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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작가 Oct 02. 2020

그때의 버블티와 지금의 컵케익



소호에 닿았을 때는 힙한 브루클린의 확장판을 보는 것 같았다.


거리 곳곳에는 트렌디한 카페들이 줄지어 있었다. 앞으로 내가 차리게 될지도 모르는 가게의 샘플들을 보려면 뉴욕의 가게들을 필시 참고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트렌디한 거리에서 트렌디하게 걷는 법은 뭘까 궁리하다 내 멋대로 걷기로 했다.
옷 속에 파묻힌 듯한 나.



쇼윈도에 진열된 옷들, 또는 큰 창을 통해 보이는 카페 내부만 봐도(일명 아이쇼핑) 눈이 즐거웠다.



광고판마저 멋스러웠던 소호.



추운 겨울이었지만, 따뜻한 핫초코를 파는 평범한 카페가 아닌 힙한 디저트 가게에 들어가고 싶었다. 소호스러운 것을 하고 싶었다.



츄리닝마저 멋스럽게 소화하는 그. 어쩌면 래퍼일지도 몰라.






"버블티 드실래요? 제가 살게요."


식당으로 향하는 길 900원 버블티 가게를 지나가며, 그는 분명 곁눈질로 버블티에게 호감을 표시했다. 그 신호를 알아차린 나는 그에게 식사 후 버블티 한 잔을 제안했다. 근데 문제가 있었다. 늘 그가 밥을 내는 것에 익숙했던 터라 회사에 카드를 두고 나왔다.  


"카카오페이 되나요? 아님 이체라도.."

"그런 거 없는데 어쩌죠."


무인주문 결제기(키오스크) 앞에서 쩔쩔매는 나를 두고, 그는 가족과 전화통화를 하러 갔다.


"어. 밥 먹었어. 신입이 버블티 사준대."


결국 카드도 없고, 계좌이체도 되지 않아 그가 산 버블티를 마시며 회사로 돌아갔다.


"제가 다음에 살게요. 진짜 죄송해요."

"됐어. 그만해."

"아..(아쉬움 가득한 한숨을 쉬며) 진짜 잘 마실게요. 과장님."

"그래."


비빔 소바에 이어 버블티까지 먹었던 날로 점심을 아주 풍요롭게 보냈던 하루였다. 또 일에 대해 얘기하면서 고민을 드러내고 공감을 나눴다. 풍부한 소통을 가졌던 시간이었다.


그 일이 일어난 날이기도 했다.






컵케익 종류가 어찌나 많은지 2개 먹어야 하나 고민했다.
나의 픽은 레드벨벳 컵케익.



거리에서 30분 정도 서성이다 미리 알아둔 컵케익 가게 안으로 들어갔다.


따뜻한 커피와 레드벨벳 컵케익을 먹으며 생각에 잠겼다. 레드벨벳은 참 달다고. 너무 맛있는데 달았고, 또 그 맛이 인위적인 단 맛은 아니어서 혼자만 먹기엔 아쉬웠다. 러나 사촌동생이 좋아할 만한 음식은 아니라고 판단해 더 사지 않았다.





혼자서 앉기엔 자리가 넉넉해서 방금 온 한 모녀에게 합석을 권유했다. 그들 앞에서 컵케익과 커피를 천천히 음미하며 먹었다. 이상하게 외롭지 않았다. 컵케익이 주는 단맛은 우울함 또는 고독감을 심하게 감소시켰다.


컵케익을 다 먹었을 때 모녀가 뉴욕에 여행 온건가 궁금했다. 궁금증을 참지 못하는 나는 그들에게, Are you traveling?라고 질문했다. 딸은 뉴욕 공항에서 일해서 뉴욕에 살고, 어머니는 크리스마스 홀리데이를 맞아 딸을 보러 놀러 왔다고 했다.


내가 한국에서 왔다고 하자, 딸이 컵케익을 먹을 때보다 더 환하게 웃더니 한국에 꼭 가고 싶다고 했다. 한국, 너 쫌 많이 유명해졌네.



뉴욕에는 컵케익 가게가 엄~청 많은데 언제쯤 다 가볼 수 있으련지.






"왜 그랬어. 잘 먹고 들어오는데 이게 대체 무슨 일이냐."

"...(아마도 넋이 나간 표정)"

"됐어. 마음 좀 추스르고 들어와."


신나게 버블티를 마시며 회사로 돌아오자마자 나는 갑자기 호되게 맞았다. 대표에게, 당시 눈에 보이지 않은 텃세를 부리는 선배들에게.


나는 얼이 빠진 상태로 얼음만이 남긴 버블티 컵을 두고, 그와 옥상에 올라갔다. 모양새는 그에게 불려 간 것으로 연기했다. 그땐 아무것도 몰랐을 때였는데 왠지 그래야 할 것 같았다. (후에 내막을 알게 되자 그 촉이 맞았음을 깨달았다.) 옥상에서 자책하는 내게 그는 괜찮다 아무것도 아니다.라고 해주었다. 분명 그것은 아무것도 아닌 일이었다.








컵케익를 먹으니, 그때 버블티를 먹었던 일이 연상되었다.


뉴욕에 돌아온 후 다른 직장에 들어간 나는 그에게 연락을 취했다. 그는 기쁜 마음을 담아 정말 잘 됐다고 했다.


당시 그는 일이 터진 후 정신을 못 차리는 내게 괜찮다.라고 해준 유일한 사람이었다. 그랬기에 나는 컵케익을 먹고 뉴욕에 있어 행복하다고 생각했고, 버블티를 먹고 겪었던 일 따위는 가뿐히 짚고 넘어갈 수 있게 되었다. 다음 디저트를 향해 달려갈 수 있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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