짝사랑과 눈치

by 걸어가는



연예매체 기자였지만, 나는 티비보다 유튜브를 즐겨 봤고, 한 시간짜리 드라마보다 10분짜리의 웹드라마를 선호했다. 웹드라마 중에서도 사랑, 연애를 주제로 하는 작품들을 좋아했다. 웹드라마를 통해 알게 된 무명 배우들이 지상파나 케이블 드라마로 진출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마치 내 일인 것처럼 기뻤고 그들을 조용히 응원했다.

그 배우도 그중 하나였다. 웹드라마에서 안정적인 연기로 호평을 얻다, 지상파 드라마로 진출한 운이 좋은 케이스.



“여기 이 배우 있지? 신입이더라고. 이 배우를 네가 인터뷰하게 될 텐데, 괜찮지?”



인턴인 신분인 내게 발언권은 없었지만, 괜찮다는 질문에는 ‘네’의 이상을 표현하고 싶었다. ‘와우’라던가 ‘좋아요’ 같은 것.

배우가 조연으로 출연한 지상파 드라마는 곧 종영을 앞두고 있었다.

11월 초중반이었다.






“소화가 잘 안된다거나 호르몬 불균형 증상이 나타난다거나 그런 거 없으세요?”


“요즘 소화가 잘 안되긴 해요.”


10월 중후반, 회사 근처 요가 회원권을 끊었다. 센터에서는 서비스의 일환으로 1대 1 수업권을 주었고, 나는 그 수업권을 11월 초중반 어느 평일, 퇴근 후 사용했다. 그때 장 마사지를 받았는데 나는 요가 선생님에게 소화가 잘 안 된다고 털어놨다. 호르몬 불균형 같은 문제는 가볍게 생각했다.

뭐든지 잘 먹고, 건강한 나에게 불균형이라는 단어는 없었다. 그런 나에게 11월 초중반부터 이상한 일들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내 것이었던, 내가 맡게 될 것이라고 했던 그 배우의 인터뷰 건이 일주일 차로 뒤늦게 입사한 동기에게 넘겨졌다. 나는 속으로 인터뷰에 대한 욕심이 있었지만, 내색하지 않았다. 인터뷰는 나중에 실컷 하게 될 터였다.


그럼에도 왜 내게 상의도 없었던 걸까 싶어 호기심이 생겼다. 결론이 이미 나있는 상태여도 나에게 일절 말도 없이 인터뷰 건을 동기에게 넘긴 걸까 문득 궁금해졌다.


하지만 궁금증을 해결하려고 하지 않았다. 나는 대부분의 일들을 긍정적으로 보고, 가볍게 생각하고 넘기는 편이다. 나는 인턴이니까 그런가 보다 하고 말았다.


그때, 누군가에게라도 물어봤어야 했다.






인터뷰에 대한 내용을 듣기 전, 대표인 그가 신이 난 상태로 물었다.


“인터뷰할래? 인터뷰 처음이지? 인터뷰 좋지? 신나지?”


그때 나는 혼자가 아니었다. 밥 먹고 같이 들어온 동기는 분명 사무실에 있었다. 나는 운 좋게 동기보다 먼저 배우를 인터뷰하게 되었다. 그것도 내가 하겠다고 해서 얻은 게 아니었다. 타의로 얻은 기회였다.

그때의 나는 나도 모르게 (왠지 모르게 답을 해야 할 것 같아서) “네.”라고 했다. 대답은 인터뷰 기회가 주어지지 않은 동기에게 상처를 었을 것이다. 그 일을 기점으로 나는 알고도 모른 척하는 년이 되고 말았다.






그 후 유명 예능 제작발표회를 담당하게 됐을 때, 영화 시사회를 막 마치고 돌아왔을 때, 내가 쓴 기사가 포털사이트 메인에 올라가게 됐을 때도 는 눈치 없는 나쁜년이 되었다.

“000 보고 들뜨는 거 아냐 이 녀석?”
“시사회 어땠어? 영화 재밌었어?”
“네 기사 봤어. 잘 썼더라. 아쉽게도 메인에는 안 떴더라.”

나는 그(대표)의 말을 그냥 듣고 넘겼다. 이는 다른 이들에게는 곧 그 칭찬을 자만하며 수긍하는 것으로 들렸을 것이다.

그때 나는 “제가 뭘 할 수 있겠어요. 다 선배들 덕분이에요. 배울 게 한참 남았는데 제가 거기 가도 되는지 모르겠어요. 아직 선배들을 따라가려면 한참 남았습니다.”라고 말했어야 했다.





그랬어야 했다고, 뉴욕 브루클린에서 필라테스 그룹 레슨을 들으며 깨달았다.


필라테스 기구 수업에서 영어가 제1외국어가 아닌 것 같은 선생님의 영어 발음을 이해하려고 애썼다. 선생님의 말을 못 알아들었을 때는 곁눈질로 옆 사람의 동작을 따라 했다.


그런 나의 애씀을 눈치챈 선생님은 내가 천천히 따라올 수 있도록 “잘하고 있어요”라는 말을 해주셨다. 그건 칭찬이 아니라 일종의 응원 같은 거였다.


온 눈치를 총동원하며 필라테스 동작을 취하고 있었던 나는 그때 그 대표의 말이 일종의 응원이 아닌 진짜 ‘대놓고’ 칭찬한 것이었음을 그제야 알게 되었다.


이미 많이 늦은, 12월 후반이었다.






11월 초중반.


그때의 나는 그저 인터뷰를, 작품을, 일을 짝사랑하고 있었다. 눈치 따위는 짝사랑에 묻혀 안중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