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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작가 Sep 28. 2020

어쩌면 나는 덕후일지도





뉴욕에 도착한 지 얼마 안 되었을 때(아마도 이틀 차) 나는 미국 드라마나 영화에서 나올 법한 만화 가게로 향했다.


욕행 비행기 안에서 영화 <글래스>를 봤었다. <글래스>에 한 만화 가게가 나온다. 그 만화 가게의 코너에는 악당들이 주인공으로 된 만화책들만 모여 있다. 악당들 중심으로 이야기가 전개되는 화책. 독특하면서도 구미가 당겼다. 뉴욕 만화 가게 확인해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슴이 두근거렸다.


나는 마블과 같은 만화 캐릭터들은 잘 모르지만, 최근 넷플릭스 시리즈물 <엄브렐라 아카데미>에 푹 빠진 이후, 원작 만화를 구입한 적은 있다. 사실 나는 타고난 '철새'팬이라 무언가에 빠지고 좋아하는 일을 좀처럼 시도하지 않는다. 나 자신이 두렵다. 미치도록 사랑했던 그(또는 그들)를 언제 어디서 안 좋아할지 몰라서 꺼리는 편이다.


계절이 변하면 다른 곳으로 이동하는 철새처럼 한때 그룹 비스트(현 하이라이트)의 열성팬이었지만(중학생 시절 샤이니 팬인 친구와 함께 연말 합동 콘서트에 갔다.) 1년을 넘지 못하고 그룹 2PM으로 넘어갔다.(고등학생 때였다. 친구들 모두 공부 중이라 혼자 콘서트에 갔다.)


단 한 사람 또는 한 그룹을 열렬히 사랑한다는 것은 지금도 내가 잘 못하는 일이기도 하다. 이런저런 이유로 나는 누군가를 좋아하고 그 사람을 좇는 일을 높이 산다. 어벤저스가 시리즈물로 나올 때마다 개봉일에 맞춰 날 영화관에 데려갔던 한 친구. 그 친구를 떠올리며 뉴욕시티 2층짜리 만화 가게 들어갔다.


만화 가게에서는 만화라는 작품을 통해 창의성과 예술성을 장려하는 문화를 느낄 수 있었다.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만화책을 하나하나 짚어 보는 나 같은 사람들보다도 만화책을 예술작품을 보듯이 우러러보는 사람들이 더 많았다.




 
만화 가게 외에도 서점을 많이 찾아다녔다.


길을 걷다 서점을 마주치면, 즉흥적으로 들르곤 했다. 책을 사고 나오지 않아도 종이 냄새, 커피 냄새, 종이와 커피가 어우러지는 냄새가 좋았다.


나는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해외를 방문하면 항상 서점을 찾다. 또, 여러 코너 속에서도 잡지 코너를 즐겨 찾다. 기승전결이 뚜렷한 책과 달리 두서없지만, 그 안에 질서를 갖춘 잡지를 선호한다. 특히 광고 없는 잡지 좋다.


브루클린의 한 서점에서 브루클린을 테마로 한 잡지를 발견했다.  잡지는 생각보다 두꺼워 섣불리 사지 못했다. 지금 돌이켜 생각해보니 아쉽다. 브루클린에서 일하고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은 잡지였다. 종이 냄새, 커피 냄새에다 사람 냄새까지 배어 있어 놀라웠다.


그밖에도 다양한 개성들을 지닌 잡지들을 많이 발견했다. 19금을 테마로 한 잡지, 환경에 대해 이야기하는 잡지, 작가들의 글들을 모아둔 잡지 등등.





책이 있는 곳에는 커피가 있고, 커피는 사람들 사이를 이어준다.


스타벅스 카페가 있었던 뉴욕시티 유니언 스퀘어에 위치한 반스 앤 노블에서 커피를 마시며 오랫동안 머문 적이 있다.


나는 수첩을 들어 여행에 대한 기록을 남겼다. 기록하다 종종 사람들을 곁눈질로 살펴보았다. 애정 행각을 벌이는 젊은 대학생들, 책을 읽는 사람들, 자리를 찾아 헤매는 사람들.(5분 전의 내가 딱 저랬었지. 하고 생각했다. 이 거대한 반스 앤 노블 서점의 카페에는 생각보다 자리가 많지 않았다.)





기록 중 꿈에 대한 내용을 써보는 시간을 가졌던 것 같다.


내가 한국에 가면 하게 될 일들, 하고 싶은 일들, 할 일들에 대해서도 생각해봤다. 해답은 나오지 않았지만, 그 시간이 그냥 좋았다.


단돈 3달러에 책들이 가득 메워 있는 공간에서 커피를 마시는 시간. 나에게 집중할 수 있었던 이 시간은 여행자인 신분에서 잠시 현지인이 되어볼 수 있는 시간이기도 했다.


그 순간의 나는 뉴욕에서 일하는 동양인 프리랜서였다. 마감을 마치고, 다음 일에 대한 계획을 세고 있는  잠시 빙의해 그 느낌을 만끽했다.




 
뉴욕에서 한 달을 머무는 동안, 하루 이틀 빼고 거의 매일 서점방문했다. 매 서점마다 평균 2시간을 머물렀다. 그렇다고 진득이 한 자리에 앉아  읽은  아니다.


그럼, 대체 뭘 냐?라고 물으신다면, 이러하다. 아참 들어가기 전에, 부가 설명이 필요하다. 나는 뭐 하나에 꽂히면 작살을 내야다.





하루는 맥주 책에 꽂혀 아예 바닥에 털썩 앉아, 맥주 탐구서를 둘러봤다. 다른 하루는 사진집에 꽂혀 땀을 흘려 가며 사진집들을 구경했다. 또 다른 하루는 중고책에 꽂혀 서점 1, 2층을 왕복 5번 정도 왔다 갔다 했다.  
 
어떤 날은 기록을 해도 을 것 같은, 빈 여백이 많던(과거형이다. 이제는 그 여백을 나름 채웠으니까.) 사진집을 손에 넣었다. 그 사진집은 10불 안 되는 가격으로 마침 할인 판매 중이었다.





한 손으로 집을 수 있는, 적당한 크기의 그 사진집이 마음에 쏙 들었다.


사진집의 테마는 ‘책을 읽고 있는 사람들.' 누워서 책을 읽는 사람, 공원 벤치에 앉아 책을 읽는 사람, 욕조에 앉아 책을 읽는 사람 등등. 다양한 배경과 포즈로 책을 읽는 사람들의 사진들로 가득했다. 사색 또는 책에 잠긴 그들 옆 조용히 나의 잡다한 생각들을 겨 적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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