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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서휘 Sep 18. 2024

연재소설_7화 너나 잘해. 난 다 생각이 있으니까.

“야, 내가 영화에서 봤는데 말이야……”


영이는 십 분째 혼자 떠드는 중이다. 민준의 정체를 알고 나더니 하교할 때마다 질문을 쏟아낸다. 민준이 할 수 있는 건 기계적인 대답뿐이다. 정체를 들켜서 당황스럽기보다 귀찮아 죽겠다.


“뱀파이어는 망토를 두르고 다니던데. 너네 집에 있어?”

“없어.”

“왜?”

“원래 없어.”

“너희 아버지도?”

“응.”

“아쉽다. 한번 보고 싶었는데.”


한 일 미터 가다가 또 묻는다.


“내가 만화에서 봤는데 말이야.”

“응.”

“뱀파이어들은 잘생겼다는데.”


영이가 몸을 돌리더니 불쑥 얼굴을 들이민다. 민준은 화들짝 놀라 고개를 뒤로 뺀다. 한참 동안 민준의 얼굴 구석구석을 뜯어 보고는 영이가 말한다.


“쩝, 잘생기긴 했네.”


영이가 다시 걸어간다. 민준은 참았던 숨을 몰아쉰다. 영이의 머리카락에서 나는 꽃향기가 코로 들이닥친다. 갑자기 후끈 더워진다.


“야, 근데 내가 영화에서 봤는데……. 어? 너 얼굴이 왜 이렇게 빨개?”

“내가 뭘.”

“열 있는 거 아냐?”


영이가 민준의 볼을 향해 손을 뻗는다. 민준이 그 손을 황급히 뿌리치자, 영이가 한쪽 입꼬리를 씨익 올린다.


“짜식. 부끄러워하긴. 내가 영화에서 봤는데 뱀파이어는 햇볕에 약하다며? 맞아?”


민준은 입을 앙다물고 고개만 끄덕인다.


“야, 너 우리 집에 와라.”

지희가 말한다.


“언제?”

“지금.”

“왜? 어머니가 부르셨어?”

“아니?”

“근데 왜?”


민준이 눈을 동그랗게 뜬다. 별소리 다 한다는 투로 영이가 말한다.


“왜긴 왜야. 너랑 놀고 싶으니까 그러지. 줄 것도 있고.”

“나랑 놀고 싶다고?”

“응. 근데 왜 웃어?”


민준이 다급하게 입가를 가린다. 이미 초대받아서 경계는 무너졌다. 언제든지 사냥할 수 있다는 뜻인데 왜 미소가 지어졌는지 모르겠다.


집에 다다라서야 영이가 재잘대던 입을 멈춘다. 육중한 철문이 열리고 둘은 함께 정원으로 들어선다. 바람이 불어오면서 상쾌한 솔잎 향이 코안에 퍼진다.


현관에 들어서자, 코안에 남아 있는 솔잎 향 사이로 피 냄새가 진동한다. 민준이 고개를 두리번거리며 묻는다.


“너 어디 다쳤어?”

“아니? 갑자기 왜?”

“피 냄새가 나.”

“귀신 같네. 나 생리 중이거든.”


갑자기 민준의 몸이 바르르 떨린다. 이러면 안 될 걸 알면서도 참을 수가 없다. 피가 마구 돌면서 몸이 뜨거워지고 호흡이 거칠어진다. 


민준의 붉어진 두 볼을 보고 영이가 경멸하며 소리친다. 


“야! 넌 이런 얘기가 부끄러워? 아무리 뱀파이어라도 남자애들은 죄다 몹쓸 놈들이구나.”

“아냐, 그게 아니야!”


민준은 입을 틀어막고 밖으로 뛰쳐나간다. 영이 앞에서 흉하게 튀어나온 송곳니를 보이고 싶지 않다. 현관문에 기대 숨을 오래 참은 사람처럼 헐떡인다. 후텁지근한 공기 때문에 숨이 턱턱 막히지만 그게 진정에 도움이 돼서 차츰 송곳니가 줄어든다.


“참나, 생리하는 게 역겹니?”


안에서 영이가 소리를 꽥 지른다.


“아, 아냐!”

“그게 아니면 뭔데!”


‘그걸 나도 모르겠다고!’


민준도 억울해서 소리치고 싶지만 꾹 참는다.


잠시 후, 평정을 찾은 민준이 현관 문고리를 돌린다. 문이 잠겨 있다. 퉁퉁, 문을 두드리자 안에서 영이가 말한다.


“야! 따라 해 봐. ‘괜찮니?’”

“내가 왜?”

“왜에? 그게 지금 네가 할 소리니? 들어오기 싫으면 마. 돌아가.”

“아, 아냐…….”


민준은 자신이 무엇을 잘못했는지 모른다. 하지만 왠지 영이의 말을 들어야 할 것 같다.


“그럼 따라 해 봐. ‘영이야, 괜찮니? 참 힘들겠다.’”


영이가 한국어를 가르치듯 한 글자씩 또박또박 말한다.


“……괜찮니? 참 힘들겠다.”

“안 들리는데? 더 크게 못 하겠니?”


민준은 이를 악문다. 심호흡을 두 번 하고 마지못해 목소리를 키운다.


“영이야, 괜찮니? 참 힘들겠다.”

“난 괜찮아. 어서 들어와.”


띠리릭- 도어락 소리와 함께 현관문이 열린다. 민준은 고개를 푹 숙인 채 집안에 다시 들어선다. 제기랄. 이 집에만 오면 바보가 된다.


민준은 복도를 걷다가 화장실로 들어간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양말을 벗고 손과 발을 닦는다. 화장실에서 나오자 도톰한 발수건과 상표도 떼지 않은 양말이 놓여 있다.


오늘은 에이프런을 두른 여자가 중문 앞에 서 있다. 거실로 들어가려던 영이가 여자에게 경고한다.


“아줌마. 그 여자 오면 바로 연락해. 지난번처럼 늦으면 당신, 알지?”


영이가 손날로 목을 긋는 시늉을 한다. 손짓만큼이나 눈빛도 매섭다. 여자는 얼굴색 하나 변하지 않고 양손을 배에 올린 채 허리를 숙인다.


계단을 올라 2층으로 향한다. 지난번에는 들어가지 못한 영이의 방에 들어간다. 물론 옷은 옅은 회색 줄무늬 잠옷으로 갈아입은 상태다.


방문을 열자 눈이 시릴 정도로 새하얀 방이 민준을 반긴다. 사방에 두른 벽지, 책장과 책상뿐만 아니라 영이 혼자 쓰기엔 쓸데없이 큰, 하얀 캐노피가 달린 침대까지 이 방에 하얗지 않은 것이 없다.


“저기에 앉아.”


영이가 하얀색 2인용 텐트 앞에 놓인 캠핑용 의자를 가리킨다. 그곳엔 의자 두 개가 비스듬히 마주 보고 있다. 민준이 왼편에 앉자, 영이가 오른편에 앉는다.


민준의 시선이 정면에 놓인 책상으로 향한다. 그 위에 놓인 32인치 모니터에는 어딘가를 비추고 있는 화면이 떠 있다. 민준은 눈매에 힘을 주고 그 화면을 유심히 바라본다. 익숙한 돌길과 소나무가 보인다. 영이의 집 정문이다.


“그 여자는 늦게 오니까 안심해.”

“그 여자?”

“지난번에 봤잖아.”

“아, 어머니…….”

“어머니는 무슨.”


영이가 코웃음을 친다. 그러고는 웃음기를 지우고 말한다.


“난 이곳에서 도망칠 거야.”


민준은 두리번거리며 방안을 둘러본다. 이렇게 좋은 집을 놔두고 도망친다고? 배부른 소리다. 아니, 미친 소리다. 영이가 아무리 영악해도 영락없는 어린애라는 걸 다시금 깨닫는다.


민준은 루마니아에서 한국으로 넘어오면서 지옥을 맛봤다. 거처가 없고 먹을 게 없는 삶이 얼마나 비루하고 초라한지 뼈저리게 느꼈다. 노숙하며 겪는 추위와 더위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배고픔은 뱀파이어의 품위마저 잃게 했다. 남에게 빌어먹다가 그마저도 안 되면 쓰레기통을 뒤적이는 삶……. 결국 굶주림을 참지 못하고 함께 국경을 넘은 인간 이오누의 목을 물게 된 일까지…….


“여기서 사는 게 낫지 않을까?”


민준이 조심스럽게 권하자, 영이의 표정이 대번 매서워진다.


“웃기는 자식이네. 너나 잘해. 난 다 생각이 있으니까.”


영이가 의자에서 일어나 텐트 안으로 들어간다. 그러고는 민준에게도 들어오라고 말한다. 민준이 몸을 웅크려 겨우 비집고 들어가자, 영이가 매트리스 머리맡에 놓인 하얀색 24인치 캐리어를 가리킨다.


“야, 저거 좀 가지고 와 봐.”


민준이 낑낑대며 가운데로 가지고 오자, 영이가 비밀번호를 돌려서 캐리어를 연다.


“자, 봐봐.”


민준의 눈이 휘둥그레진다. 캐리어 안에 지폐가 쌓여 있다. 만 원권과 오만 원권이 섞여 있어서 마치 가을 초입에 쓸어 놓은 나뭇잎처럼 보인다.


“너…… 이게 다…….”

“난 만반의 준비를 하고 있다고.”


영이가 자신감 넘치는 미소를 짓는다. 그때 띠리리링- 하고 영이가 목에 매고 있는 스마트폰이 울린다. 그러자 영이가 허리를 곧추세우고 겁에 질린 눈동자를 좌우로 굴린다. 그러다가 미친 사람처럼 바닥을 기어 허겁지겁 텐트를 빠져나간다.


민준은 영문도 모른 채 텐트에서 나온다. 어느새 영이는 전신 거울을 보며 옷매무새를 가다듬고 있다. 교복 치마의 주름을 하나씩 다시 잡고는 몸통을 좌우로 돌려 보며 상태를 꼼꼼하게 점검한다. 다음으로 삐져나온 머리칼을 정리하다가, 무슨 생각이 번쩍인 듯 갑자기 행동을 뚝 멈춘다.


“아니다. 내가 재미있는 거 보여줄게.”


영이가 스마트폰으로 전화를 건다. 얼마 지나지 않아 문밖에서 노크 소리가 들린다.


“아줌마. 현관에 있는 내 친구 신발 가져다줘. 그리고 아줌마 핸드폰 줘.”


영이가 여자에게 받은 스마트폰을 민준에게 건넨다. 민준이 손에 쥐자마자 스마트폰이 울린다. 받으라는 뜻으로 영이가 고갯짓을 한다. 민준이 스마트폰을 귀에 대자, 영이의 목소리가 흘러나온다.


“너는 여기에 있어. 핸드폰은 가만히 놔두고. 무슨 소리가 나든 방 밖으로 나오지 마. 알겠어?”

“왜?”

“아, 그냥 쫌!”


영이의 고성이 방안에 쩌렁쩌렁하게 울린다. 민준은 움찔한다. 영이가 평소와 사뭇 다르다. 하지만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가만히 서 있는다. 그러는 동안 영이는 쿵쾅대며 방을 나선다.


민준은 다시 캠핑용 의자에 앉는다. 딱 거기만 허용된 것처럼. 스마트폰에서는 슥슥 무언가 스치는 소리, 콩콩 발걸음 소리만 들린다. 그마저도 들리지 않고 삼 분 정도 지난 후, 불쑥 사람의 목소리가 흘러나온다.


―엄마, 어서 오세요.

―너! 민준이 언제 데리고 올 거니?


갑자기 튀어나온 본인의 이름에 민준은 몸을 숙이고 스마트폰에 귀를 기울인다.


―민준이네는 버리는 게 낫지 않을까요?

―뭐?

―집이 가난해서 헌금도 못 낼 거예요.


짝― 살 부딪는 소리가 스마트폰 너머로 생생하게 들린다.


―너 다시 말해보렴. 내가 그렇게 가르쳤니?

―죄송해요, 엄마.

―엄마 귀에는 안 들리는데, 더 크게 말 안 할 거니?

―죄송해요, 엄마.

―그렇게 말하면 못 쓴다. 마귀에 씐 자를 우리가 구원해야지.

―네, 죄송해요.

―아줌마. 얘 밥 좀 차려주세요. 배에 살 붙은 것 좀 봐. 탐욕이 가득하네. 오늘 육류는 빼도록 하세요.


소리가 조금 멀어진다. 잠시 후에 영이 엄마의 메마른 목소리가 들린다.


―태영이 먼저 데리고 오렴. 걔네 엄마는 이미 전도했어.


전화가 끊긴다. 민준은 의자에서 일어나서 방안을 서성인다. 이 분쯤 지나자 방문이 열리고 영이가 들어온다. 

민준은 영이의 볼부터 살핀다. 


“봤지?”


영이가 계획대로 됐다는 듯 만족스럽게 웃어 보인다. 민준의 눈에는 붉어진 뺨밖에 보이지 않는다.


“나가자. 뒷문으로 나가면 돼.”


민준은 나가고 싶지 않다. 이 넓은 방에 영이를 혼자 두면 안 될 것 같다. 하지만 늘 그랬듯, 착한 강아지처럼 영이의 발걸음을 졸졸 뒤따른다.


영이는 뒷문으로 가는 법을 알려준 뒤에 인사도 없이 뒤돌아간다. 무사히 저택에서 빠져나온 민준은 고개를 들고 수많은 창문을 하나씩 눈으로 훑으며 영이의 방이 어딘지 찾아본다. 하지만 창마다 커튼이 처져 있어 알 수가 없다.


민준은 생경한 길을 헤매듯이 걷는다. 길을 잃었나, 하는 생각이 들 때쯤 언덕마루에 우뚝 솟은 전봇대가 눈에 들어온다. 그제야 마음이 놓이면서 잠시 미뤄두었던 영이에 대한 걱정이 몰려온다. 


영이 엄마의 새된 고성, 짝! 살 부딪는 소리. 영이의 붉어진 뺨……. 뭉게뭉게 피어오른 상념이 부싯돌이 되어 민준의 심장을 긁는다. 저도 모르게 두 송곳니가 삐죽 튀어나온다.


엄마란 작자가 고작 열네 살 아이한테 손찌검을 하다니. 자작나무처럼 마른 그녀 팔을 부러뜨려 버리고 싶다. 목을 마구 물어뜯어 하얀 원피스를 피로 물들이고 싶다. 고통에 일그러진 얼굴을 내려다보며 차갑게 비웃어 주고 싶다. 민준은 분노에 휩싸인 채 언덕을 내려간다.


길이 차츰 어두워진다. 가로등만으로 길을 밝히기엔 턱없이 어둡다. 저 앞에 용추빌라가 보인다. 촛불을 후, 하고 불어 끈 것처럼 분노가 사그라든다. 싸늘하게 식은 심장이 민준에게 묻는다.


그래서 너는 뭘 했는데? 도둑고양이마냥 뒷문으로 도망쳤잖아.


아니야. 영이는 나한테 도움을 구하지 않았어.


애초에 구할 힘도 없잖아. 네 친구 만두, 기억하지?


아니야! 고개를 세차게 젓는다. 그때의 일을 떠올리고 싶지 않다. 하지만 계단을 내려가는 순간 떠오르게 될 것이다. 민준은 발을 내디딘다. 반지하로 향하는 어둠이 아가리를 벌리고 민준을 삼킨다.


표지 Image by Vicki Hamilton from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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