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홍작가 Sep 17. 2020

수프 한 그릇이면 충분해



“언니, 파네라 브래드(Panera Bread) 기억해? 그 수프 먹었던 곳. 여기(뉴욕)에도 있어. 그곳 꽤 생각나지 않아?”
 
사촌동생과 미국에서의 인연은 사실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초6으로 거슬러 올라가 보자.


십여 년 전, 사촌동생의 가족 미국에서 2년을 살았다. 이모부께서 미국 대학원을 다니셨다. 우리 가족은 그 덕에 1년을 미국에서 머물렀다. 아빠는 일 때문에 잠시 기러기 아빠가 되어야 했지만, 나와 동생에게는 영어를 늘 수 있는 대단한 기회가 주어진 셈이었다.



'수프 먹으러 뉴욕시티에 왔다.' 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영어 선생님이셨던 엄마는 미국에서 나와 동생, 사촌동생 이렇게 셋의 훌륭한 영어 선생님이 되어 주셨다. 우리는 공공도서관 또는 반스 앤 노블(Barnes and Nobles)에서 학교 숙제를 했고 수프와 빵을 파는 파네라 브래드를 즐겨 찾았다.


파네라 브래드. 어쩐지 익숙하다 싶다. 그곳에서 맛있게 먹었던 게살 수프와 빵이 생각나 추억의 입맛을 다셨다. 파네라 브래드는 당시 이방인이었던 우리들에게 가성비가 있으면서도 든든히 배를 채워주던 곳이었다.
 




구글 지도 앱을 켰다. 목적지는 뉴욕시티 한가운데에 자리한 파네라 브래드였다. 그 근처인 브라이언트 파크 지하철역에 내렸다.


12월 말이었다. 거대한 크리스마스트리가 중앙에 세워져 있는 스케이트장은 사람들로 가득했다. 스케이트를 마음껏 즐기기엔 공간이 비좁아 보였다.


마켓에서는 따뜻한 빵과 음료 그리고 기념품들이 판매되고 있었다. 고개를 들어 사방을 둘러보니 영화 <나 홀로 집에>에서 많이 봤던 풍경들 마주했다.





실오라기 같은 나뭇가지들이 두서없이 뻗어있는 모양새. 그런 나뭇가지들은 멋스럽게 뉴욕의 고층 빌딩들을 장식해줬다.


화면에서만 봤던 풍경이 눈앞에 펼쳐지자 감격스러웠다. 내 팔보다 가늘지만 곧은 나뭇가지들과 나뭇가지들이 만들어내는 뉴욕만의 풍경을 정말 보고 싶었다. 이 순간을 만끽하고 싶었는지 그 자리에서 360도를 돌았다. 한 번 더 돌았다.




 
“One tomato soup and a cup of coffee, please.”
“Name?”
“Jessica.”
 
뉴욕시티에서의 첫 주문이었다.
 
자리에 앉을 곳을 살피다 혼자 4인용 테이블에 앉은 여성을 발견했다. 음식 다 먹은 것 같았다. 여기 앉아도 되냐고 허락을 구한 뒤 옆에 앉았다.


설레는 마음을 달래면서 주섬주섬 토마토 수프와 빵을 꺼냈다. 딱딱한 빵을 큼지막하게 쪼갠 후 수프 안에 넣어 주었다. 부드럽게 하기 위함이었다. 숟가락으로 빵을 꺼내 수프와 함께 거의 들이키다시피 허겁지겁 먹었다. 배가 고팠거나 추억에 젖었거나. 둘 중 하나였다. 토마토 수프 입맛에 맞았다.
 
뉴욕시티에서의 첫 끼니였다.




이전 04화 사촌동생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