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언가를 아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저는 앎이 삶을 풍성하게 만든다고 생각합니다. 어린 시절 지식을 쌓는 법을 익히고, 살아가며 얻은 경험을 그 지식과 결합시킬 때 비로소 자신만의 철학이 만들어집니다. 어른의 현명함이란, 바로 이 앎과 경험이 조화롭게 어우러질 때 발현됩니다. 그리고 이 현명함은 자신과 다른 대상, 특히 자신보다 아직 미흡한 상대를 이해하는 데 가장 큰 힘을 발휘합니다.
그렇다면 어른의 삶을 살고 있는 우리는, 사춘기에 접어든 10대 청소년의 마음을 얼마나 잘 알고 있을까요? 각자의 10대 시절을 기억해보면, 즐거움이나 슬픔 같은 선명한 기억 외에 답답했던 감정이 함께 떠오를 것입니다. 아무도 나를 이해해주지 못하고, 나 역시 세상을 이해할 수 없었던 그 감정 말입니다. 저는 지금이야 그 감정을 언어로 정리할 수 있지만, 미성숙했던 10대에는 불가능했습니다. 사실 자기 마음을 제대로 이해하는 사춘기 소년이 과연 세상에 몇이나 되겠습니까?
하지만 우리는 자신보다 어린 친구들에게 너무나 쉽게 위험한 말을 내뱉곤 합니다.
“나도 그랬어. 네 나이 때는 다 그래.”
이런 상투적인 위로에서 저 또한 자유롭지 못합니다. 살아 보니 대부분 인생이 비슷하고, 이미 경험을 해 본 사람으로서 참기 힘든 말입니다. 하지만 진심으로 아이에게 영향을 주고 싶다면, 먼저 알아야 합니다. 나를 알고, 상대를 알고, 우리 사이의 관계를 알아야 합니다. 이 세 가지가 조화롭게 어우러질 때, 나의 그 어떤 쓴소리마저 아이에게는 긍정적인 신호로 이해될 것입니다.
저는 생선을 좋아하고, 웬만한 생선 요리는 직접 할 줄 압니다. 그렇다고 제가 복어를 직접 요리할 수 있겠습니까? 복어를 손질할 줄 모르는 사람이 생선을 잘 안다며 나섰다가는, 그 자리에서 줄초상을 치를 수도 있습니다. 사람을 죽일 만큼 강력한 독을 품은 복어는 그렇다면 사악한 존재입니까? 스피노자는 “악은 자연에 대한 무지에서 발생한다”고 말했습니다. 복어에게 독은 생존 방식입니다. 우리에게 해가 된다는 이유로 그 방식을 악으로 규정할 수는 없습니다.
우리 아이들 역시 때로 이해할 수 없는 말과 행동으로 타인에게 해를 끼칩니다. 분노라는 독을 품은 아이가 있다면, 우리는 그 아이를 혼내기 전에 먼저 왜 분노를 품게 되었는지 그 이유를 알아보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이유를 알아야 행동을 수정할 방향도 찾을 수 있습니다. 아이의 역사 속에서 분노의 이유는 저마다 다를 것입니다. 어떤 트라우마일 수도 있고, 분노를 표출할 때마다 상황이 해결되었던 효능감이 몸에 밴 것일 수도 있습니다.
반면에 신체적으로 힘이 약한 아이 중 상당수는 정보에 민감하고 거짓말에 능합니다. 이런 아이는 교사 곁에 머물며 얻은 정보로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내려 합니다. 안타깝게도 이런 방식으로는 또래 아이들 사이에서 깊은 인정을 받기 어렵지만, 아이는 그것이 자신이 아는 최선의 생존 방식이기에 오늘도 열심히 정보를 나릅니다.
복어의 독은 자신을 지키기 위한 생존 방식입니다. 아이들의 가시 돋친 말과 비겁한 행동 또한, 그들 나름의 생존 방식입니다. 그 독을 무턱대고 비난하기 전에, 우리는 먼저 그 독이 왜 생겨났는지 이해하려 노력해야 합니다. 그것이야말로 위험천만한 복어를, 귀하고 맛있는 생선으로 만드는 가장 빠르고 유용한 길이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