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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작가 Oct 09. 2020

퇴사 후 적적함을 달래준 소울푸드



타코와 같은 요리를 비롯, 아보카도, 병아리콩 등 몸에 좋은 이색적인 재료가 잔뜩 들어간 남미 음식을 좋아한다. 뉴욕에 닿기 전, 퇴근 후 즐겨 찾은 곳은 멕시칸 푸드를 내 맘대로 골라 먹을 수 있는 곳이었다.


 




"괜찮냐? 얌마 기죽어 있지 마."

"네."


"퇴근 후 얘들이랑 저녁 먹기로 했는데.."

"?(저도요?)"

"좀 그렇지?"


그땐 가고 싶지만 가서는 안 될 것 같았다. 지금 와서 생각하면 갈 이유는 없었다. 내 블로그, 유튜브. 내 SNS을 턴 사람들이었다. 그들과 밥이라뇨? 상황 파악을 못했던 당시의 내 대답은 "죄송해서 어떻게 가요."였다.


그날 저녁 나는 홀로 멕시칸 푸드를 먹었다. 가게 안, 넓고 한적한 테이블에 홀로 앉아 열심히 음식을 먹으며 포크질에 집중했다. 스트레스를 풀었던 것 같기도 하다. 먹다가 뭔가 허전했다. 잠시 망설이다 다시 카운터로 가서는 생맥주를 사 왔다. 에너지 드링크를 들이켜듯 맥주를 마셨다. 넘실거렸던 내 마음이 잠시 고요해지는 순간.


유튜브, 블로그를 통해 회사 일기를 올렸다. 블로그에는 취재 중 요청한 연예인과 찍은 사진이 올려져 있었고, 유튜브에 올린 영상은 오래된 스마트폰으로 3초씩 짧게 찍은 영상들을 동영상 편집 애플리케이션으로 짜깁기해 올린 3~4분 영상이었다. 주로 내가 먹은 음식, 커피뿐이었다. 얼굴도 나오지 않았다. 조회수는 10~20 정도. 구독자도 10. 아니, 그것보다 적었다.


수요일. 그날 오후를 똑똑히 기억한다. 그들은 유튜브, 블로그 전부를 일일이 캡처해서 대표에게 보여줬고, 나는 대표실로 불려 가 호되게 끝났다. "죄송합니다. 다시는 안 그러겠습니다." "아무 생각 없이 했습니다. "그러려고 한(영리를 취하고자 한) 행동이 아니었어요." 몇 번이나 고개를 숙이며 사죄했다. 글과 영상은 바로 내렸고, 유튜브 계정은 삭제했다.


나중에 대표가 말했다. "그냥 취직된 게 좋아서 그랬던 거 다 알아." "괜찮아. 기죽지 마."








뉴욕에서 찾은 원조 멕시칸 푸드 전문점에서 나초 주문은 필수이다.


기죽지 마.라고 해서 기죽지 않고, 당당히 다녔더니 퇴사 후 뉴욕에 와 있는 나는 나초를 와그작 와그작 씹어 먹고 있다.





타코 소스 두 종류를 모두 들고 와서 내 앞에 놓았다. 둘 다 먹어봐야지.


나는 더욱더 당당하게 두 소스를 음식에 부었다. 내 마음대로 할 테다. 영상도 다시 찍고 있다. 유튜브도 새로 만들었다. 그 일이 생긴 후 기록에 대한 트라우마가 생겼는데, 시간이 흘러 극복한 듯하다.





레몬이 든 소스를 부어서인지 약간 시큼하다. 그래도 뭐 풍미는 나쁘지 않았다. 아보카도까지 추가했더니 넘치는 양을 자랑하는 브리또 볼. 한 입 두 입 세 입. 하~ 좋다.


퇴사 후 진정한 나의 소울푸드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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