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다른 사람들에게 우리 아이들을 설명할 때, 종종 ‘야생동물’이라는 단어를 사용합니다. 말이 통하지 않고, 통용되고 있는 사회적 규칙이 아닌 타고난 본능으로만 행동하는 상태를 빗댄 표현입니다.
그런데 사실 이 아이들은 진짜 야생동물보다 더 힘든 삶을 살고 있습니다. 아이들은 인간의 외형을 하고 있기에 어른들은 아이들이 당연히 자신들의 말을 알아듣고, 이성적으로 행동할 것이라 기대합니다. 야생동물에게는 아무도 그런 기대를 하지 않습니다. 아이들은 바로 그 ‘인간이기에 당연할 것이라는 기대’의 무게를 온몸으로 감당해야 합니다.
게다가 아이들의 겉모습은 이러한 모순을 더욱 심화시킵니다. 나이는 미성년자이지만 신체는 성인과 비슷하고, 말하는 태도나 내용은 이미 다 자란 어른처럼 존중해달라고 요구하는 듯 보입니다. 보이는 대로 상대를 평가하는 것이 우리 사회의 암묵적인 문화이기에, 아이들은 자신의 실제 모습과 다른 과도한 기대를 받으며 늘 갈등의 중심에 서게 됩니다.
또한 아이들은 길거리에서 생존하는 법을 스스로 터득해 온 ‘그들 세계의 베테랑’입니다. 보호해 주는 어른 없이 돈을 구하고 자신을 지켜온 아이들에게, 학교나 사회가 가르치는 규칙은 현실과 동떨어진 이야기일 뿐입니다. 각자 살아온 환경의 논리와 문화가 너무나도 다르니 보통의 어른들과 이 아이들의 말이 서로 통하지 않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입니다.
이처럼 아이들이 본능으로 살아간다는 점은 야생동물과 똑같습니다. 하지만 저는 본능과 욕구를 나쁜 것으로 여기지 말라고 늘 아이들에게 당부합니다. 본능은 생존을 위한 가장 순수한 신호이며, 신성하기까지 합니다. 새로 나온 스마트폰을 갖고 싶은 욕구는 결코 나쁜 것이 아닙니다. 그 스마트폰을 손에 넣기 위한 나쁜 ‘행위’가 나쁜 것입니다. 안타깝게도 우리가 만나는 아이들은 그 욕구를 건강하게 채우는 방법을 배우지 못하고, 오직 잘못된 행위만을 반복해 왔습니다. 그리고 그 행위 때문에 늘 혼나 왔습니다. 이 과정이 반복되면, 아이들은 자신의 행위가 아닌 ‘욕구 그 자체’가 잘못된 것이라 오해하기 시작합니다. 결국 자신의 본능을 혐오하고 억누르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의 역할은 이 뒤엉킨 실타래를 풀어주는 것에서 시작됩니다. 본능은 죄가 없다고, 너의 욕구는 지극히 당연한 것이라고 끊임없이 말해주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소중한 욕구를,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으면서도 즐겁게 채울 수 있는 새로운 ‘방법’들을 하나씩 함께 찾아 나가는 것입니다. 아이의 내면에 살아있는 ‘야생’을 길들이는 것이 아니라, 그 야생성이 인간 사회와 조화롭게 어우러질 수 있도록 새로운 길을 열어주는 일. 이미 어른 사회에 잘 정착해 살고 있는 우리 교사들에게 매일 반복되는 고통일 수 있으나 이 방식이 꼭 필요한 교육임을 알기에 노력하고 노력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