죽 내밀었다.


송이는 올해 초 사업자 등록을 냈다. 회사명은 신드롬 그대로였다. 업종을 무엇으로 할지는 잠시 고민했다. 사회복지 서비스로 하려다가 분류되지 않은 기타 개인 서비스업으로 정했다. 하루 8시간 근무는 똑같았다. 하지만 중견 기업 수준의 연봉을 제공하기로 했다. 대표는 송이, 사원은 지후와 동엽뿐이었다. 지후에게는 대리, 동엽에게는 주임이라는 직급을 주었다.


계약서를 새로 쓰면서 동엽이 수상쩍다는 듯이 물었다.


“대체 돈이 어디서 나오는 거예요?”


지후가 동엽의 귀에 대고 속삭였다.


“저도 이번에 알았는데요, 송이 누나가 특허 낸 기술이 꽤 많아요. 로열티가 장난 아니더라구요.”


동엽은 그제야 그간 송이의 씀씀이가 이해됐다. 감탄과 존경의 눈빛으로 컴퓨터를 하는 송이를 바라봤다.

딜레마에서 사용한 ‘목숨 추출 및 주입에 관한 기술’도 송이의 이름으로 특허를 냈다. 경수를 면회하러 갔을 때 송이가 받아왔다. 악용하지 못하도록 기술을 묶어두기 위함이었다.


경수는 징역 1년 형을 받았다. 죄목은 인신매매였다. 목숨을 매매한 것이 인신매매에 해당한다고 법원은 해석했다. 계약자들이 매매에 동의한 점, 외관상 아무도 상해를 입지 않은 점이 감형의 주요 원인이었다.


하지만 여론은 경수의 편이었다. 계약자들이 이모탈 호텔에서 멀쩡하게 걸어 나오는 장면이 뉴스에 보도되면서 급격하게 여론이 악화된 것이다. 돈을 벌기 위해 자발적으로 목숨을 팔아 놓고는 피해자인 척한다는 비난이 곳곳에서 들렸다. 오히려 돈을 지불하고도 목숨을 받지 못한 VIP들을 동정하는 사람도 있었다.


하지만 경수는 항소하지 않았다. 송이가 찾아갔을 때 그 이유를 물었다. 


죄수복을 입은 경수는 소탈하게 웃으며 교도소가 몸은 불편해도 마음은 편하다고 말했다. 하연이를 살리겠다는 강박 때문에 늘 무언가에 쫓기듯이 산 모양이었다. 절대 풀 수 없는 문제를 받은 느낌이라고 표현한 경수는 그 문제 때문에 머리가 터질 것 같고 잠도 안 오고 밥도 안 먹히는데 끊을 수도 없고 계속 들여다보게 되는 거지 같은 굴레에 갇혀 있었다고, 누가 억지로라도 빼앗지 않았다면 미쳐버렸을 수도 있었다고 말했다. 그래서 송이가 그 문제를 빼앗아 주기로 했다. 


특허를 송이의 이름으로 내게 된 이유였다.


면회 시간을 조금 남기고 일어난 송이는 문득 묻고 싶은 것이 생겼다. 의자에 궁둥이를 다시 붙이고 경수에게 물었다. 파란색 물약을 먹고 무엇을 보았냐고. 경수는 엷은 미소를 띠며 말했다.


“연구 자료를 들고 너한테 찾아갔던 날이 보였어. 당시엔 그게 그렇게 큰 행복이라고 생각하지 못했는데 지나고 나니까 그때가 가장 행복했나 봐.”


송이도 잠시 그때를 떠올려 봤다. 경수처럼 웃음이 지어졌다.




동엽도 집에 가고, 지후도 제 방에 들어갔다. 송이는 혼자 컴퓨터를 했다.


유튜브에 ‘목숨 거래’,‘딜레마 사태’ 같은 키워드를 치고 뜨는 영상을 하나씩 둘러봤다. 1년 전과 비교해서 색다른 내용은 없었다. 영상에 달린 댓글을 읽었다.


‘신드롬 때문에 돈 나올 창구가 막혔다.’

‘나는 1+1으로 팔 수도 있다.’

‘이미 망한 인생 덤핑 판매하겠다.’

‘나도 팔고 싶다. 누가 다시 안 만들어 주냐?’


마치 제 목숨에 가격이 매겨져 있는 것처럼 구는 사람이 많았다. 왜 합법화를 막았냐고 맹렬하게 비난하는 사람도 있었다. 그 화살은 신드롬을 향하고 있었다. 딜레마 사태가 터진 작년까지는 목숨을 사고파는 문제에 대해 그래도 열띤 찬반 토론을 벌였었다. 하지만 이제는 해도 된다는 쪽으로 많이 기운 듯한 느낌이었다.


댓글을 둘러보던 송이는 가슴이 꽉 조이는 느낌을 받았다. 괜한 일을 한 건 아닌지 의문이 들기 시작했다. 그러던 중에 눈길이 가는 댓글이 있었다.


‘정말 소중한 시간이 찾아왔는데 다 팔아버렸으면 어떻게 해? 돌이킬 수 없잖아. 생각만 해도 아찔하다.’

‘목숨이 늘어나면 덕질할 시간이 더 늘어나서 좋긴 하겠다ㅋㅋ’ 

‘우리 부모님한테 물어봤는데 나한테는 목숨을 죄다 줄 수도 있다고 하심. 감동.’


이 사건을 계기로 사람들이 자신의 삶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경수가 그렇게 꿈꾸던 일이었다.


송이는 어지러운 생각을 털어내듯 후, 하고 숨을 내뱉었다. 마음을 다잡고 모니터를 바라봤다. 

그리고 생각했다.


민들레 씨는 뿌려졌다. 

그 씨앗이 어떻게 정착할지는 아무도 모른다. 하지만 분명 어딘가에서 꽃을 피울 것이다.

신드롬은 이제 막 시작된 것이다.     


-끝 -



표지 Image by Lorraine Cormier  from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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