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경 소녀 일기 (4)
소설이라는 이 이상한 세계는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세계와 완전히 다른 것 같지만 실은 깊은 관련을 맺고 있습니다.
그것은 마치 지구와 달의 관계와도 비슷합니다.
달은 무슨 인테리어 소품처럼 어두운 밤하늘에 떠서 광합성도 할 수 없을 정도의 희미한 태양광만 지구로 반사시키지만,
그럼에도 지구에서 벌어지는 많은 일에 관여하고 있습니다.
조수간만의 차를 만들어내고 여성들의 생리주기도 조절합니다.
많은 생물들이 달의 주기에 따라 이동하고 짝을 짓고 산란합니다.
소설도 그와 비슷하게 인간들의 삶에 알게 모르게 깊은 영향을 미치고 있는 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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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은 우리가 의식하지 못하는 방식으로 우리의 삶에 작용합니다.
그 작용을 우리가 평소에는 의식하지도 못하고 의식할 필요도 없다는 것,
어쩌면 그것이 소설의 가장 멋진 점 아닐까요?
소설은 적어도 우리에게 그 어떤 것도 강요하지 않는다는 뜻이니까요.
- 김영하의 <말하다> 中