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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작가 Sep 19. 2020

해고 한 달 차, 나는 지금 뉴욕 타임스퀘어



이 도로를 걸으며 감격에 취한 나를 발견했다. "내가 뉴욕에 오게 되다니!" 이런 느낌.
뉴욕에 다시 간다면 길거리 음식을 도전하고 싶다. 못 해본 게 조금 아쉽다.



수프를 다 먹고 길을 나섰다. 혼자 카메라를 움켜 쥔 채 노트북 배경화면이었던 뉴욕 거리 한복판을 걸었다. 그 거리를 걸으며 잊고 있었던 꿈을 떠올렸다. 대학교 2학년, 직업 탐구 수업에서 내가 적은 꿈은 뉴욕에서 직장 구하기였다. 정확히는 뉴욕 한복판에 자리한 언론사인 뉴욕타임스 입사하기였다.      


‘학교 영어신문사 기자 -> 학교 영어신문사 편집장 -> 코리안타임스 입사 -> 뉴욕타임스 입사 -> 뉴욕타임스 편집장’


당시 대학교 2학년에 썼던 꿈을 이루는 과정이었다. 참 단순하게 작성했다. 놀랍게도 이 가운데 학교 영어신문사 기자와 편집장 항목은 달성했다. 글이 주는 효과는 생각보다 굉장하다.



뉴욕 거리에서 수많은 여행자들과 현지인들을 지나치며 여행자이면서 현지인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쉽지는 않았다.



나는 글 쓰는 게 좋았다. 사람들을 만나고 이야기한 것들을 정리하면서 얻은 즐거움이 있었다. 거기에다 살을 붙이고 단어와 문장 하나하나를 내 방식대로 표현하기를 즐겼다. 그래서 기자가 되었다.     


뉴욕에서 나는 여행자였다. 신호를 기다리는 횡단보도 맞은편에서 명찰을 든 직장인들을 마주했다. 머릿속에서 내가 한때 뉴욕에서 일하는 걸 꿈꿨다는 사실이 생생하게 다가왔다. 그리고 기자가 되고 싶었다는 사실이 마치 남의 일인 마냥 새삼스레 생각이 났다.


고개 들어 무심코 뉴욕 고층 빌딩에 있는 오피스들을 바라보았다. 뉴욕에 있지만, 빌딩 숲 안에서 바삐 컴퓨터를 두들기는 사람들을 찾아봤다. 그들 나름대로 갖고 있는 고충이 있겠지만, 뉴욕시티에서 일하는 그들이 내심 부러웠다.



평소 초콜릿을 좋아하고, 또 M&M이 저렇게 거대해서 들어가지 않을 순 없었다.
물론 들어가서 아이쇼핑만 했다.



퇴사는 어떻게 생각하면 좋은 일이었다. 뉴욕에서 일할 수 있다는 여지가 만들어지고 있었으니까.     

 

뉴욕에서 나는 여행자였다. 여행자 신분을 충실히 해내기 위해 엠앤엠(M&M) 스토어와 허쉬 초콜릿 월드에 들어갔다.

   

   




2019년 11월 26일 화요일 오후 10시.      

퇴사의 퇴자도 몰랐던 시각.


나는 퇴근 후 집에 와서 잠옷을 입고 추가 업무를 준비하고 있었다.


그 날은 KBS 2TV 예능 ‘정해인의 걸어보고서’가 첫 방송하는 날이었다. 내게는 그 방송의 첫 방에 대한 기사를 써야 하는 임무가 주어졌다. 그 기사는 내일 새벽에 발행되는 글이었다.      


‘정해인의 걸어보고서’에서 배우 정해인은 진정한 여행자 느낌을 풍겼다. 그는 뉴욕의 풍경 하나하나를 나노 단위로 쪼갰고, 이를 온몸으로 느끼려는 듯했다. 당시 내가 작성한 기사 본문 중 묘사된 바에 따르면 정해인은 발걸음이 닿는 모든 곳에 대해 재잘재잘 소감을 전했다. 또 그는 사소한 것 하나하나(예를 들면, 뉴욕 맨홀에서 나는 연기)를 신기해하고 소중히 여겼다.



'정해인'따라 뉴욕에 갔다고 해도 무방하다. 뉴욕 맨홀에서 나는 연기를 목격한 뒤 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두 살 아래인 동생이 TV 앞에서 헤벌쭉 웃고 있는 나를 두고 의아해했다.

    

“언니, 뭐 봐?”


“정해인. 정해인이 뉴욕에 갔어.”


“헐, 잘생겼다. 나 이날부로 이상형을 정해인으로 할래.”      


 이어 동생은 정해인의 순수하면서도 인간미가 보이는 뉴욕 여행기를 신기하게 여겼다. 나 또한 그게 이 방송의 매력인가 싶어 했던 참이었다.       


“정해인이 뉴욕에서 딱히 뭔가를 하지 않는데 자꾸 보게 돼. 아, 뉴욕 가고 싶다. 뉴욕 가고 싶게 만드네.”    

  

나는 갑자기 뉴욕에 미치도록 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미친 듯이 ‘가고 싶다’고 속삭였다. 정해인과 함께 여행하는 듯한 공상을 머릿속에서 열심히 굴렸다.     


 2019년 11월 26일 화요일 초과 근무 중.

방송 속 정해인이 타임스퀘어의 랜드마크인 빨간색 계단에 털썩 앉았을 때 나도 그의 옆 자리에 앉았다.


군중 속에서 잠시 가족 생각으로 글썽이는 그의 시선을 따라 나도 눈앞에 펼쳐져 있는 타임스퀘어를 상상했다.       






그로부터 약 1개월 후.
정해인이 앉았던 그곳을 바라봤다.



2020년 12월 26일 목요일 오후 4시. 나는 상상 속이 아닌, 진짜 타임스퀘어에 다다랐다.     


방송에서 타임스퀘어 내 정해인이 앉았던 그 빨간색 계단이 눈앞에 펼쳐졌다. 그 앞에서는 연말 공연을 위한 무대 공사가 이뤄지고 있었다.


아쉬움도 잠시, 주변을 살펴보니 아직 날이 밝았다. 다행이다 싶기도 했다. 밤에 이곳에 혼자 왔다면, 나도 방송 속 정해인처럼 감성에 젖어 눈물을 글썽였을 것 같다. 사람들 틈 사이에서 혼자 울고 싶진 않았다. 처량해 보일 것 같았다. 소매치기 타깃이 될 수도 있다.  

      

해고 한 달 차. 나는 아직 나를 표현하고 싶지 않았다. 내가 가진 감정을 모두 망각하고 있었던 것 같다. 오로지 내가 지금 뉴욕에 왔다는 사실만을 만끽하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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