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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작가 Sep 24. 2020

미란다가 접시채 버린 그 스테이크



미국에 있었을 적 오랜 시간을 보내 이제는 추억이 되어버린 서점, 반스 앤 노블 찾았다. 그곳에서 책  대신 다음 해 사용할 다이어리를 찾아보며 시간을 때웠다.


30분을 할애했지만, 예쁜 디자인을 찾을 수 없었다. 분명 초6 때 반스 앤 노블에서 산 다이어리는 소장 가치가 있었을 만큼 예뻤는데. 그 다이어리는 지금도 있다. 반면에 여기 다이어리는 30불이나 주고 사기엔 조금 아까웠다.


대학교 3학년, 유럽에서 교환학생 신분으로 머무는 동안 재밌게 읽었던 스릴러 책을 찾아봤다. 작가 이름이 생각나지 않다. 그렇게 스릴러 코너를 한 바퀴, 두 바퀴.


뺑뺑 같은 자리를 돌다 안 되겠다 싶어, 영화 <악마는 프라다>의 원서(The Devil Wears Prada)를 집었다. 영화는 봤지만 소설은 처음인 이 작품을 보게 된 이유가 있었다.


이날 저녁, 사촌동생과 <악마는 프라다>의 주인공 앤디가 다녀간 스테이크 집에서 스테이크를 먹기로 했.


몇 분이 흘렀을까. 영화로 된 소설의 특징답게 흡입해 읽었다. 책에 눈을 떼지 않은 채 반스 앤 노블2층 창가 자리에 엉덩이를 붙이고 앉았다. 앉아도 되는 자리인지 모르겠지만, 사람들이 앉아 다. 창에 기대는 않으려 노력했다. 창 와창창 깨질 수 있으니까. 아무래도 스터를 너무 많이 본 것 같다.
 
‘띠띠 띠디 띠띠’


톡 보이스톡이 울렸다. 사촌동생이 퇴근 후 이쪽으로 오겠다고 했다.


“오케이. 나 지금 뉴욕시티의 반스 앤 노블에 있어. 위치 내줄.






퇴근 후 친구를 잠깐 만났다는 사촌동생은 여전히 쾌활했다. 일한 후 친구도 만난 터라 힘들 법도 한데 에너지가 넘쳤다.
 
“언니! 반스 앤 노블에뭐했어?”


“그냥 다이어리 구경하다가. 아, 오늘 네가 가보라고 했던 수프 집에 갔다 왔."


오! 어땠어? 생각났지?”
 
미국에서의 추억을 몽글몽글 되새김질하고 있는 이 아이.


사촌동생은 하나하나 세세하게 미국에서 있었던 일들을 기억해냈다. 동생과 내가 미국에서 있었던 특정 사건에 대해 기억을 떠올리지 못하면, 그는 답답해했다.


파네라에 대한 추억이 좋았긴 했는데, 디테일한 면모까지는 잘 생각나지 않았던 나는 티 나지 않게 말을 돌렸다.
 
“토마토 수프 먹었는데 맛있더라구.






초6 당시, 사촌동생의 가족 덕에 미국에서 머물 수 있었다. 그랬던 것처럼 이번사촌동생 있어 미국 대도시뉴욕에서 안심하고 지다. 분에 숙박에 대한  전혀 지 않.


*여행 기간 내내 사촌동생의 집에서 보낸 것 뉴욕에서 숙박을 구해야 하는 이에게 전혀 도움이 되지 않을  분명하다.


사실 처음부터 그럴 계획은 없었다. 한 3일 정도 머물다가 근처 숙소를 잡을 참이었다.  2주 후 엄마가 합류하시기 전까지 있어 봐야지 싶었다. 그러다 한국으로 갈 시간이 다 될 때까지 사촌동생 집에 있게 되었다. 자연스러운 민폐였다. 사촌동생에게 잘하려고 노력했내 마음처럼 잘 되지 않았다.


브루클린에서 조용한 동네의 화장실을 보유한, 천장이 넓은 방. 그리고 라디에이터가 끊임없이 돌아가 따뜻했던 그 방.



<악마는 프라다>에서 앤디가 스테이크를 사간 이집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우아하고 고풍스러웠다.



이날은 크리스마스 다음날이었다.


나는 갚아야 할 이 많았다. 사촌동생은 그런 걸 전혀 개의치 않만, 나는 마음이 쓰였다. 그래서 그에게 스테이크 쏘기로 했다.
 
뉴욕에는 3대 스테이크 집이 있지만, 나는 영화 <악마는 프라다>에서 나온 스테이크 집을 택했다. 이 집은 평도 좋았고, 분위기도 있었다.


이 집은 영화에서 앤디(앤 해서웨이) 퇴근 후 조용히 스테이크를 썰어 먹은 곳이 아니었다. 러한 곳이었다면 왠지 안 갔을 것 같다.



미란다가 버린 바로 그 스테이크. 고기 부위까지 똑같이 시켰다. 맛이 엄청 좋았다. 따로 소스를 뿌리지 않고 먹어도 맛있다.



앤디가 자신의 상사이자 잡지 편집장인 미란다(메릴 스트립)의 점심을 위해 스테이크를 포장해간 집이었다.


앤디가 바삐 포장해간 스테이크를 미란다는 오직 손짓으로 그에게 거절의 의사를 표다.


개인적으로 소고기와 스테이크 하면 사족을 못 쓰는 내게 전혀 이해가 되지 않 부분이었다. 헐. 한쪽이라도 먹지!


미란다의 변덕에 화가 난 앤디는 그의 거절에 즉시 싱크대 음식을 봉지채 버린다. 이때 포장된 스테이크가 접시 채 있었나 보다. 싱크대에서 접시가 깨지는 소리가 와장창 다.


 감독이 그저 단순한 극적 효과를 노린 걸 수도 있겠지만, 포장을 해오더라도 접시에 먹어야 하는 미란다의 극성을 엿볼 수 있는 장면이기도 했다.



포장 대신 먹고 가는 것을 택해 조금 아쉬웠다.

 


우리는 미란다처럼 포장이 아닌, 먹고 가는 방식이었지만 똑같은 종류의 스테이크를 즐겼다.
 
곰곰이 생각해보면, 내가 이 집을 고른 것도 퇴사와 연관 지을 수 있어 보였다.


단정 지을 수는 없지만, 내 나름대로 ‘앤디 미란다를 위해 자신의 점심시간을 헌신하고, 스테이크 집에 들러 스테이크를 사들고 갔다’를 ‘나는 회사를 위해 나의 주말을 반납하고, 콘서트 취재를 갔다'로 빗대어 보았다. 이렇게 앤디와 나 사이 유대감 형성다.


앤디는 미란다를 미워하지 않았다. 미란다를 미워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들이 있었지만, 앤디는 미란다를 단 한 번도 미워하지 않았다.


나도 그러했다. 나는 대표 미워하지 않았다. 그런 일이 있은 후에도, 나는 단 한 번도 그들을 미워한 적이 없다.
 
우리는, 앤디와 나는 일을 사랑했으니까.
 
극 후반 앤디는 미란다 비서직에서 나와, 뉴욕타임스에 들어다. 영화 전반적으로 봤을 때 앤디는 사람들을 만나고 글 쓰는 것을 사랑했던 것 같다. 앤디에게는 꿈이 있었기 때문에 미란다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내게도 이 일이 아무것도 아니길 바라며 스테이크를 기다렸다.



여기서부터 저기까지 다 주세요. 아 물론 와인이요.



이상하게 여행을 가게 되면 잘 안 썼던 지출을 하게 된다. 그것도 후회 없이. 그래서 지출을 하고 나면 항상 후회가 없다. 나는 뉴욕에 왔으니, 지출면에 있어 후회 없이 허용. 뉴욕에 자리한 음식점이라 하더라도 음식점은 음식점일 뿐인데도 그러고 싶 마음이 든다.


그렇다고 한국에선 아껴 쓰냐? 생각해보니 그건 또 아니다. 여행지에서 지출을 허용하는 범위 이렇게 광범위해. 뉴욕에서 만난 50불을 훌쩍 뛰어넘는 고깃덩어리는 내게 아무것도 아닌 것이다.


아 몰라. 그냥 지르고 봤다. 와인 한 병도 주문했다. 약 15불의 샐러드도 함께 시켰다. 이 모든 지출은 다 숙박을 내준 사촌동생을 위한 것이다. 물론 약간의 지분으로 내가 무사히 해고됐음에도 아직까지 살아있고(죽을 이유는 없지만), 뉴욕에 무사히 온 값도 포함돼 있었다. 나는 그때 절박했으니까. 뉴욕에 온 내가 대견하고 멋져 보였다.  
 
그렇게 해서라도 위안이 필요했다.
 


무료라기엔 거대해서 망설이게 했던 빵 사이즈.
1. 사촌동생을 위하여, 2. 백수인 나를 위하여.



시원하게 주문을 마치자마자, 빵과 과자가 잔뜩 든 바스켓이 테이블 위에 놓였다. 이것은 공짜겠지? 눈치를 잠깐 보다 에라 모르겠다 빵을 쪼개 입에 털어놨다. 바스켓 옆에 버터소스가 놓인 걸 보아하니 무료인 게 확실다.
 
심사숙고해 고른 레드 와인 한 병 왔다. 우리는 와인을 서로의 잔에 따주었다.


뉴욕에서 와인 한 병을 사 먹은 일 내 인생에 있어서도 잊지 못할 경험이다. 어느 백수가 뉴욕의 이 고급스러운 레스토랑에서 스테이크와 와인을 즐기겠는가. 해고를 당해 미쳐가 일보 직전인 백수만이 할 수 있는 일이지 않을까 싶다.



고기는 생각보다 훨씬 더 맛있었다.
함께 주문한 샐러드도 의외로 맛있었다.



육즙이 흐르는 빨간색 살이 보이는 고기를 썰었다. 한 조각 크게 썰어서 먹은 순간 미란다가 접시채로 버리게 한 그 스테이크에 연민이 느껴졌다.


참, 그 테이크 정말 아깝다. 앤디, 너라도 먹지.


육질은 매우 부드러웠고, 스테이크 소스 없이 먹어도 간이 적당해 입맛에 맞았다. 내가 집에서 구워 먹었던 스테이크의 맛과는 뭔가 달랐다. 두서없이 감자와 베이컨이 놓여 있던 샐러드조차 완벽했다. 그렇게 사촌동생과 먹고 마시고를 반복하며 수다를 떨었다.




 
식사 중 우리 테이블을 담당했던 홍콩인 웨이터 와인 한 병을 비운 우리를 보고, 센스 있게 몇 번이나 다른 와인들을 가져와 따라줬다.


그 덕에 우리는 와인을 거의 한 병을 더 마셨다. 낯선 땅에 가면, 같은 아시아계 사람들에게 더 마음을 열게 되는 이상한 마력이 작용하는 것 같다. 우리도 그에게 정이 갔다.


당시 나는 미래에 온 전 세계를 강타한 000 존재를 전혀 모른 채, 그에게 내년 봄 여름 가족들과 함께 국으로 놀러 오라고 초대했다. 집 주소까지 자세히 적어 전달했다.





 가족과 꼭 놀러 가겠다는 그는 서글서글한 인상으로 마지막까지 우리에게 서비스를 제공했다.


홍콩의 유명 배우 성룡을 닮 그가 내준 치즈 케이크를 먹으며 우리는 못다 한 이야기를 남김없이 탈탈 털었다. 무슨 얘기였는지 자세히 기억은 나지 않으나 분명 밤하늘을 채우고도 남을 따뜻한 담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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