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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작가 Oct 16. 2020

뉴욕에서의 하루 일과



뉴욕에서의 하루 일과: 공복 운동 – 베이글 - 센트럴 파크 – 쇼핑 – 맥주



눈을 떴다. 아침 8시가 안 된 시간이었다. 창가 자리 옆에 누워있는 사촌동생은 아직 잠에 빠져 있었다. 이른 시간에 갑자기 눈을 뜨게 된 건 거리에서 들리는 경적소리와 자동차에서 크게 틀어 놓은 음악 소리 등 소음의 영향도 있었지만, 그것보다 더 확실한 게 있었다. 바로 지금 내가 뉴욕에서 눈을 뜨고 감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오전 10시, 사촌동생이 분주히 준비하고 있었다. 옆에서 나는 운동복으로 갈아입었다. 아침을 먹지 않는 사촌동생에게 아침을 챙겨주고자 과일, 요거트 등을 사놨지만, 그는 먹지 않았다. 나도 전날 많이 먹었던 터라 공복을 유지했다.



물론 먹은 날도 있었다.



사촌동생이 알려준 ‘ClassPass’라는 애플리케이션을 통해 한 달 동안 쓸 수 있는 포인트를 받았다. 그 포인트는 ‘ClassPass’와 제휴를 맺은 각종 운동센터에서 쓸 수 있었는데 최소 3번을 무료로 체험할 수 있게 했다. 또 집 근처를 비롯, 뉴욕 내 닿을 수 있는 곳이면 어디든 사용할 수 있었다. 뉴욕시티에서 사용하지 않았던 점이 조금 아쉽다.


처음에 나는 오후 1시 필라테스 수업을 들었다. 센터는 집과 5분 거리에 있어, 달랑 운동복만 입고 나가도 무방했다. 그다음 번에는 아침 9시 요가 수업을 들으러 갔었다. 요가 센터는 집과 15분 정도 걸어가야 하는 위치에 있었는데, 비가 와서 집으로 오는 길이 매우 추웠었다.
 
운동을 마치고 나면, 나는 집으로 돌아와 냉장고에서 사촌동생이 추천한 브랜드의 야채 주스를 즐겨 마셨다. 하루는 케일을 포함해 초록색 야채와 과일을 넣었는지 아주 짙은 녹색을 띤 제품을 마시게 됐다. 사촌동생이 강력하게 추천한 것이기도 했다. 쓴맛이 날까 우려되어, 눈살을 찌푸리며 한 모금을 입에 털어놨다. 괜한 우려였다. 맛이 좋아, 그 후로도 그 제품이 보이면 쟁여 놨다. 사촌동생이 먹거나, 내가 먹거나 했다.





 
샤워 후 내가 좋아하는 검은색의 베레모를 쓰고 외출했다. 사촌동생의 열쇠는 하나였다. 나는 집을 나서기 전 핸드폰을 챙겼는지, 지갑을 챙겼는지에 대한 확인을 수시로 해야 했다. 확인을 마친 후 나는 문을 조용히 닫고 나와 그대로 지하철을 타러 갔다. 지하철로 30~40분이면 뉴욕시티에 도착한다. 짧은 이동 시간 가운데 나는 뭘 먹을지, 그리고 어떤 집에 갈지를 결정했다.  
 
이날의 초이스는 베이글이었다. 뉴욕에는 3대 베이글이 있다고 한다. 그곳들을 다 제쳐두고, 현지인들이 자주 가는 곳으로 발걸음 했다. 두부로 만든 크림치즈를 팔고 있다고 해서 더욱 발걸음이 확고해졌다. 가게 안에는 역시 사람이 많았다. 근처에 있는 센트럴 파크에서 먹을까 하다 자리가 생겨 얼른 확보했다.



이집은 커피도 맛집.
배불렀지만 다 해치웠다. ^-^



베이글의 크기가 손바닥 두 배만 했다. 내가 주문한 베이글 안에는 두부 크림치즈와 매일 먹어도 질리지 않을 만큼 좋아하는 아보카도가 듬뿍 들어 있었다. 첫 한 입을 크게 베어 먹었다. 그러다 두 입, 세 입. 입가에 촉촉한 치즈 크림이 묻었을 때 자연스레 미소가 지어졌다. 단지 베이글을 먹으러 뉴욕에 와도 될 만큼 맛있었다.
 
음식을 다 먹고 나면 그 근처를 산책했다. 베이글을 먹었던 날엔 10분 정도 걸으면 닿는 센트럴 파크에 갔다. 영화 <인턴>의 마지막 장면에서 배우 앤 해서웨이와 로버트 드 니로가 함께 태극권을 했던 장소이기도 한 이곳을 나는 걸었다. 미드 <가십걸>에서는 레이튼 미스터가 에드 웨스트윅과 함께 마차를 타는 이곳을 나는 걷고 있었다. 



<가십걸> 팬이라면 must visit place.
여기서는 로맨스 영화를 상상.



차를 타지 않거나 태극권을 하지 않아도 센트럴 파크가 주는 묘한 매력이 있었다. 머릿속에서 나는 이미 레이튼 미스터와 마차 위에 올라탔고, 로버트 드 니로 옆에서 태극권을 익히고 있었다. 물론 아무도 눈치 채지 못했다.
현실 세계에서 내가 마주하는 건 오직 새끼 토끼 또는 강아지에 견줄 만한 몸집을 가진 다람쥐였다. 





 
센트럴 파크를 다 돌았거나 밖에서 머물었던 시간이 끝나갈 때에는 타겟(Target)과 같은 대형 마트를 찾아 나섰다.


 
“언니, 타겟이 있어. 타겟 기억나지? 거기서 많이 쇼핑하고 그랬잖아.”
 


10여 년 전, 미국에서 함께 머물었던 시간 동안 사촌동생네와 함께 갔던 타겟을 이곳 뉴욕에서 다시 마주한 소감은? 어렸을 때 갔던 터라 잘 기억이 나지 않았지만, 왠지 정감이 가는 곳이었다.   




 
특히 타겟에서는 값싼 미국 맥주나 과자류들을 다양하게 볼 수 있었다. 브루클린 동네의 마켓 물가와 비교했을 때 2~3달러 정도 더 저렴해 의외의 득템을 할 수 있었다. 이곳에서 동생이 좋아하는 쿠키류나 쿠키 믹스 그리고 아빠가 좋아하시는 초콜릿을 많이 사갔다. 여기에다 내가 좋아하는 그래놀라까지 바리바리 구입했더니, 양손이 무거워지고 제법 지출을 하게 됐다. 그럼에도 번거롭지 않았다. 그대로 지하철을 타고 내린 후 몇 걸음만 가면 사촌동생네였으니까.


나의 양 팔이 아직 버겁지 않고, 다소 여유가 있었던 날이면 동네 슈퍼로 새기도 했다. 룸메이트 2명과 방 3개의 집을 공유하고 있었던 사촌동생의 공용 부엌, 공용 냉장고 안에는 내가 쟁여놓은 맥주들이 채워지고 있었다.



뉴욕하면 택시, 브로드웨이, 그리고 지하철. 묘하게 매력적으로 다가오는 3요소.



사촌동생이 저녁에 다른 약속이 있는 경우 뉴욕시티 내 중간 지점에서 잠시 만나 집 열쇠를 받았다. 나는 집으로 와서 씻고, 잠옷으로 갈아입은 후 냉동실에서 잠깐 얼린 맥주를 꺼냈다.


사촌동생의 열쇠고리인 플라스틱으로 된 작은 맥주 따개로 맥주를 땄다. 병나발을 불고 싶은 날이면 병나발을 불었고, 천천히 음미하고 싶은 날이면 항아리 모양의 투명한 잔에 따라 마셨다.




 
한 3일 정도 뉴욕에서의 데일리 루틴은 이러했다. 빼곡하게 먹는 걸로 채웠고, 나름 부지런히 다녔다. 평균 걸음 수가 2만 보 이상이었다. 수확은 고작 음식(이것마저 하루 이틀이면 사라졌지만) 또는 쇼핑한 물건들이었지만 나름 즐거웠다.


어떤 이의 말처럼 아무런 일도 안 하고 돈을 쓰는 건 짜릿했다. 무엇보다 병나발을 불고 있는 현재의 나는 오직 현재에 집중하고 있었고, 그 점이 주는 짜릿함도 무시 못했다. 여러모로 나는 점차 현재에 집중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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