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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작가 Sep 26. 2020

뉴욕 뚜벅이의 브루클린 브리지 여행





풍족한 저녁 만찬을 즐긴 후 그랜드 센트럴 터미널을 찾았다.


미국 드라마 <가십걸>의 열성 팬으로 따라 하고 싶은 장면이 있었다. 개인적으로 꼽은 <가십걸>의 베스트 씬은 주인공 세레나가 터미널에 따단 하고 등장하는 장면이다. 무슨 흐름이었는지 우리는 세레나가 되어 보기로 했고, 세레나로 빙의했다.



https://youtu.be/bCwDNHMXxhE

위 영상을 클릭하시면 보실 수 있습니다. :)



세레나가 실제 등장하는 장면을 여러 번 돌려보며 우리는 연기와 연출을 고민했다.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극 중 세레나는 도도하게 걸으면서도 얼굴을 자연스럽게 화면에 선명하게 노출시켰다. 얼굴은 카메라를 2~3번 바라보되, 의식하지 않아야 했다.
 
‘나는 세레나다. 세레나다.
 
극 중 세레나는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계단을 올라다. 또 나름 예쁘게 연출되어야 했다. 4번의 촬영 끝에 완성했다. 중간에 웃음이 터져 NG도 여러 번 났다.
 
다음 촬영에 들어간 사촌동생은 단 1번으로 촬영을 마쳤다. 세레나는 유독 입술을 내미는데, 사촌동생은 그것까지 완벽히 따라 했다. 사촌동생은 세레나처럼 계단을 올라갈 때 난간을 잡지 않고 잘 올라갔다. 두리번거리는 것도 완벽했다.
 
이걸 왜 하나 싶은 생각이 들었을 법 한데, 별 말없이 촬영을 함께 해준 사촌동생이 고마웠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니 와인에 취해서 해줬을 수도 있겠다.)





아침 일찍 일어나 부지런히 움직이는 사람들 보기 좋아한다. 그들의 부지런함 게으름을 경계하게 한다. 브루클린도 시끌벅적한 뉴욕 시티처럼 일찍이 기상 소란스러웠다. 빵빵 소리에 눈을 떴다.
 
여행객처럼 밖에서 먹는 아침식사가 궁금했다. 뉴욕 아침의 분위기도 어떨까 싶었다. 요리하기 귀찮 사람처럼 또는 친구를 만나러 나온 이처럼 집 밖으로 나왔다.


도로 위 'ONE WAY' 등 방향키가 쓰인 간판 등 브루클린의 이곳저곳을 나하나 뜯어보면서 걸었다.





작고 귀여운 음식점을 찾았다. 창을 통해 아침의 브루클린 거리를 바라볼 수 있는 곳이었다.




 
먼저 아메리카노와 카페라테를 주문했다. 역시 미국이구나 싶었다. 커피 양이 엄청나다. 한 잔이 손바닥만 다.




 
미국식 아침식사 메뉴판을 구경했다. 베네딕트가 에그 베네딕트만 있는 줄 알았다. 베네딕트의 종류가 무려 3가지였다. 수프도 팔았다. 먹고 싶던 요거트와 그래놀라는 없었다. 물어보니 새로 메뉴를 리뉴얼했다고 한다.
아침부터 버거는 너무 과하겠지?  
 
우리의 선택은 메뉴판에서 젤 첫 번째에 있는 The Willburg breakfast. 달걀 요리 써니사이드업으로 주문했다.





우리나라 전의 크기보다 큰 크기의 넓적한 팬케이크 두 장이 송뽀송한 프렌치토스트와 함께 나왔다. 딸기와 블루베리가 더해져 근사한 플레이팅이었다. 사진 찍기에도 좋았다.




 
두 번째로 주문한 요리는 오믈렛이었다. 독특한 카레향나는 구운 감자와 입맛을 돋우는 샐러드가 있었고, 오믈렛 위에는 하얀 포실포실한 고트 치즈가 얹어져 있어 풍미가 배로 좋았다.
 
비주얼도 맛도 합. 특히 떡처럼 쫄깃한 식감을 지니고 있었던 팬케이크가 마음에 들었다. 사촌동생이 좋아한 프렌치토스트는 집에서 쉽게 만들어보지 못할 듯다.
 
현지인들이 계속 들어오는 걸 보니 동네 맛집 중 하나인 것 같았다. 사촌동생이 알려준 yelp 앱을 통해 뭐가 맛있는지 등 메뉴도 자세히 알 수 있었다. 뉴요커 사촌동생 덕분에 여행을 효율적으로 즐길 수 있었다.





아침식사  사촌동생과 헤어져 브루클린 브리지를 향해 걸어갔다. 처음부터 왜 걸어가려고 했는지 모르겠다. 구글 지도에서는 브루클린 브가는 교통편으로 지하철을 추천했다.


영화에서만 봤던 브루클린 브지. 그 다리를 향해 걸어가는 행위 자체멋져 보였다. 또 지하철을 타게 되면, 뉴욕시티를 거쳐 가야 했기 때문에 뚜벅이 투어를 고집했다.


출발하는 곳인 윌리엄스버그와 브루클린 브지는 같은 지역인 브루클린에 있었다. 걸어서 20분밖에 안 걸릴 것 같았다.





 다 만난 주택가는 영국 소도시인 바스(Bath)를 떠올리게 했다. 학교 옆 주차된 노란 학교 버스 만났다.


평범한 동네라고 생각한 것도 잠시, 검은 모자를 쓰고 검은 양복을 입은 사람들이 빠져나왔다. 주로 남성들이었는데 키만 다를 뿐, 수염과 땋은 머리까지 똑같아 대량 생산된 캐릭터를 보는 것 같았다. 특정 종교 행사를 가기 위한 복장으로 보였다. 그들이 입고 있는 의상이 독특해 잠시 눈길이 갔다.



사촌동생의 설명에 따르면, 이곳이 Jewish 동네라고 한다.



 사람들이 보이면 여행자는 맘이 놓아지길 마련이다. 지도를 보는 와중에 사진도 찍으며 계속 걸어갔다.
 
그러다 사람들이 사라졌다.





 
십 분쯤 지났을까. 누군가가 나를 쳐다보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100% 확신 없었으나, 촉 있었다.


미국은 총 소유할 수 있는 국가라  두려다. 결국 사람들이 하나도 없는 거리에서는 카메라조차 꺼낼 수 없었다. 분명 누군가가 나를 주시하고 있었다. 내가 틈을 보이기를 기다리는 것만 같았다. 내가 지금 사라져도 아무도 모를 것 같은 이 광범위한 미국 대륙이 주는 공포감은 생각보다 거대했다. 겁에 질려 지하철을 타지 않기로 한 과거의 나 책했다.


안 되겠다 싶어 사촌동생에게 보이스톡을 걸기 위해 폰을 꺼내 들었다. (그에게는 뜬금없겠지만) 현재 나의 위치를 알려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폰을 들었다가 그만두었다. 별 일 아닐지도 모르는, 괜한 것 때문에 사촌동생을 귀찮게 하고 싶지 않았다. 한국에 있는 가족들이나 친구들에게 연락하면 어떨까 싶었다. 시차가 완벽하게 반대인 한국은 딱 새벽이었다. 어쩔 수 없다. 마지막 카드를 꺼내 들었다.
 
여행객이 아닌, 동네 사람인 척 동네 친구에게 전화하는 척을 하자.’  
 
(아무도 관심을 두고 있지 않을 수도 있는) 이 거짓말을 완벽히 해내기 위해 번호를 누르고, 전화를 거는 척했다. 그리고 혼잣말을 해 전화기 건너편 누군가와 대화를 나누는 연기를 했다. 이상하게 전화에 심취해 있자, 조금씩 마음이 누그러지는 게 느껴졌다. 그럼에도 무서운 느낌이 들 때마다 더 큰 목소리로, 마치 뭔가가 화가 난 듯이 과장된 연기를 했다.
 
“Oh my god. What? What are you talking about?"

 
내가 가장 많이 말한 대사 중 하나다.
 
내 촉이 100%는 아니었지만, 얼추 맞다. 작은 상점들이 보이는 동네에 진입했을 때 맞은편에서 걸어오는 남성이 잠시 발걸음을 멈춰 내 왼쪽 귀에다 ‘워후’라고 속삭였다. 뭐지 이 베이비?


나는 전화 연기를 이어가며 앞만 보고 걸었다. 조금 더 걸어가다 또 다른 남성은 아예 나를 보자마자 그 자리에서 멈춰 섰다. 심장이 뛰었다. 뛰고 싶었지만 뛸 수 없었다. 다행히 주변에 사람들이 보여 재빨리 그곳을 빠져나왔다. 덩치 큰 사람  바짝 다.
 
그러다 브루클 브지에 닿았다. 사람들(또는 구세주들)이 보였다.





브루클린 브지의 초입을 마주하는 순간 방금 전까지 몰아왔던 두려움과 공포, 나에게 닥쳐왔던 일들, 내가 가지고 있는 근심과 조급함 그리고 실망감 등 부정적인 것들이 사라졌다.





명소답게 많은 사람들이 있었다. 걷기 좋은 오전 시간대였다.


다리 위로는 맑은 하늘과 선선한 바람 그리고 적당한 햇살이 있었다. 비가 올 것 같은 흐린 하늘이었지만, 비 오지 않았다. 군중 속의 고독이 아닌, 행복감이 들었다.




 
이곳에 오, 잘렸시련과 쫄았었던 순간 등 여러 가지 고난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나는 브루클린 브지를 걸으며 그 고난들을 잊게 도와주고 있는 현재에 집중했다.





지금의 나는 뉴욕의 랜드마크 중 하나인 브루클린 브리지를 걸어가는 관광객들 중 하나다.


나는 다시 카메라를 들었다. 주변을 두리번거리는 여행객으로 돌아온 나는 조용히 안도했다.





천천히 다리의 끝을 향해 걸으며 사람들 인간관계에 대해 생각해봤다.


혼자 고독하게 길을 걸으며 사람들과 나 그리고 관계에 대해 생각해보는 시간. 무언가에 상처를 받더라도 더 빠르게 아물게 되는 건 아마 이런 시간이 있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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